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처녀가(老處女歌)-작자 미상
인간 세상 사람들아 이내 말씀 들어 보소
인간 만물 생긴 후에 금수 초목 짝이 있다
인간에 생긴 남자 부귀 자손 같건마는
이내 팔자 험궂을손 날 같은 이 또 있든가
백 년을 다 살아야 삼만 육천 날이로다
혼자 살면 천년 살며 정녀 되면 만년 살까
답답한 우리 부모 가난한 좀 양반이
양반인 체 도를 차려 처사가 불민하여
괴망*을 일삼으며 다만 한 딸 늙어 간다
적막한 빈방 안에 적료하게 홀로 앉아
전전반측* 잠 못 이뤄 혼자 사설 들어 보소
노망한 우리 부모 날 길러 무엇 하리
죽도록 날 길러서 잡아 쓸까 구워 쓸까
인황씨* 적 생긴 남녀 복희씨* 적 지은 가취
인간 배필 혼취함은 예로부터 있건마는
어떤 처녀 팔자 좋아 이십 전에 시집간다
남녀 자손 시집 장가 떳떳한 일이건만
이내 팔자 기험하야 사십까지 처녀로다
이럴 줄을 알았으면 처음 아니 나올 것을
월명 사창* 긴긴 밤에 침불안석* 잠 못 들어
적막한 빈방 안에 오락가락 다니면서
장래사 생각하니 더욱 답답 민망하다
부친 하나 반편이요 모친 하나 숙맥불변
날이 새면 내일이요 세가 쇠면 내년이라
혼인 사설 전폐하고 가난 사설뿐이로다
어디서 손님 오면 행여나 중매신가
아이 불러 힐문한즉 풍헌 약정* 환자* 재촉
어디서 편지 왔네 행여나 청혼선가
아이더러 물어보니 외삼촌의 부음이라
애고애고 설운지고 이내 간장 어이할꼬
앞집에 아모 아기 벌써 자손 보단 말가
동편 집 용골녀는 금명간에 시집가네
그동안에 무정세월 시집가서 풀련마는
친구 없고 혈족 없어 위로할 이 전혀 없고
우리 부모 무정하여 내 생각 전혀 없다
부귀빈천 생각 말고 인물 풍채 마땅커든
처녀 사십 나이 적소 혼인 거동 차려 주오
김동이도 상처하고 이동이도 가처로다
중매 할미 전혀 없네 날 찾을 이 어이 없노
감정 암소 살져 있고 봉사 전답 같건마는
사족 가문 가리면서 이대도록 늙히노니
연지분도 있건마는 성적 단장 전폐하고
감정 치마 흰 저고리 화경 거울 앞에 놓고
원산 같은 푸른 눈썹 세류 같은 가는 허리
아름답다 나의 자태 묘하도다 나의 거동
흐르는 이 세월에 아까울손 나의 거동
거울더러 하는 말이 어화 답답 내 팔자여
갈데없다 나도 너도 쓸데없다 너도 나도
우리 부친 병조 판서 할아버지 호조 판서
우리 문벌 이러하니 풍속 좇기 어려워라
아연듯 춘절 되니 초목 군생 다 즐기네
두견화 만발하고 잔디 잎 속잎 난다
삭은 바자 쟁쟁하고 종달새 도루 뜬다
춘풍 야월 세우 시에 독수공방 어이할꼬
원수의 아이들아 그런 말 하지 마라
앞집에는 신랑 오고 뒷집에는 신부 가네
내 귀에 듣는 바는 느낄 일도 하도 많다
녹양방초 저문 날에 해는 어이 수이 가노
초로 같은 우리 인생 표연히 늙어 가니
머리채는 옆에 끼고 다만 한숨뿐이로다
긴 밤에 짝이 없고 긴 날에 벗이 없다
앉았다가 누웠다가 다시금 생각하니
아마도 모진 목숨 죽지 못해 원수로다
[해제]
이 작품은 가난한 사대부 집안에서 혼기를 놓친 노처녀의슬픔을 비장하게 토로하고 있는 가사이다.
양반인 아버지와 사대부의 체면과 허위의식을 여성의 목소리로 풍자하고 있다.
*괴망: 말이나 행동이 괴상하고 망측함.
*전전반측: 잠 못 드는 모양.
*인황씨, 복희씨: 중국 고대 전설상의 제왕.
*월명 사창: 달이 뜨는 창가.
*침불안석: 불안이나 근심 등으로 편안히 자지 못함.
*풍헌 약정: 풍헌과 약정. 향약 조직의 임원.
*환자: 환곡. 곡식을 백성들에게 봄에 꾸어 주고 가을에 이자를 붙여 거두던 일.
[주제]
혼기를 놓친 노처녀의 신세 한탄과 양반가의 허위의식 비판
[구성]
•서사: 노처녀인 자신의 처지
•본사- 자신을 혼가시키지 않은 부모에 대한 비판
- 독수공방의 상황
- 중매에 대한 기대
- 혼가한 주변 인물에 대한 부러움
- 혼인 대상들에 대한 관심
- 혼인이 가능한 집안의 재물 상황
- 혼인 적기인 노처녀 자신의 미모
•결사: 세월의 흐름과 혼기를 놓쳐 가는 것에 대한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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