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회사
▲1623년 이조판서 유몽인 저서 「어우야담」에서 허균(1569-1618년)이 처음으로 천주교를 신봉했다고 소개. 160여년 뒤 실학자 안정복, 박지원 등이 시인.
▲1645년 소현세자, 독일인 신부 아담 샬(湯苦望)로부터 천문˙산학(算學)˙천주교에 관한 서적 등을 받아 가지고 한성으로 돌아 옴. (세자가 북경에 있는 동안 조선인 2-3명이 세례를 받았다고 전해짐)[소현세자 [昭顯世子, 1612~1645] 이름 왕(炡). 인조의 장자, 효종의 형이며, 어머니는 한준겸의 딸 인열왕후(仁烈王后)이다.
1625년 세자로 책봉되었고, 부인은 강석기(姜碩期)의 딸인 민회빈강씨이고 보통 강빈(姜嬪)이라고 부른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삼전도에서 청나라에 항복 한 이후, 아우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이후 9년간 심양(瀋陽)의 심관(瀋館)에 머물면서 많은 고초를 겪었다. 동시에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서 창구역할을 맡아 조선인 포로 도망자의 속환문제, 청나라의 조선에 대한 병력 ·군량 ·선박 요구, 각종 물화의 무역 요구 등 정치 ·경제적 현안을 맡아 처리하였다.
또 청나라 인사들이 벌인 대부분의 행사에 참여하고 청나라 황제의 사냥 등에도 동행하였다.
1640~1642년 인조의 병문안을 위해 잠시 귀국하였고, 1644년 청나라 도르곤[多爾袞]의 원정군을 따라 베이징[北京]에 들어갔다. 베이징에서 독일인 선교사 샬 폰 벨[湯若望]을 만나 그로부터 서양 역법과 여러 가지 과학에 관련된 지식을 전수받고 천주교에 관해 소개받았다.[네이버백과사전 인용]
▲1703년 교황 특사 투르논 주교, 제조사공 문제로 강희제 접견
▲1707년 특사 대리 메그로 주교가 강희제로부터 ‘무식한 자’라는 책망을 받음. (강희제와 교황 특사와의 회견 결과는 선교사 추방으로 이어짐)
▲1722년 조선 동지사 이이명, 북경에 머무르는 동안 천주교 신부들과 접촉 교황특사 메차바르바 주교가 북경에 도착(강희제와 13차례 접촉,8개 타협 조정 안을 제시 했지만 제조사공 문제는 해결치 못함)
▲1722년 옹정제 즉위 후 천주교 말살정책 시행
▲1723년 복건성 선교사 전원 추방(상소진상)
▲1758년 해서˙관동 지방에 천주교가 크게 보급 됨.
▲1769년 천주교 서적은 서양에서 들어온 학문으로 서학(西學)이라 하여 이익의 제자 안정복을 비롯한 선비들 사이에 널리 읽혀짐.
▲1773년 예수회 해산(1814년, 재복원)
▲1777년 -79년. 권철신 주도하에 천진암 강학회 개최
▲1782년 12월. 구베아 북경 교구장 주교로 임명(이듬해 2월 고아에서 주교성성식)
▲1783년 겨울. 이승훈, 동지사행의 서장관으로 임명된 아버지(이동욱)를 따라 북경으로 가게 됨
▲1784년 1월. 이승훈 영세(북당/그라몽 신부)
▲1784년 3월. 김범우는 세례를 받고 자신의 집을 신앙집회 장소로 제공, 1784년 겨울부터 신앙집회인 ‘첨례’를 봄 / 한국천주교회창립
▲1784년 이승훈, 중국 북경 북당성당(연경 남천주당에서 그라몽신부로부터)에서 세례(1784.2월.세례명:베드로)받고 천주교 관련 서적을 가지고 귀국. 이벽(李檗)˙권철신(權哲身, 1736~1801조선 후기의 성호학파의 학자. 1777년 경기도 양주에서 정약전·정약용 등의 남인의 실학자들과 함께 서학교리연구회(西學敎理硏究會)를 열면서부터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시작. 세례명은 암브로시오) 등이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받음.명례방 신앙공동체 탄생.[교회 창립]
▲1785년 1월 18일 북경 교구장 구베아 주교 부임
▲1785년 3월. 을사추조적발 사건으로 김범우 유배(경남 밀양 단장/삼랑진)
▲1785년 6월 14일 광암 이벽(요한 세례자) 순교(첫 순교자)
▲1785년 한성에 천주교교회가 생김(진고개 김범우.(세례명:토마스)의 집).
▲1785년 을사추조적발사건으로 김범우 경남 밀양 단장으로 유배, 1786년 순교.
▲1786년 가성직제도 실시. 정약종 영세. 윤지충, 권상연 입교.
▲1786년 -88년. 가성직제도 시행
▲1787년 겨울. 정미반회사건
▲1787년 9월 14일 김범우 토마스 선종
▲1789년 조선교회, 윤유일을 북경에 파견해 가성직제도와 제사문제 등에 관 해 문의. (1789년 신해년에조상 제사 문제 이유로 이후 백년동안 박해 거듭됨)
▲1789년 10월. 신자들의 희사로 북경에 밀사 파견(윤유일 1차 파견)
▲1790년 7월. 사제파견요청 /윤유일 2차 파견(건륭제 80회 생일 축하 진하사의 역관)
▲1790년 10월. 구베아 주교는 조선교회의 창립을 알리고 조선교회를 관리할 책임자로 자신을 임명 요청(1791년 10월 경 구베아 주교 중국인 레메디오스 신부를 조선 선교 사로 임명)
▲1790년 조선교회, 가성직제도와 유교식 제사 금지해야 한다는 북경교구장 주교의 답변을 들음.
▲1791년 신해박해 일어나 윤지충과 권상연 제사문제로 전주에서 참수됨.
▲1791년 2월. 최초의 조선선교사로 마카오 교구 소속 중국인 사제 레메디오스 신부를 파견하였으나 조선 교우들과 만나지 못함(1793년 레메디오스 신부 선종)
▲1791년 5월. 신해박해(진산사건 / 윤지충, 권상연 순교)
▲1792년 조선이 포르투갈 보호권 교구의 구베아 주교 개인에게 위임됨(교황 비오 6세)
▲1792년 북경 주교 구베아가 교황 비오 6세에게 조선교회 창립을 보고.
▲1794년 중국인 주문모 신부, 압록강 건너 입국해 서울에 들어와 역관 최인길 집에 거처.
▲1795년 주문모 신부, 부활주일에 우리나라 최초의 미사 집전.(당시 전국 신자 수는 4천여명)
▲1795년 천주교도 김시삼(金始三)이 청나라 신부 주문모의 밀입국 포교사실을 밀고.
▲1795년 4월 5일 조선천주교회 최초의 미사(주문모 신부, 부활대축일 미사, 계동지역)
▲1795년 6월 8일 윤유일, 지황, 최인길 순교(을묘박해)
▲1796년 주문모 신부, 황심을 시켜 북경교구장 주교에 조선교회의 형편을 서한을 통해 전달.
▲1801년 신유박해
▲1801년 1월 9(음)일 정순왕후 김씨, 천주교 박해령, 오가작통법 시행
▲1801년 1월 29(음)일 책롱(冊籠)사건으로 천주교 지도급 인사들이 잡혀 순교
▲1801년 3월 12(음)일 주문모 신부 자수로 그와 연관된 신자들이 잡혀 순교
▲1801년 9월 29(음)일 황사영이 체포되고 백서 발각으로 다시 박해가 가열됨
▲1801년 12월 22(음)일 토사주문 즉, 척사윤음 반포로 신유박해 종결
▲1801년 중국인 신부 주문모(周文謨) 등 이승훈, 정약종, 홍낙민, 최필공, 최창현, 강완숙 등 300여명이 서울 서소문밖 네거리 와 새남터, 공주 황새바위, 여주 등지에서 참수 치명. 되는 ‘신유교난(辛酉敎難)(신유대박해)일어남.
▲1803년 권계인, 신태보, 이여진 등 조선교회 재건 도모.
▲1808년 구베아 주교 선종(후임: 수자 사라이바 주교)
▲1811년 중국, 신부들을 귀국 조치하고 교회를 폐쇄시킴. 조선, 성직자 영입운동 전개(주교와 교황에게 1차 청원서 보냄)
▲1811년 권계인, 최신덕, 신태보, 이여진 등 교황에게 서한을 보내 선교사 파견을 요청.
▲1813년 이여진, 밀서를 가지고 재차 북경 방문.
▲1814년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 해미옥에서 순교.
▲1815년 을해박해 일어나 청송 모래산과 진보 머루산 교우촌에서 신자 300 여명이 경주 및 안동 포교들에게 체포돼 대부분 옥사.
▲1816년 김대건 신부의 종조부(작은 할아버지) 김한현(종한) 등 29명,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
▲1821년 최양업은 충남 청양 다래골에서, 김대건은 충남 당진 송산리(솔뫼) 에서 각각 탄생.
▲1824년 정하상, 유진길, 조신철 등 북경으로 교구장 주교를 찾아가 사제를 보내줄 것을 호소.
▲1825년 무신의 승교(乘轎)를 금함. 정하상˙유진길(劉進吉) 등, 교황청에 서한 발송, 조선천주교의 수난사실을 보고.
▲1825년 정하상, 유진길, 이여진 교황에게 2차 청원서 발송
▲1826년 정하상 등은 사제를 보내주겠다는 북경교구장의 약속에 따라 의주 변문에 가서 기다렸으나 북경교구장 대리 리베이로 신부의 사망으로 성직자 영입 무산.
▲1827년 9월. 포교성성 장관(카펠라리 추기경 - 후에 그레고리오 16세 교황), 조선교회에 대 한 포교 활동을 담당해 줄것을 파리외방선교회 랑글르와 신부에게 요청 / 샴(태국)의 부주교였던 브뤼기애르 주교가 자원
▲1827년 전라˙경상도 각지에서 천주교도 탄압사건 일어남(정해교난).정해박해 발생. 곡성, 상주, 안동 등지에서 500여명 체포돼 10여명 처형당함.
▲1828년 교황 레오 12세, 파리외방전교회에 조선 선교사업 위촉.
▲1831년 9월9일 로마 교황청 교황 그레고리오 16세 성직자 없이 30년 동안 조선교회가 크게 발전한 것에 감동되어 북경 교구 에서 독립된 조선대목구 설정, 초대 대목구장에 브뤼기에르 주교 임명.
▲1831년 1월. 중국인 유방제 신부, 조선 파견을 위해 나폴리 성가정 신학교를 떠나중국으로 출발
▲1831년 9월 9일 조선대목구설정. 브뤼기애르 소주교 초대 조선대목구장으로 임명(Capsa명의주 교)
▲1832년 10월 21일 브뤼기애르 주교, 마카오에서 조선대목구설정 공문과 임명 교황칙서 받음
▲1833년 4월. 파리외방전교회 조선 포교지 수락
▲1834년 1월 3일 중국인 유방제 신부가 정하상 등의 안내로 의주 변문을 통해 입국. 1.16일 서울 에 도착하여 정하상 집 거주
▲1834년 중국인 여항덕 신부, 정하상 등의 안내로 조선 입국.
▲1835년 브뤼기에르 주교, 조선 입국에 실패해 만주 펠리구 교우촌에서 병사.
▲1835년 10월 20.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애르 주교 만주에서 선종(조선 교우들을 앞세운 유방제 신부의 교묘한 입국 반대와 뇌일혈로 선종)
▲1836년 1월. 모방 신부,의주(義州)를 거쳐 밀입국.
▲1836년 앵베르 신부(범세형 라우렌시오)가 조선대목구의 부주교로 임명되어 제2대 조선 대목구장이 됨(5.14일 주교 성성식)
▲1836년 12월 2. 앵베르 주교, 유방제 신부를 중국으로 보내고 최방제, 최양업, 김대건 3명을 마카오에 파견
▲1836년 최양업·최방제·김대건 신학생 발탁.
▲1837년 제2대 조선대목구장 앵베르 주교 조선 입국.
▲1837년 1월 15일 샤스탱 신부 입국
▲1837년 12월 30일 조선 2대 교구장 앵베르 주교 서울 도착
▲1838년 12월 1일 앵베르 주교, 교황에게 조선교구가 북경 교구에서 독립되었음을 기념하기 위해 조선의 주보를“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로 정해줄 것을요청
▲1838년 8월 14일 페레올 신부를 벨린(Belline)명의주교로 계승권을 가진 조선의 보좌주교로 임명
▲1838년 11월 26일 최방제 신학생, 마카오에서 병사.
▲1839년 기해대박해(己亥敎難)로 앵베르 주교와 모방·샤스탕 신부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 유진길˙정하상(丁夏祥) 등 70명( 270여명?)이 참수되거나 교수형을 당하고, 옥중에서 순교.
▲1841년 8월 22일 교황 그레고리오16세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를 조선대목구의 주보로 허락
▲1842년 2월 15일 김대건, 매스트르 신부와 세실 함장이 이끄는 프랑스 군함 에리곤 호에 승선 마 카오 출발
▲1842년 7월 17일 최양업, 만주 선교사 브뤼니애르 신부와 프랑스 군함 파보리트호에 승선 마카오 출발
▲1843년 12월 31일 만주교구 베롤 주교에 의해 페레올 주교 성성(조선교구 3대 교구장)
▲1843년 제3대 조선대목구장에 페레올 주교 임명.
▲1844년 12월. 김대건, 최양업, 페레올 주교로부터 부제서품.
▲1845년 1월 1일 김대건 부제, 봉황성 책문에서 조선교회 밀사와 상봉하여 조선으로 귀국
▲1845년 1월 15일 김대건 신부 서울 도착후 돌우물골(石井洞)에 유숙
▲1845년 4월 30일 주교 영입을 위해 제물포 출발
▲1845년 8월 17일 상해 금가항(金家港) 성당에서 김대건 사제 서품(페레올 주교 집전)첫 미사.
▲1845년 8월 24일 만당 소신학교 김대건신부 첫 미사 (다블뤼 안토니오 보좌신부)
▲1845년 8월 31일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와 함께 라파엘 호를 타고 상해 출발
▲1845년 10월 12일 페레올 주교 일행 조선 입국(강경 황산포 나바위(羅岩)에 도착)
▲1845년 김대건 부제, 중국 상하이[上海] 금가항성당에서 사제로 서품 신부가 되어 밀입국. 그해 10월12일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 등과 함께 전북 익산군 나바위에 도착해 6개월간 경기도 용인 지방에서 전교.
▲1846년 프랑스 세실 해군소장, 천주교탄압을 구실로 군함 3척 끌고 충청도 외연도(外煙島) 정박, 왕에게 항의 서한 전달. 병오박해로 그해 9월16일 김대건 신부,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 현석문·임치백·우술임·김임이·이간난·정철염·한이형 등 순교.
▲1846년 병오박해
▲1846년 5월 14일 김대건 신부 교우와 함께 마포 출발-25일 연평도-27일 순위도 등산진 도착.
▲1846년 5월 29일 중국어선과 접촉(백령도)/ 편지,지도 매스트르 신부에게 탁송
▲1846년 6월 1일 순위도 등산진으로 귀환
▲1846년 6월 5일 김대건 신부 체포
▲1846년 9월 15일 김대건 신부 반역죄로 사형선고 받음
▲1846년 9월 16일 김대건 신부 순교(새남터)
▲1846년 9월 20일 현석문 등 8명의 교우 순교
▲1846년 11월 2일 성모성심회 창설(수리치골/공주군 신풍면 봉갑리)
▲1849년 4월 15일 최양업 신부 사제서품 및 성직수행 (강남 대목구장 마레스카 주교/ 만주 부주교 베르뇌 신부 밑에서 성직수행)
▲1849년 12월 3일 최양업 신부 단신으로 입국 / 페레올 주교와 만남(충청도)
▲1849년 4월15일 최양업 부제, 중국 상해 서가회성당에서 사제서품 받고 입국. (1849년 천주교에 호의적인 철종이 즉위하면서 1863년까지 천주교는 박해없이 발전)
▲1852년 8월. 매스트르 신부 고군산 군도를 통해 입국 / 嬰孩會 사업 추진
▲1853년 2월 3일 페레올 주교 선종 / 미리내에 안장
▲1853년 말. 교세: 신자수 : 12,175명
▲1854년 3월. 쟝슈 신부 입국/ 쟝슈 신부가 타고 온 배편으로 페낭 신학교로 가는신학생 3명 보냄)
▲1854년 6월 18일 쟝슈 신부 둠벙이에서 선종(충남 공주군 신하면 조평리/뇌염)
▲1854년 8월 5일 만주교구 베르뇌 부주교를 제4대 조선교구장으로 임명
▲1854년 12월 21일 베르뇌 주교(Capsa명의주교) 성성식(만주대목구장 베롬주교 주례)
▲1854년 제4대 조선대목구장에 베르뇌 주교 임명.
▲1855년 말. 교세: 신자수 : 13,638명
▲1856년 베르뇌 주교와 푸르티에·프티니콜라 신부 입국. 충북 제천시에 배론신학당 설립.
▲1857년 교황 비오 9세, 김대건 신부 등 조선 순교자에게 가경자 칭호 내림.
▲1857년 3월 25일 다블뤼 보좌주교(Acones 주교)에 대한 주교성성식을 최초로 조선에서 거행
▲1857년 3월 26일 최초 조선교구 성직자회의 개최(Synodus / 3일간)
▲1857년 3월 31일 페롱 권신부 서울 도착
▲1857년 8월 2일 장주교윤시제우서 반포(성직회의 결과 조선 최초의 사목서한)*성직자에게는 1858년 4월 반포(성직자는 부동산 매입금지, 의식주에 쓰고 남 은 돈은 교구에 반납 (성직자 행동지침)
▲1857년 12월 20일 매스트르 신부 과로로 선종(황무실, 충남 예산 고덕면 호음리 / 1970.4.30 당 진 합덕 본당으로 이장
▲1857년 말. 교세: 신자수 : 15,206명
▲1859년 말. 교세 : 신자수 : 16,700명
▲1860년 경신박해(좌,우 포도대장인 임태영과 신명순이 개인 사감으로 박해했지만 병조 판서 김병기와 형조판서 김병운의 반대로 임태영과 신명순 파직, 종결)
▲1860년 동학창시(최제우)
▲1860년 10월 북경사변(애로우호 사건)으로 청나라 약화, 영불연합군 승리 / 원명원 소실
▲1860년 천주교가 널리 퍼지자 최재우 천주교에 대항하는 동학운동을 일으킴.
▲1861년 3월 21일 랑드르, 죠안노, 리델, 칼레신부 입국(안내:김 안토니오(김효임 골룸바의 오빠)
▲1861년 6월 15일 12년간 조선에서 사목하던 최양업 신부, 41세를 일기로 전교길에서 선종. 10월말 문경에 있던 시신을 제천 배론으로 옮겨 안장
▲1861년 10월 22일 베르뇌 주교는 조선의 포교지를 거룩한 동정 성모께 봉헌하고 조선 교구의 각 구역을 성모 마리아의 축일중 하나의 이름을 가지도록 8개 구역으로 나눠 각 구역에 신부임명성모무염시태:서울(주교) / 성모성탄:충청도 홍주 다블뤼신부 / 성모승천: 경상도 서북부(페롱신부) / 성모자헌:충청도 동북부(리델신부) / 성모영보:공주 (죠안노신부) / 성모 왕고:충청도내포(랑드르신부)/성모취결례:경상도서부(칼레신부)/성요셉신학교:배론(프티니콜라, 푸르티 에 신부)
▲1862년 진주민란을 시작으로 전국에 민란발생(관리들의 매관매직/과도한 세금부과)
▲1862년 7월 26일 기해박해의 밀고(배교)자 김순성 사형(헌종의 모친인 조 대왕대비와 손 잡고 철종을 폐위 시키고 이하전을 왕위에 옹립하기로 모의하다 발각)
▲1863년 4월 13일 죠안노 신부 선종(둠벙이, 충남 공주군 신하면 조평리)
▲1863년 6월. 오매트르 신부 입국
▲1863년 9월 15일 랑드르 신부 선종 (황무실, 황무실, 충남 예산 고덕면 호음리 / 1970.4.30 당진 합덕본당으로 이장)
▲1865년 6월. 신부4명 입국(브르뜨니애르, 블리웨, 도리, 위앵)
▲1866년 1월. 원산에 러시아선박 정박 / 통상요구후 귀국 -승지 남종삼 요한은 러시아 선박의 출몰대책으로 대원군을 만남( 영불연합군 편성 대응 검토/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함/러시아 선박 철수로 대원군과 베르뇌 주교 만남 결렬)
▲1866년 병인박해
▲1886년 2월 23일 베르뇌 주교 체포(주교 하인 이선이 밀고 / 3.2일 의금부로 이송 )
▲1866년 2월 26일 브르뜨니애르 신부 체포(2.25일 정의배 마르코 회장 체포)
▲1866년 2월 27일 볼리웨, 도리 신부 체포
▲1866년 3월 7일 베르뇌 주교, 브르뜨니애르, 볼리웨, 도리 신부 참수치명(새남터) / 남종삼,홍 봉주 참수 치명(서소문)
▲1866년 3월 10일 최형 베드로, 전장운 요한 참수치명
▲1866년 3월 11일 푸티니콜라, 푸르티에 신부, 정의배 마르코, 우세영 알레시오 참수치명(새남터) / 다블뤼 주교, 오매르트, 위앵 신부 체포 /황석두, 장주기 체포
▲1866년 3월 29일 다블뤼 주교, 오매르트, 위앵 신부 황석두, 장주기 참수치명(보령 갈매못)
▲1866년 6월 29일 박해사실과 새 성직자 영입을 위해 리델 신부 조선 탈출(청나라에 감/ 천진에 머물던 프랑스 해군 함대장 로즈 제독에게 박해 사실을 알리고 도움 요청)
▲1866년 7월 20일 왜고개에 이장(베르뇌, 브르뜨니애르, 푸르티에, 프티니콜라, 볼리웨, 도리, 우 세영)
▲1866년 9월 20일 로즈 제독 인천 앞바다에 도착 / 소득없이 중국으로 돌아 감
▲1866년 10월 12일 페롱, 칼레 신부 조선 탈출(이후 10여 년간 목자 없음)
▲1866년 10월 13일 병인양요(로즈제독 군함 7척으로 강화도 침입 / 서적, 중요문화재 약탈 (리델신 부 동승 / 병인양요로 인해 천주교 박해가 심해짐)
▲1866년 12월 19일 교황 비오 9세 조선 교우들에게 위로 교서 발표
▲1866년 병인대박해로 베르뇌 주교를 비롯해 선교사 6명 서울 새남터에서 참수됨. 정의배·유정률·남종삼·전장운·제5대 조선대목 구장 다블뤼 주교·오매트르 신부·장주기·황석두 등 전국에서 순교. (1866년 병인년부터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박해는 1871년까지 계속되어 1만여 명이 순교)
▲1868년 제6대 조선대목구장에 리델 주교 임명.
▲1874년 샤를르 달레(프랑스) 신부, 파리에서 ‘대한성교사기(大韓聖敎史記)’ 발간.
▲1876년 5월 10일 서해안을 통해 블랑신부와 드게트신부가 장연에 상륙하여 입국,
▲1876년 5월 11일 서울에 도착함으로써 10년 만에 다시 목자를 갖게 됨
▲1877년 9월. 리델 주교 조선에 재입국
▲1877년 천주교 조선교구 주교 리델(프랑스인) 및 두새˙로베르 신부 등 체포.
▲1878년 1월 28일 리델주교 체포
▲1878년 6월 11일 청나라 요청으로 리델주교가 석방되어 서울 을 떠나 만주로 추방
▲1878년 청의 요청으로 리델 등 프랑스 신부를 베이징으로 귀환 조처.
▲1879년 3월. 드게트신부, 공주에서 잡혀 9월 만주로 추방
▲1880년 11월. 뮈텔, 리우빌신부가 백령도를 거쳐 입국
▲1882년 11월. 리델 주교는 중풍으로 조선교구의 총책임을 블랑 부주교에게 맡기고 프랑스로 귀국 /페낭 신학교 유 (강성삼 라우렌시오 - 이후 1884년까지 총 21명 유학, 이 중 10명은 사제로 서품 됨)
▲1883년 7월 8. 블랑 주교, 제 7대 조선 교구장 임명 및 성성식 (일본 나가사키)
▲1883년 블랑 주교, 서울 명례동에 성당부지 마련
▲1884년 리델 주교 선종으로 블랑 주교, 제7대 조선대목구장 승계.
▲1885년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부흥골에 신학교 설립.
▲1885년 8월 보두네 신부 조선입국
▲1886년 한불조약 조인 ‘신교(信敎)의 자유’ 보장. 가톨릭출판사 전신 ‘성서출판소’ 설립.
▲1887년 제7대 조선대목구장 블랑 주교, 조선교회 지도서 공포. ‘예수성심신학교’ 발족.
▲1887년 용산 함백정에 부흥신학교를 옮기고 “예수성심신학원”이라 이름지음
▲1887년 9월 21일 블랑주교, 교회의 법전인 “조선교리지도서” 공포
▲1888년 7월 22일 샤르트르에 본부를 둔 “성 바오로 수녀회” 진출
▲1888년 6월 8일 장엄미사(조선교구를 예수성심께 봉헌/신앙의 자유를 얻게된 은혜에 감사)
▲1888년 6월 20일 풍수원 본당설립
▲1890년 뮈텔 주교, 제8대 조선대목구장 임명.
▲1890년 2월일 주교관 건립(명동, 2층 벽돌집) / 혜화동(수렛골)에 강당 건립
▲1890년 2월 21일 블랑주교 선종
▲1890년 8월 3일 뮈텔 신부 조선 8대 교구장에 임명
▲1890년 9월 21일 뮈텔주교 성성식(파리외방선교회 신학교에서 거행)
▲1891년 2층 신학교 건립
▲1891년 2월 2일 뮈텔주교 제물포를 통해 입국
▲1892년 8월 5일 명동성당 정초식
▲1893년 9월 25일 약현성당 축성
▲1893년 최초의 서양식 건축양식건물 약현성당(현 서울대교구 중림동성당) 완공 축성.
▲1894년 뮈텔 주교, ‘황사영 백서’ 입수. 최초의 한옥성당인 전북 되재성당 완공.
▲1895년 876명의 순교자를 수록한 ‘치명일기’ 발간.
▲1896년 대원군의 부인 민씨 세례를 받음. 세례명: 마리아
▲1897년 나바위 성당설립 1906년 성당완공 1916년 벽돌조 종각증축
▲1898년 5월 29일 명동 주교좌성당 축성
▲1898년 2월 9일, 서울 종현(鐘峴)에 천주교회당 건립.
▲1899년 5월 프랑스 페이네 신부와 한국인 김원영 신부 제주도착
▲1899년 교회와 조선정부, ‘교민조약’ 체결.
▲1899년 3월 9일 교민조약(뮈텔주교 - 조선 내무지방국장 정준시)
▲1899년 말. 프랑스 페이네 신부, 김원영 신부 제주에 전교
▲1901년 5월 28일 제주 신축교난(1904.6.27일 종결)
▲1904년 뮈텔 주교, 조선정부와 ‘선교조약’ 체결.
▲1905년 기해일기 뮈텔판 간행
▲1906년 10월 19일, 가톨릭교 주간지로 《경향신문》 창간.(1910년 일제에 의해 폐간).
▲1907년 착공 1914년 완공 전주 중앙 성당
▲1909년 안중근(토마스), 일본인 이토 히로부미 사살.
▲1909년 성 베네딕도 수도회 진출(혜화동)
▲1911년 4월 8일 대구대목구 분리 설정(드망즈 신부 초대 대구대목구장 임명)
▲1911년 6월 11일 드망즈 신부 주교 성성식(명동성당)
▲1911년 조선대목구를 서울·대구대목구로 분할. 초대 대구대목구장에 드망쥬 신부 임명.
▲1914년 대구대목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설립.
▲1920년 원산대목구 설정. 초대 원산대목구장에 사우에르 신부 임명.
▲1920년 8월 25일 함경도, 간도지방을 분리하여 원산교구 설정(성 베네딕도회 사우어 주교)
▲1921년 5월 1일 서울교구 드브레 부주교 성성식
▲1922년 7월. 원산교구로부터 만주, 연길교구를 분리하여 책임자로 브레허 주교 임명
▲1923년 미국 메리놀외방선교회 한국진출
▲1925년 3월. 뮈텔 주교 명의대주교로 승픔
▲1925년 교황 비오 11세,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79위 시복.
▲1926년 1월 18일 서울교구의 드브레 부주교 선종
▲1926년 5월 1일 라리보 부주교 성성식
▲1927년 3월 17일 평양교구 창설
▲1927년 평양지목구 설정. 초대 지목구장에 번 신부 취임.
▲1928년 원산대목구로부터 연길지목구 분리. 초대 연길지목구장에 브레허 주교 임명.
▲1931년 조선대목구 설정 100주년 기념대회 개최.
▲1931년 4월. 전국 주교회의 개최(서울/ 조선 천주교회 지도서 개정)
▲1931년 5월. 전라도 지역을 감목대리구로 설정(초대 감목대리 : 김양홍 신부)
▲1931년 9월 26일 교구설정 백주년 기념대회(설정일: 9.9일, 초대교구장 브뤼기애르 주교의 유해를 만주에서 용산 성직자 묘지로 이장)
▲1932년 6월 23일 영원한 도움의 수녀회 창설(최초의 한국 수녀회)
▲1932년 첫 조선수도회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창립.
▲1933년 1월 23일 뮈텔 주교 선종(라리보 부주교 9대 교구장 승계)
▲1937년 전주·광주지목구 설정. 초대 전주지목구장에 김양홍 신부, 초대 광주지목구장에 맥폴린 신부 임명.
▲1938년 2월 9일 드망즈 주교 선종
▲1939년 춘천지목구 설정, 초대 지목구장에 맥폴린 신부 임명.
▲1941년 12월 8일일 외국 신부˙선교사 등 67명 스파이 혐의로 검거
▲1942년 최초의 한국인 주교인 노기남 주교, 서울대목구장·평양지목구장·춘천지목구장에 임명.
▲1943년 홍용호 신부, 평양지목구장 임명.
▲1944년 6월 29일 홍용호 주교 성성식(평양)
▲1945년 해방과 함께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세계평화회복 축하미사 봉헌.
▲1946년 8월. 경향잡지 속간(윤형중 신부)
▲1946년 9월 16일 한국순교자 현양회 결성(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 기념일)
▲1947년 초대 평양교구장이던 번 주교, 초대 주한 교황사절로 부임.
▲1949년 북한 정권, 평양교구 및 함흥교구, 덕원수도원 등 북한교회에 대한 탄압 본격화.
▲1950년 교황청, 김대건 신부를 한국성직자들의 주보로 정하고 축일을 7월5일로 결정.
▲1950년 2월. 새남터 성지 매입 / 순교자 기념탑 건립
▲1951년 가톨릭 군종 신부단 설립
▲1954년 강릉 임당동 성당착공, 1955년 완공 (중국인 건축가 요셉이 설계)
▲1955년 9월20일 춘천지목구, 대목구로 승격.
▲1956년 절두산 성지 매입
▲1957년 1월21일 광주·전주지목구, 대목구로 승격. 부산대목구 설정.
▲1958년 6월23일 청주·대전대목구 설정돼 파디 주교와 라리보 주교 각각 초대 대목구장에 임명.
▲1959년 3월 9일 로마교황사절 서울 중구 죽림동 약현성당(藥峴聖堂) 방문.
▲1961년 6월6일 인천대목구 설정, 초대 대목구장에 나길모 주교 임명.
▲1962년 3월10일 교황 요한 23세, 한국 교계제도 설정.
▲1962년 3월 25일 서울 노기남, 대구 서정길, 광주 헨리 현 주교 대주교로 승격(교황 요한 23세) 한국 자치 교계제도 성립(대목구시대 마감)
▲1962년 10월 11일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개회(62.10.11-65.12.8)
▲1963년 6월. 교황 바오로 6세 즉위(1965년 한국어 미사)
▲1963년 10월7일 수원교구, 서울대교구에서 분할돼 초대 교구장에 윤공희 주교 임명.
▲1964년 대건신학대학 공식 인가.
▲1965년 1월1일 한국어 미사경본의 시행 통해 전례 쇄신. 3월22일 원주교구, 춘천교구로부터 분할 설정돼 초대 교구장에 지학순 주교 임명.
▲1966년 대한민국과 바티칸, 대사급 외교관 교환. 주디체 대주교, 공사에서 대사로 승격 임명.
▲1966년 2월 15일 마산교구 설정
▲1966년 3월 10일 절두산 순교자 기념관 기공식
▲1967년 10월 22일 절두산 순교자 기념관 낙성식
▲1968년 10월6일 병인 순교복자 24위 로마에서 시복식. 숲정이 순교지 순교복자 현양탑 건립
▲1969년 3월28일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대주교, 추기경 서임. 5월29일 안동교구, 대구대교구로부터 분할 설정돼 초대 교구장에 두봉 주교 임명.
▲1969년 5월 29. 안동교구 설정
▲1971년 서울 대교구 토요 특전미사 시행
▲1974년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설립, 제1차 시국선언 ‘우리의 주장’ 발표.
▲1974년 8월 26일 정의평화구현사제단 활동 개시(지학순 주교 구속)
▲1976년 3월 1일 3.1 명동사건 발생
▲1977년 공동번역성서 간행
▲1977년 3월 21일 제주지목구, 교구 승격돼 교구장에 박정일 주교 임명.
▲1980년 황사평 교회 묘지를 공원 묘지화 공사
▲1981년 10월18일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거행. 한국외방선교회, 첫 해외 선교사 4명 파푸아뉴기니에 파견.
▲1981년 10월. 최초 해외선교사 파견(4명, 한국외방선교회, 파푸아뉘기니)
▲1984년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맞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103위 순교복자 시성식 거행.
▲1988년 시공 1995년 치명자산 기념 성당완공
▲1989년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 여의도에서 거행.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1989년 10월 23. 군종교구 설정
▲1992년 말 한국 천주교 신자 300만 명 돌파.
▲1994년 제주 '대정성지' 조성
▲1996년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 잠실종합운동장서에서 개최.
▲1997년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시성추진('97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
▲1998년 서울대교구 최창무 주교, 첫 사목적 방북.
▲1999년 12월25일 2000년 대희년 개막과 한국 주교단 대희년 사목교서 발표.
▲2001년 말 한국 천주교 신자 420만 명.
▲2002년 9월 교황청 124위 시복시성추진 승인
▲2004년 6월 24일 의정부교구 설정
▲2005년 4월 1일 유흥식 라자로 대전교구장 계승
▲2006년 2월 22일 정진석 추기경 서임(서임식:3.24,로마 / 베네딕도 16세 교황)
▲2009년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 선종
▲2013년 3월 13일 214위 시복시성추진(조선왕조치하 순교자 133위 및 근,현대 신앙 증인 81위)
▲2013년 5월 23일 교황청 214위 시복시성추진 승인(문서번호 Prot.N.3087-1/12, Prot.VAR 6625/10)
▲2014년 1월 12일 염수정 추기경 서임(서임식: 2.22일,로마/프란치스코 교황)
▲2014년 8월 13일 -17일 까지. 아시아청년대회(대전교구)
▲2014년 8월 14일 프란치스코 교황 입국
▲2014년 8월 15일 대전 월드컵 경기장 미사 / 솔뫼 성지 방문
▲2014년 8월 16일 124위 순교자 시복식 / 음성 꽃동네 방문
▲2014년 8월 17일 아시아 주교회의 참석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폐막미사(해미성지)
▲2014년 8월 18일 한반도 평화와한민족의 화해를 위한 미사 집전(명동성당) / 출국
▲2021년 6월 11일 유흥식 라자로 성직자성 장관 임명, 대주교 승품
▲2021년 8월 2일 유흥식 라자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임명,
▲2022년 5월 29일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 임명
▲2024년 3월 1일 한국인 사제(신부) 등록수 7019명.
'가톨릭 스토리 > Anoth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톨릭 기도서 모음 (1) | 2023.02.25 |
---|---|
로마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벽화 (0) | 2023.02.04 |
가톨릭 성녀 (1) | 2022.12.16 |
찬미하고 신뢰하세요-Pierre Teilhard de Chardin (0) | 2022.12.09 |
교 황 연 대 표 (0) | 2022.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