지난 그 때에 50

6·25 전쟁전야 (1948년~1953년)

6.25 전쟁전야 (1948년~1953년) 1945년 8월 한국이 분단되기 전까지는 한국전쟁(6.25전쟁)은 생각 할 수도 없었습니다. 특별한 반론과 항변이 많긴 하지만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그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내전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다가온다는 진리를 서서히 깨닫게 됩니다.* 미국 : 아무 생각없이 갈라놓고 식민지 정부를 재건 (+그 기구에 봉직한 한국인)* 소련 : 한국이 지녀온 통합성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회주의 건설" 하기로 결정북한의 침략에 대한 최초 암시는 하지장군이 워싱턴에 '공역이 임박했을지도 모른다'고 알린 1946년 봄 이었으나, 미국과 소련은 자국의 군대가 전쟁에 말려들 가능성이 있는 한 군사행동을 지지하려 들지 않았습니다.전쟁의 시..

지난 그 때에 2022.10.31

점령군과 해방군

● 미·소 점령군, 통치권력으로 자리잡다 ◇ 논점으로 살펴서 정리해 보면 ⊙ 논점 1] 여운형이 일제 총독부로부터 이양받은 권력의 실체는 무엇이었나. ⊙ 논점 2] 여운형이 총독부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미군 자료는 정확한 것인가. ⊙ 논점 3] 여운형이 총독부로부터 비록 치안권이라도 인수받아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세운 것은 정당한가 ⊙ 논점 4] ‘조선인민공화국’은 정당성과 합법성을 가졌는가. ⊙ 논점 5] 인공 수립은 여운형의 작품이었나 박헌영의 작품이었나. ⊙ 논점 6] 여운형은 왜 조급하게 ‘조선인민공화국’ 수립을 선언했을까. ⊙ 논점 7] 미국이 ‘조선인민공화국’을 승인했다 그것이 기초가 돼 한반도에 통일정부가 세워질 수 있었을까 ⊙ 논점 8] 미군정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승인했더라면 한반도에 통..

지난 그 때에 2022.10.31

한반도는 강대국들의 놀이터였다(1945~1955)

한반도는 강대국들의 놀이터였다(1945~1955). 미 국무차관보 존D. 히카슨의 폭로에 의하면 한국전쟁은 사전 시나리오에 의해 계획된 전쟁이었다. 해방 직후 박헌영((북한정권에서 부수상 및 외상에 취임-1955년 ‘미제의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처형됨))과 그의 직계인 이강국. 임화(작가) 등 남로당의 일부 핵심간부들이, 주한 미군방첩대(CIC) 요원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새로히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저명한 재미 사학자 방선주 교수와 국사편찬위원회 정병준 박사가 미 정부측에 비밀해제를 요구, 공개된 " 미 육군 정보국 " 문서파일과 미 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돼 있던 ‘베어드 조사보고서’ 에서 새로이 드러났다. 지금까지 남한정부에선 박헌영이 6.25의 책임을 뒤집어 쓰고 총살 당했다고 주장했다. 즉 박헌영..

지난 그 때에 2022.10.31

형제복지원

형제복지원 사회복지법인 형제복지원(社會福祉法人兄弟福祉院)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산직할시 북구 주례동 산 18번지(현재 부산광역시 사상구 백양대로 372) 일대에 위치했던 부랑자 강제수용소로, 1948년 국방경비대에 입대하여 4.19 혁명 당시 육군모부대 특무상사로 근무했던 박인근은 1962년에 장인으로부터 인수한 감만동 형제육아원(1960년 개원)을 모태로 한 개신교계 부랑인/부랑아 보호시설로, 인수 후 용당동으로 이전했다. 1965년에 사회복지법인화하고 부산시로부터 아동복지시설 인가를 받았다. 1971년에는 기존 목적이던 유아보호시설에서 부랑아 보호시설로 변경했고, 박정희 정부가 대대적인 부랑아 단속을 위해 발표한 1975년 내무부훈령 제410호에 근거하여 부산시 부산진구 주례동 산18번지의..

지난 그 때에 2022.10.31

민족주의 계열의 항일무장투쟁 (1930년)

1930년대 민족주의 계열의 항일무장투쟁, 1930년대 부터 살펴보는게 적당할 것 같다. ​ 만보산 사건(萬寶山事件)은 1931년 7월 2일에 중국 만주 지린성 장춘시 관성구 싼싱바오(三姓堡)에 있는 만보산 지역에서 일본의 술책으로 당시 만주로 대량 이주한 조선인과 중국인 농민 사이에 수로(水路) 문제를 핑계로 일어난 충돌 및 유혈사태로 만주사변을 촉발했다. 만보산 사건은 일본의 술책도 있지만 임오군란 때 청나라의 경제적 침략자로서 동원된 한족 화교들에 대한 반감에 의한 조선인들의 민중 항의이기도 하였다. 일본은 조선인과 일본인에게 만주 개척을 하면 수 많은 혜택을 홍보하여 많은 조선인과 일본인들이 중국 동북지방에 이주하였고 당시 만주 개척을 위해 중국 동북지방으로 이주하는 조선인들의 수가 매우 많았다...

지난 그 때에 2022.10.30

해방과 건국 [분단의 원인]

◇ 해방과 건국 [분단의 원인] ① 38도선은 우리역사 최초분할선 아니다 ② 한반도 분할 얄타회담서 밀약되지 않았다 ③ 일제 늑장 항복이 한반도 분할가져왔다 ● 더 구체적으로 논점으로 나눈다면 1. 38도선은 우리 역사 최초 분할선 아니다 8월 15일로 우리 겨레는 분단 75주년을 맞이한다. 오늘날 남과 북을 통튼 7600만 겨레가 겪는 고통과 비극의 뿌리는 바로 이 분단이다. 분단이 있었기에 이산가족이 발생했고 전쟁이 뒤따랐으며 37개월을 끈 이 전쟁으로 국토는 유린 되고 수많은 동포가 목숨을 잃거나 부상했고 다시 한 차례 큰 규모의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무엇보다 남과 북 사이에 적대감이 높아져 오늘날까지도 해소되지 않은 채 대결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 이 분단은 도대체 어떤 배경에서 이뤄진 것일까...

지난 그 때에 2022.10.30

조선시대 연대표

1392년(태조 1년, 壬申) 2월 정몽주가 신률(新律)을 올림. 4월 정몽주(鄭夢周, 1337-1392)를 격살함. 7월 16일 개경(開京) 수창궁(壽昌宮)에서 국왕으로 즉위하여 왕조 창건.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에 홍영통(洪永通), 좌시중(左侍中)에 배극렴(裵克廉), 우시중(右侍中)에 조준(趙浚)을 임명함. 7월 고려 공양왕(恭讓王)을 광주(廣州)로 추방하고, 8월에 공양군(恭讓君)으로 봉하여 강원도 간성군(杆城郡)으로 옮김. 8월 한양(漢陽) 천도를 결정했다 중지함. 8월 계자(季子) 방석(芳碩, 강비소생)을 세자로 삼음. 8월 개국공신(開國功臣)을 정함. 이숭인(李崇仁, 1349-1392) 죽음. 1393년(태조 2, 癸酉) 2월 공주(公州) 계룡산(鷄龍山)으로 천도를 결정하고 공사를 시작. 2월..

지난 그 때에 2022.10.30

한국사 연표 (기원전~최근)

▣작성자 나름의 기록모음으로 일부 누락부분이 있을 수 있으며 특정단어 선택(예:사망,선종,소천,입적,별세,서거,죽고 등)에 개인의 의미가 다를 수 있습니다.[티스토리 작성자]한국사 연표선사 및 부족국가→삼국→통일신라/발해→고려→조선→일제침략→대한민국[기원전]10000년 중석기문화 형성. 공주 석장리유적의 단구(段丘) 제1문화층과 단구 제3문화층. 욕지도(欲知島)유적지 등의 세석기 제작.6000년 전기 신석기문화 형성. 빗살무늬토기Ⅰ류 제작사용. 부산 동삼동유적 하층 형성.5000년 서울 암사동유적 형성.4000년 웅기 굴포리˙서포항 유적 하층의 제1기 및 제2기 문화층, 온천 궁산리유적 하층 문화 등 형성.3500년 중기 신석기문화 형성. 빗살무늬토기Ⅱ류. 웅기 굴포리˙서포항 유적 제3˙4˙5기 문화층,..

지난 그 때에 2022.10.30

성완종List

사건의 발단은 이명박 정부 시절 자원 외교 비리에 대한 수사로부터 시작된다. 2015년 3월 17일,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비리 척결 언급이 있은 후, 다음 날인 3월 18일 검찰이 경남기업을 분식회계 혐의로 압수수색하였다. 2015년 4월 6일, 검찰은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이자, 경남기업의 회장인 성완종 씨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횡령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여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였고, 4월 9일로 예정된 영장실질심사를 앞둔 4월 8일 오후 2시 성 회장은 서울 명동 전국은행연합회 건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은 MB맨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고 밝혔다. 영장실질심사를 받기로 한 2015년 4월 9일 오전 8시 6분..

지난 그 때에 2022.10.18

선감학원(선감원)1941

선감학원 혹은 선감원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에 있는 선감도라는 섬에 1941년 10월 당시 미나미 지로 조선 총독의 지시로 세워졌다.  농사 지을 주민을 제외한 나머지 섬 주민들을 섬 밖으로 강제이주시킨 후 전국에서 부랑아로 지목된 소년 수백명을 섬으로 잡아들이고 선감학원(선감원 같음)에 가두었다.  거리의 불량아들을 감화하는 이른바 감화원이라는 미명 하에 지어진 이 곳에 끌려오게 된 명목상 이유는 절도, 폭행 등의 경범죄부터 항일 독립운동 행위, 정치범이나 사회주의자 등이었으며 이유 없이 잡혀온 청년들도 많았다. 피상적으로는 일반 학교와 동일한 학제를 이수하게 되어 있었으나 선감원에 온 소년들은 공부는커녕 강제 노역에 시달렸고 잘못을 하면 처벌의 일환으로 끝을 뾰족하게 깎은 대나무를 손톱 밑에 ..

지난 그 때에 2022.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