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백전>(梁山柏傳)-작자·연대 미상
명나라의 성화 연간에 남양 땅에 양현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해온 명문거족(名門巨族)의 아들이었고, 양현도 이들 선조의 고귀한 혈통을 이어받아 일찍부터 소년등과(少年登科)하여 벼슬이 이부상서에 올랐다.
양현은 또한 사람됨이 관후하고 고결하고 뜻이 굳어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았다.
벼슬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마음은 언제나 겸손하여 선배와 동료들을 예대(禮待)하였으니, 그들로부터 공경을 받았고, 임금에 대한 충성심도 대단하여 다른 충신에 못지않았으니 임금의 은총이 또한 각별하시었다.
그야말로 양현은 당시의 이상적인 인물이었다. 부귀영화가 골고루 갖추어져 온 명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이었다.
양현의 부인 왕씨 역시 그에 못지않은 훌륭한 부인이었다. 학문과 도덕이 남달리 뛰어났고, 마음이 인자하고 현숙해서 주위 사람들은 물론 비복들 사이에도 열렬한 존경을 받았다.
명문 대갓집 따님으로 남편 못지않은 가문에서 태어나 부인의 교양과 긍지를 충분히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렇게 해서 서로는 좋은 부부였고, 이해 있는 부부였고, 행복한 부부였다. 그들에게 무엇 하나 그리울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행복한 가정의 행복한 주인공들이었다.
여기에서 이들에게 또 바랄 것이 무엇이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러한 행복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양현 내외는 언제나 그 마음에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다. 이것은 그들의 마음을 언제나 우울하게 만들고, 슬픈 그림자처럼 마음 한구석에 깔려 있었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 우울하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슬하에 일점 혈육이 없다는 것이었다.
자식이 없는 비애와 불행을 자식이 없는 부모만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이리라. 더구나 부모의 나이가 점점 노경에 들게 되면 그들의 생활의 전부가 이 한 가지 불행에 기울고, 이 끝없는 외로움은 그들의 모든 존재를 좌우하게 된다.
양현 내외가 바로 이러한 경우에 처해 있었다.
부인의 나이가 어느새 50에 가깝고 보니 그들의 슬픔과 불행은 대단하였다. 자식 하나만 있었으면 하는 두 내외의 마음은 참으로 간절하였다. 일평생의 모든 행복과 성의를 기울여서라도 단 한 점 혈육을 얻었으면 해서 밤낮으로 천지신명께 기도를 드렸다.
때는 방춘성화시(方春盛和詩)라 젊은 사람들 같으면 인생의 봄이 왔다가 즐길 때였다. 그러나 50을 바라보는 양현 내외에 봄이 있을 것인가. 자식이 없고, 자식을 원하는 이들의 마음에는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봄도 한낱 슬픔을 안겨다 줄 따름이었다.
그래서 이 즐거운 봄날의 어느 날 밤, 양현은 자기의 슬픈 마음을 잠시나마 잊기 위하여 후원 높은 누에 올라 월색을 완상(玩賞)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혼자서 기울이는 술이니, 그것은 더구나 한 잔 한 잔 가슴에 불행의 불을 갖다 붙이는 것 같기만 하였다. 한 잔 술을 기울일 때마다 가슴은 화끈거리고 뜨거워 올라 무거운 한숨이 길게 터져나올 뿐이었다.
술은 연거푸 여러 잔을 기울였고, 양현은 이와 같이 수없이 술을 마셨을 때, 취기는 그를 사로잡아 그는 자기도 모르게 난간을 의지하고 스르르 취한 듯이 잠들어 버렸다.
그것은 마치 모든 것에 실망한 자의 마지막 절망의 순간인 듯도 하였다.
그러자 꿈속에서 이상한 세계가 그를 찾아 주었다. 이 알 수 없는 세계에 아름다운 채운(彩雲)이 하늘을 뒤덮고, 그 채운 사이로 순백한 거룩한 선동(仙童) 하나가 난데없이 나타났다.
선동은 양현 옆으로 다가와서 꾸벅 절을 올리고, 낭랑한 음성으로 말하였다.
“소자는 천상 선동이더니, 옥제께 득죄(得罪)하와 인간에 내치시니 갈바를 모르고 정히 방황하옵더니만 마침 창해관음보살이 지시하므로 그 분부를 좇아 이리 왔사오니 바라건대 대인은 어여삐 여기소서.”
양현은 이런 말에 더욱 놀라서 그를 붙들고 좀 더 자세히 물어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그를 신비의 세계에서 내치는 결과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는 놀라 깨어 일어나 그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조차 없었다. 꿈이라고 하더라도 기쁘기 짝이 없는 꿈이었다. 현실에서 만나지 못한 아들을 꿈속에서라도 만났으니 어찌 되었든 반가운 것이 아니었을까.
양현은 기쁨과 막연한 기대에 넘쳐서 내당으로 갔다. 부인은 이 때 등잔불 밑에 앉아 평소의 그 여자답게 《예기(禮記)》를 읽고 있었다.
부인도 잠시 졸다가 깨어났다는 것이다. 두 내외는 서로 거의 같은 시간에 거의 같은 내용의 꿈을 꾼 것을 알고, 그것을 이야기하며 여기서 또 한 번 놀랐다. 신비한 기적이 이날 밤 자식이 없어서 슬퍼하는 양현 내외에 똑같이 찾아와 준 것이다.
이날 밤의 두 내외는 한없이 아름답고 열렬하였다. 또 전에없이 즐겁고 행복하였다. 방춘화시의 아름다운 봄은 이들에게 도와 준 것이었다.
아닌게아니라 이날부터 왕씨는 태기가 있었다. 원근(遠近) 친척들은 말할 것도 없겠고, 상하 비복들의 기쁨과 놀라움은 무엇이라고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 해서 열 달 만삭이 되자 해산을 하게 되었는데, 이 때 또 행복한 산모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그것은 해산을 할 때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왕씨는 산실이 불편해서 침석을 의지하고 잠시 고통을 참고 있었다. 그러자 혼몽한 산모의 눈앞에 별안간 한 쌍의 선녀가 나타났다. 선녀들은 왕씨의 팔을 양쪽에서 잡고 해산을 돕다가 아기가 모체에서 떨어지자, 목욕을 시키고 조심스럽게 뉘어 놓았다.
이와 같이 산파 역할을 해준 선녀들은 일이 모두 끝난 후 힘없이 누워 있는 산모에게 말하였다.
“이 아기는 천상 선동이라. 초년에 비록 액운이 있으나 그 액운이 지나면 앞길이 훤히 열려 부귀 세상에 극진하리니 부인은 귀히 길러 후사를 빛내소서.”
그러자 그들은 어디론가 간 곳조차 알 수가 없었다.
산모의 희미한 시각은 차츰차츰 밝아져 왔다. 그러나 선녀들의 인상은 아직도 그 산모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서 떠나지 않았다. 왕씨는 얼른 몇 달 전 태기가 있을 무렵의 꿈을 생각하였다. 그것과 지금의 기적이 어딘가 비슷한 것 같아서 부인은 놀라며 하늘에 무수히 감사하였다.
그리고 왕씨는 곁에 누워 있는 자신의 조그만 분신을 바라보며, 자신의 고통도 잊고, 숱한 경악과 환희와 감사와 모성애를 느꼈다. 50이 가까운 왕씨는 그제야 비로소 생명의 창조와 그 완성이라는 신비 중의 신비에 참여한 자신에 대하여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이해해 보려고 애썼다.
그럴 때마다 아까의 신기한 기적이 왕씨의 눈에 선하게 떠오르곤 하였다. 그래서 더구나 아기가 사랑스럽고 고마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 때 남편이 기쁜 얼굴로 달려 들어와 산모를 위로하고 아기를 꼭 껴안았다. 그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는 듯 하였다.
양현은 산모를 위한 탕약을 가지고 들어왔으나 그것조차 옆에다 놓은 채 잊은 듯이 아기만 지켜보았다. 백옥 같은 옥동자요, 기남자가 분명하다고 마음속으로부터 감탄의 소리를 지르며, 아기와 산모에게 번갈아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였다.
양현의 얼굴에서는 기쁜 웃음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아기의 눈썹도, 귀도, 코도 그의 마음속에서 마음껏 부풀고 먼 훗날에 까지 뻗어서 예언하고 확신하고 격찬해 마지않았다. 그는 아들의 장래를 벌써부터 확신을 가지고 단정하였다. 이렇게 생긴 아들이라면 조상의 유업(遺業)을 받들어 그것을 더욱 빛나게 해줄 훌륭한 아들이 되리라고 예견하였다.
아내가 선녀의 이야기를 하자, 그는 그것에 단정을 내리며 이 아기는 우리 둘 사이의 아기라기보다 하늘에서 내려주신 거룩한 아이이니 하느님을 모시듯 길러야 한다고 말하고 그에 따른 특별한 육아법도 한두 가지 아내에게 들려주었다. 그는 아들의 잘생긴 눈썹이나 귀 심지어는 발가락까지 가리키며 천상의 아들임이 틀림없고, 선조의 혈통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증명해 보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남편의 설명을 누운 채 지켜보는 왕씨는 방글방글 한없이 행복한 웃음으로 대꾸하였다.
양현은 산실을 돌보는 시비가 들어와서야 탕약을 알아보고, 그것을 아내에게 권하고, 시비에게 산모를 잘 돌보라는 분부를 하고 산실을 나갔다. 그는 아들의 이름을 산백이라 지었다. 그는 그리고도 몇 번이나 아들을 보기 위하여 산실에 들어오곤 하였다.
양현은 그럴 때마다 아들의 자그만 몸에서 꼭꼭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해서 아내와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았다. 이렇게 해서 즐거운 하루하루는 가는 줄도 모르게 지나가서 어느덧 아들의 나이가 세 살이나 되었다. 산백은 같은 또래의 아이보다도 숙성하고 말도 잘하였다. 다른 아이들보다 갑절이나 크고 숙성한 것만 같았다. 그것이 도리어 부모의 마음을 걱정스럽게 해줄 정도였다.
양현 내외의 생활은 그 전부가 이제는 이 늦게 얻은 아들에게 있는 듯하였다. 그들의 관심은 모두 아들에게 끌려서 나날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볼 때마다 완전히 행복한 듯하였다. 이 때 까지는 아들의 건강을 위하여 공부를 그다지 과도하게 가르치지 않던 아버지였건만, 이러한 건강한 소년이 되자 이 때부터 본격적인 학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산백도 물론 어려서부터 재치가 있고 총명하였다. 이런 아이는 보통 언제나 그러하듯이 공부를 잘하고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식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건강을 우려하여 공부에 그다지 힘을 쓰지 않는 것 같은 때에도 그의 학습의 진도는 남의 몇 배로 빨랐다. 이 때가 되어 아들의 학습에 열을 내기 시작한 아버지는 그를 유명한 운향사라는 절에 들여보내기로 결심하였다.
남편의 이러한 결심에 대하여 현숙한 부인도 반대하지 않았다. 원래가 교양이 높고 학문이 깊은 부인은 아들의 교육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반대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부모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은 산백 자신이라고나 할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어느새 열네 살의 씩씩한 소년이 된 양산백은 그에게 충성을 다하는 서동을 하나 데리고 부모의 슬하를 떠나 운향사로 향하였다.
운향사가 있는 산은 매우 깊고 험하였다. 자연의 장엄한 위력과 신비를 자랑하는 온갖 요소로 꽉 차 있는 산이었다. 기암괴봉이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나, 천길이 넘을 듯싶은 폭포나,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곡의 물이나, 늙은 소나무나, 밤이면 무서운 울음소리는 내는 산짐승이나, 아침저녁이면 언제 없어졌다가 찾아드는지도 알 수 없는 깊은 안개나, 대낮의 산봉우리에 걸려 있는 푸른 하늘의 아름다운 흰 구름이나 그 무엇이든 이러한 깊은 산을 상징할 만한 것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종교적인 엄숙한 분위기를 과시하고도 남을 수 있는 대자연의 공포와 묘를 마음껏 간직하고 있는, 그것은 저 중국의 명산 중의 한 산임에 틀림이 없었다.
열네 살의 나이 어린 소년은 자기를 지켜주는 서동을 뒤에 이끌고, 이 대자연의 신비를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한참씩 서서 놀라고 음미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산골짜기의 길을 밟아서 더듬어 올라갔다. 산기슭에서 운향사가 있는 주봉의 턱 밑 산중까지는 한나절도 더 걸릴 정도의 먼 길이었다.
그것은 계곡과 절벽과 산을 돌고 돌아서 한없이 뻗어 오른, 때로는 가파르고 때로는 절벽 같은 길을 내려가야만 하는 참으로 험한 산길이었다. 산문 못 미처에 이르렀을 때 같은 방향으로 오는 또 하나 저쪽 길에 역시 같은 차림을, 그리고 나이도 비슷한 소년이 나타났다. 양산백은 약간 의문도 없지 않았으나 그 소년도 산백과 같은 목적으로 오는 것이 그의 눈에 완연하게 보였다. 동자 하나를 데리고 있는 것도 그와 꼭 같았다.
그래서 산백은 처음부터 상대방 소년과 아예 동무가 된 듯한 반가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상대방도 이쪽의 목적을 알아보며 반가워하는 듯하였다.
“공자는 어디에서 오시며, 존성대명(尊姓大名)을 무엇이라 하시나이까?”
하고 상대방이 세 갈래의 길에 와서 서로가 마주쳤을 때, 양산백은 손에 쥔 백우선(白羽扇)을 고쳐 쥐며 이 첫 대면의 글동무에게 제법 경의를 표시하면서 먼저 말을 건네 보았다.
상대방 소년도 우선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상대방은 여자 같고 여자 중에서도 실로 뛰어나게 아름다워서 양산백은 자신도 모르게 놀랐을 정도였다. 나중에 음성을 들었을 때에는 정말 여자임에 틀림없다 하면서 내심 단정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소생은 평강 땅에서 사오며 추양대라 하오이다. 소생은 본디 머리가 둔하여 글자를 잘 해득하지 못하와 이제 처음으로 운향사를 구경하고자 왔거니와 현형(賢兄)은 어디 계시며 어디로 가시나이까?”
“소생은 남양 땅에 사는 양상서의 독자인 산백이라 하며, 마침 운향사로 공부하고자 오는 길이오이다. 천행으로 존형(尊兄)을 만나매 정이 자연 구면 같으니, 알지 못할세라. 우리 연분이 지중하여 만난 것이 아니로소이까?”
양산백은 말이 오갈 때마다 자신도 알 수 없게끔 이상하게 기쁘기만 하였다. 상대방의 겸손하고, 좋은 가정에서 태어난 것 같은 점도 겸해서 그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었다.
주인은 주인대로 기뻐하고 반가워할 때, 동자놈들도 저희들끼리 뒤에서 눈을 마주치며 눈짓으로 인사를 하였다. 그 눈짓은 주인들의 말보다도 더 명확한 의사를 표시하듯 하였다. 서로는 아무래도 주인이 절로 올라가 행장을 푼 뒤에 조용히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하자 하고 약속을 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주인들이 이제는 같은 길인 산문으로 향하여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를 할 때에는 그들은 뒤를 약간 떨어져서 걸으면서 무언가 지껄였다.
길은 거기서부터 역시 조금씩 올라가기는 하지만, 조금 넓어져서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나란히 걷기에 꼭 좋았다. 양산백과 추양대는 옆에서 보기에도 매우 다정스러운 동무처럼 고향 이야기니 집안 이야기니 장래의 포부니 그런 것을 피차 묻고 대답하여 즐겁게 걸어 올라갔다.
이 문답에서 양산백은 자기 자신과 비슷한 가정이며 환경인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추양대가 남자가 아닌 여자라는 확증은 여전히 그 얘기에서도 얻지 못하였다. 그래서 남자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고 흔히 남자 중에도 여자다운 남자가 있고 더구나 이만한 열네 살의 소년일 경우에는 이 소년은 여자였으면 더욱 아름답고 좋았겠는데 조물이 무슨 착오로 이러한 여자 아닌 남자를 만들어 놓았을까 하는 생각만을 갖고 더 이상 의심을 하지 않기로 하였다.
만약 추양대가 여자라면 처음부터 이와 같이 다정할 수도 없고, 또 남녀 칠세 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는 엄연한 교훈이 있고 보면, 더 더욱 남자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할 정도였다. 이토록 산백이 관심을 갖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여 추양대가 너무도 아름답고 우아해서 여자를 닮은 듯하였다. 그러나 추양대가 여자라는 것을 알려면 아직도 오랜 시일이 필요하였다.
주인에게 노예의 충성을 맹세한 추양대의 동자놈도 그 한 가지 점만은 언제까지라도 조심스럽게 입을 꼭 다물고 발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추양대를 여자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면서도 남자라고 편리한 대로 결론을 지어 버리는 양산백의 의문에는 그것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추양대에게 역시 남자다운 점이 있다는 결과로도 되었다. 그것은 비단 추양대가 남장을 한 데서 오는 것만은 아니었다. 활달한 성격이라든가 남성적인 취미라든가 의지 같은 데서도 그러하였다. 아무튼 추양대를 낳았을 때 부모가 남자아이를 무척 바랐고 그래서 남자의 이름과 의복을 늘 입혀 왔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알 만한 일이었다.
추양대가 이 세상에 나온 것은 양산백이 이 세상에 나온 것과 꼭 같은 기적의 경로를 밟아서 나왔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야기에서 여자라는 성별만을 제외하고 그 점을 확인하며 똑같이 놀랐다. 부모가 연광(年光)이 반이 넘을 때까지 슬하에 일점 혈육이 없었다는 것도 두 사람의 경우는 같았고, 열 달 만삭에 꿈 같은 기적을 안고 어머니가 나를 낳았다는 점도 두 사람은 꼭 같았다.
다만 다르다는 점은 저쪽은 여자고 이쪽은 남자라는 점만이 다른 것이리라. 그래서 태몽의 내용도 약간 달랐으나 그것은 여자라고 밝히는 것을 꺼려하는 추양대가 적당히 이야기를 하였기 때문에 역시 같았다. 하기야 이러한 나를 낳은 어머니의 태몽 같은 태고의 고색창연한 이야기가 되어서 전해 듣고서야 안다는 그 본래의 성질상 적당히 이야기를 해도 그다지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해서 두 남녀는 이 세상의 햇빛을 쪼일 때까지 신기하게도 같은 비밀을 안고 인간에 내려온 것이니, 장소는 다를망정 때는 비슷해서 나이도 같고 게다가 가정 환경도 거의 같으니 실로 하늘이 정해 주신 연적으로 같은 길에서 만났다고 하는 것은 이 또한 무슨 망령된 운명의 장난이라고 할 것인가.
이 세상은 비록 다채롭다고 하더라도 때로는 우연의 일치가 있어서 오히려 이러한 우연의 일치를 인간은 믿지 않는 법이다. 그것은 여하간 추양대의 가정도 양산백의 가정만큼 부유하고, 대대로 부귀영화가 겸비한 행복한 명문거족의 집안이었다. 추양대의 아버지인 추이라는 사람은 양산백의 아버지인 양현만큼 재주가 있고 가문이 좋아서 일찍 소년등과하였고 벼슬도 양현만큼 높직이 상서령에 이르렀다.
추이는 양현과 똑같이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고, 강직한 충신이어서 임금의 은총도 두터웠다. 그의 아내도 양현 아내 못지않게 학문과 도덕이 높은 현숙한 여자였다. 한 시대의 한 사회에 있어서 불행한 인간이나 가정이라면 그것도 차이점을 발견하기도 어려운 정도로 대충 같은 것이 아닐까. 나이 어린 양산백과 추양대는 서로의 이야기에서 그 점을 발견하고 더욱 반가워 하였다.
불행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의 향수가 있고,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의 향수가 있다. 그 바로 이 두 소년 소녀의 경험한 감정이 정확하게 증명해 주었다. 이렇게 해서 천생연분의 두 소년 소녀는 그러나 서로 이성이라는 것을 모르면서, 뒤에 그들끼리 또 역시 향수의 천국을 이루며 따라오는 노비들을 대동하고, 즐겁게 이야기하고 장래를 설계하면서, 최후의 목적지인 운향사의 자랑스러운 산문을 들어갔다.
그러자 이들의 명랑한 음성을 들었는지, 이 깊은 산중의 장중한 법성(法城)을 지키고 있는 몇몇 불제자들이 재빨리 달려나와 두 소년 소녀를 맞이해 주었다. 중들은 그들의 독특한 겸허한 태도로 합장배례하고, 일찍 나와 영접하지 못한 것을 겸손하게 사과하였다.
“우리 양인은 유산객(遊山客)이라.”
하고 양산백은 아무래도 자기가 나서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두 사람을 대신해서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이곳에 유하여 공부를 성사하고자 하나니, 존사는 유벽한 객실을 빌리면 거처하고자 하나이다.”
중들이 이 소년 선비들의 요구대로 법당 뒤 한적한 객실로 인도해 주었다. 그들은 또 이 두 소년을 위하여 거처를 깨끗이 청소하고 공부하기에 적당한 환경을 만들어 주며 온갖 친절을 아끼지 않았다. 거기에 동자들의 멸사봉공(滅私奉公)하는 충성심도 곁들여 양산백과 추양대는 자기 집에 있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불전에는 적당히 성의를 보여 불공을 들여놓았으니 불제자들도 만족한 듯하였고 두 소년의 부유한 재력과 명문거족이라는 명예가 그들의 존경을 십분 발휘하게 해서 모든 것은 대체로 원만하게 돌아갔다. 공부에 열중하고 시서(詩書)를 토론하며 즐길 때 동자들은 해방의 감격을 느끼며 법당 한모퉁이에서 저희들끼리 화제를 만들어 이야기를 하였으나 그럴 때마다 그들의 입에서 운향사의 이름에 걸릴 만한 말이 나오고, 때로는 중들의 절을 친 그들의 특이한 풍자로 이야기하는 것을 봐도 이 절은 아무튼 부잣집 자제들이 공부하고 수양하기에는 적합한 곳이었다. 그래서 절은 점점 유족해지고, 해마다 이 성의 영역은 넓어지고, 불상과 건물은 늘어나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많아졌다.
양산백의 아버지와 추양대의 아버지가 똑같이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를 안심하고 이곳에 들여보낸 이유도 바로 이러한 점에 있다 하겠다. 그들은 운향사의 존경받을 만한 후원자들이었다. 동자들은 자기네 주인의 재력을, 그리고 인자한 박애 사상을 자랑삼아 이야기하곤 하였다.
양산백과 추양대는 이와 같은 다시없는 환경 속에서 학업의 공은 나날이 늘어가기만 하였다. 서로는 재주와 총명과 열의에 있어서도 거의 비슷한 적수가 되어서 모르는 것을 가르치고 도와, 말하자면 한 사람이 두 사람의 공부를 하는 셈이었다. 그것이 더구나 똑같은 천재들이 다 보니 범인들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급속한 진보를 가져왔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의 학업이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괄목하게 발전하는 가운데 어느덧 3년이란 해를 맞이하였다. 그동안 학문은 깊고 높아졌으나 양산백이 계속 마음속에 간직해 온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요즘에 와서 갑자기 추양대를 여자로 단정하고 싶은 마음이 열을 띄어 왔다. 3년의 학업이 이루어지자 그는 서서히 이 중대한 문제를 밝혀 보고 싶었다.
어느 날인가는 서로의 우정을 나중까지 맹세하기 위하여 두 사람은 불전 맹약을 하였다. 서로는 의형제가 되어 죽을 때까지 이 성스러운 우의를 배신하지 말하는 것이다. 생일을 비교해 보니 양산백 쪽이 며칠인가 앞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체격으로 봐도 양산백이 훨씬 크고 위가 됨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이 체격을 비교하는 얄미운 장난이 나왔을 때, 양산백은 추양대더러 여자가 되었더라면 더욱 좋았겠다, 그러기만 하였더라면 추양대는 더욱 아름다웠을 것이고 다시없는 천생연분이 되어 의형제 대신 부부가 될 수 있는데 하고 대담하게 농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자 추양대는 정말 여자처럼 양 볼이 수줍게 빨개져 눈을 내리뜨고 특별한 의미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양산백의 의문은 더욱 더 긴장하기 시작하였다. 서로는 공부도 한방에서 하였고 잠자리도 같은 방에서 아래 윗목을 차지하였다. 겨울이면 아랫목을 차지하고 자는 양산백이 추양대더러 가까이 오라고 친절하게 청하곤 하였으나, 추양대는 여전히 윗목에서 잠을 잤다. 언제나 옷을 입은 채로 자는 추양대의 태도는 양산백에게는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요즘에 와서 추양대의 육체적 변화가 점점 눈에 띄고 그것은 아무리 해도 감출 수 없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양산백은 추양대의 비밀을 탐지해 볼 결심을 하였다. 3년의 공을 이루고 보니 그의 주위가 산만해지고, 공연한 심사가 나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남녀 칠세 부동석이라는 엄연한 덕목이 그의 선성(善性)을 압도하는 죄악감을 전신에 느끼면서, 그러나 그것을 한편 유쾌하게 생각하기도 하면서, 어느 날 밤인가는 추양대가 깊은 잠이 들었을 때 슬며시 그쪽으로 기어갔다. 여자였으면 하는 기대는 이상하게도 그를 맹렬하게 유혹하였다.
양산백은 되도록 자연스러움을 가장하려고 애썼다. 처음 자기 이불을 그쪽으로 끌어가려고 생각해 보았으나 그것을 좋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만약 발각되는 경우에는 고단해서 잠을 험하게 잤다는 핑계를 갖기 위하여, 추양대의 옆으로 누운 채 기어가, 그 옆에서 잠시 동안 잠을 가장하고 모든 신경을 모아 상대방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그의 가슴은 두근두근하며 몇 번인가 이 추악한 죄악의 탐색전을 그만 단념할까 하고도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런 경우의 내심의 맹렬한 투쟁의 결과 그의 도덕은 완전히 패배해 버리고야 말았다. 그는 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초인적인 강한 생명의 약동을 느끼는 듯하였다.
결국 그의 마음의 악마는 승리해서 3년 동안의 형설지공(螢雪之功)도 인내력도 도덕적 긍지도 나무아미타불이 되어 마침내 그는 한 손을 추양대의 이불 속으로 가져갔다. 이 때도 그는 비상한 주의력과 경계심을 발동하여 자연스럽게 가장하려고 애썼다. 언젠가 도둑의 이야기를 동자로부터 들은 일이 있는데, 그 도둑의 마음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도 그는 생각하였다. 인간은 언제나 도둑이 되고 악인이 될 수 있다는 증거를 발견한 듯하며, 그는 어둠 속에서도 얼굴을 화끈하게 느끼며 이내 그 손을 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힘 대신 추양대의 힘에 의하여 그 손은 돌려졌다. 그는 일부러 잠짓을 해 보이며, 몸을 한 바퀴 커다랗게 뒤쳐 자기 이불 쪽으로 돌아누워 여전히 씩씩 자는 척하였다. 이 때 아닌 침범에 놀라 추양대는 이불을 제치며 일어나 앉았다.
“아무리 곤하기로 무슨 잠을 이토록 험하게 주무실까!”
하고, 그 자는 머리맡의 촛대에 불을 켜고 그 불빛으로 양산백의 자는 광경을 살펴보며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반대 방향으로 누워서 여전히 곤하게 자는 척하는 양산백은 얼굴이 화끈거려 견딜 수 없었다. 죄악감에 죽고 싶을 정도였다. 다행히 잠짓이라고 인정해 주는 것이 고마울 정도였다. 그러자 그의 죄악감은 사라지고, 이제는 호기심이 또다시 그의 마음에 살아서 여자가 틀림이 없다는 단정을 내리기에 그는 내심 주저하지 않았다.
추양대는 양산백의 변태적인 모험을 잠짓으로만 믿는 듯하였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아 책을 펼쳐 놓고 보기 시작하였다. 양산백도 역시 잠이 오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일어나 앉을 수도 없어서 그대로 자는 척하였다. 그것이 더욱 어려운 고역이었다.
이로부터 며칠 동안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 양산백 자신이 접근을 피하였고 조심스럽게 날을 보냈다. 양심과 도덕이 승리를 한 일종의 자숙 기간이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의 악마가 완전히 죽어 버린 것은 아니었다. 때때로 자신을 누르고 그것은 머리를 쳐들어서 그의 모험심을 선동하는 수도 있었다. 어쨌든 양산백은 이와 같이 자숙하면서도 일정의 거리를 두고 추양대를 관찰하고, 여자라는 자기의 확신에 더욱 분명한 증거를 잡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눈살이 찌푸려질, 보다 추악한 탐색의 방법도 생각이 났으나 그의 도덕심이 그런 방법만큼은 용납하지 않았다.
이런 중에도 서로의 우정은 더욱 가까워졌다. 본능이라고 할까 무엇인가의 초연한 힘이 서로의 마음을 자꾸만 끌어당기고 있는 듯도 하였다. 그것은 우정을 넘어서서 애정의 접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서로는 똑같이 이 애정의 성질을 잘 알지 못하고 있었으나, 그런 중에도 양산백은 더구나 초조한 듯하였다. 여자라는 증거만 분명하게 잡는다면 그는 대번에 이 아름다운 여성에게 노예의 맹세를 해 보이고 싶을 정도로 그의 마음은 점점 흥분에 올랐다.
이에 비하여 추양대의 쪽은 아주 평온한 상태였다. 학업을 완성하고 이제는 돌아갈 때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것을 잘 마치고 돌아가면, 집에 돌아가서도 부모를 통하여 적당히 예를 벗어나지 않는 방법으로 양산백에게 구혼을 할 수도 있겠다고 낙관을 하고 있을 정도였다. 요조숙녀의 미덕만은 꼭 지켜야 한다고 마음 굳게 결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자신의 비밀을 완벽하게 지켜 가리라고 생각하였다.
심증을 얻기만 한 양산백은 여전히 불안하였다. 이렇게 되고 보니 공부도 되지 않았다. 공연스레 혼자서 산을 뛰어다니기도 하고 높은 바위 위에 앉아 우두커니 하늘의 흰 구름을 바라보기도 하고, 때로는 산새들이 서로 좋아서 노는 것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알 수 없는 기묘한 감동에 흥분한 채 자기 방으로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어떤 때는 묘한 생각이 나서 추양대의 동자를 산으로 데리고 가 그의 주인에 대한 비밀을 이렇게 저렇게 찾아보려고 애썼으나 그것은 결국 헛수고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이러던 어느 날 양산백의 의문은 또다시 맹렬한 힘을 가지고 그의 마음에서 머리를 쳐들어왔다. 그는 그야말로 악마의 포로가 되어 그것의 지배 속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겨 버린 듯하였다.
이날 밤 양산백은 그때 이후 처음으로 대담한 모험을 시도하였다. 추양대는 매우 곤하게 잠들은 듯하였다. 창문의 달빛조차 없는 캄캄한 방 안에서 잠자는 숨소리는 그것을 증명하였다.
양산백은 자기의 행동에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도 하였다. 상대방이 여자라면 이만한 모험쯤은 남자로서 실로 당연한 일이 아닌가. 공자에게도 부인은 있으며, 성군으로 만고에 이름 있는 문왕도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던가. 《시경(詩經)》의 첫머리에 요조숙녀를 칭찬한 것도 군자가 할 일이다. 그는 자기의 공상에 날개를 달아서 무한한 허공을 날게 하며 고금의 그럴싸한 실례를 찾아내어 자기의 행동을 변호하기 시작하였다.
추양대가 놀라 눈을 떠서 자기를 비난한다면 이렇게 대답하리라 하고 그는 머릿속에서 그에 대한 온갖 준비를 하였다. 범죄자의 심리적 경험과 똑같은 경험을 그도 이 순간에 마음속에서 하고 있었다.
양산백은 자기가 추양대를 열렬히 사랑한다고도 생각하였다. 추양대가 만일 자신의 심중과는 달리 여자가 아니라면 아예 절망해서 자살이라도 해 버릴 정도로 그는 이 세상의 어떠한 애인들보다도 더욱 열광적으로 추양대를 사랑하고 있다고 자기에게 다짐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감정은 그의 모험적인 행동에 더욱 맹렬한 불을 붙여 놓은 결과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불같이 흥분한 양산백은 전에 없이 대담하게 상대방에게 접근해 갔다. 추양대의 이불 속으로 자기 몸을 바짝 붙여 놓고 추양대의 가슴을 더듬었다. 순간 그는 승리의 환성을 질렀다. 전신의 피가 그 손에 집중되고, 모든 생명력이 그 손끝에 모여든 것 같아 스스로 놀라서 손을 뗐다. 손바닥의 촉감은 뗀 후에도 더욱 선명하게 느껴져서 나중에도 생각한 일이지만 그 인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다.
양산백은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그 강한 자극적인 육체의 희열을 억제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맹렬해져서 처리하기에 곤란하였다. 되도록 상대방을 잠에서 깨우고 싶지 않았다. 상대방이 모르는 중에 상대방의 비밀을 알아본다는 것은 매우 유쾌한 일이었다.
그는 다시 조심스럽게 손을 써서 그 여자의 옷고름을 풀었다. 추양대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는 유쾌하고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부풀어오른 그녀의 젖가슴과 그 말할 수 없이 매혹적인 체온은 단번에 그의 모든 존재를 사로잡아 버렸다. 그는 자기 몸을 그 여자에게 내던지며 얼굴을 들어 그 여자의 뺨에 대고 자기 뺨을 비볐다. 그리고 자기 입을 그 여자의 입으로 가져가려 하였을 때 추양대는 비로소 발칵 놀라며 소스라쳐 일어나 앉았다.
그러나 그때처럼 추양대는 불을 켜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가 몹시 분격하는 것은 알 수 있었으나 그 이상 반발을 보이지는 않았다. 양산백은 무어라고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자기 자신조차 알 수 없는 이 묘한 유쾌하지 않은 감정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은 오래 가지 않았다. 자기가 취한 행동에 대한 상대방의 인정을 받고 싶은 필요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이 요구는 그를 또다시 대담하게 하였다.
양산백은 자기의 모험을 사과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한 일이 아니고, 저항할 수 없는 무엇인가의 힘, 본능의 욕구가 그렇게 한 것이라고 변명하였다. 꽃을 보고 달려드는 나비가 죄인이 될 수 있느냐고 그는 자기를 변명해서 말하였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에게 자기를 감추고 있는 추양대의 잘못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녀를 위로하며 그는 지금까지의 우정 이상으로 그녀를 사랑한다고 맹세해 보였다. 자기는 처음부터 추양대가 여자인 것을 알았고, 여자이기를 바랐다고 그는 말하였다. 이것은 천생연분이며, 기연(奇緣)이라 할 수 있으니, 서로는 아무리 감추고 떨어지려고 애써도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도 그는 말하였다. 그러는 동안 추양대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울고만 있었다.
그것이 안타깝고 가엾은 듯해서 양산백은 그녀의 옆으로 가다가 어깨를 쓸어 주며 위로해 주었다. 천생연분이란 말과 백년해로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며 맹세하였다. 그리고 불안을 덜어 주기 위하여 불을 켰다. 추양대는 양산백이 풀어놓은 앞자락 옷을 만지기 시작하였다.
양 뺨이 빨갛게 흥분해 있었다. 그 위로 눈물이 흐른 자국이 보이고, 눈시울에도 이슬방울 같은 눈물이 담겨져 희미한 불빛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것이 더욱 그 여자를 여자처럼 해주고 한없이 아름다웠다.
양산백은 또다시 정식으로 사과하고 구혼하고 맹세해 보이고 자기의 욕망을 들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 성급한 소년 선비는 상대방을 정복할 욕망에만 열중하여 그것을 실현시켜 보려고 애쓰는 듯하였다. 그의 혼은 한없이 단순하고 결백하였다. 육체적 욕망의 실현을 그는 결혼이라고 보았고, 그렇게 하기로 결심하였다. 육체 관계를 떠난 결혼이라든가 애정이라든가를 그는 인정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다. 그는 동물적인 욕망에 따라 동침을 요구하였고 그것을 백년해로의 입문이며 증거라고 솔직하게 인정하였다.
이러한 관념과 사상은 여자 편에 있어서도 똑같아서 서로는 논리의 착오나 관념의 차이 같은 것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니 육례(六禮)를 밟지 않은 결혼이나 동침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 부모도 모르는 결혼을 인정할 수는 없었다. 효심이 강하고 덕성이 높은 추양대는 더구나 그러한 범죄를 용인할 수는 없었다.
추양대는 눈물을 뚝 끊고 이성을 되찾자 그 점을 강조하며 양산백에게 후일을 기약해 보였다. 그래서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애를 쓰며 자기가 남장을 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양산백의 예지(叡智)에 놀랐다고 깔깔대고 웃어 보이기 까지 하였다.
추양대는 이제부터 집으로 돌아가면 남복(男服)은 결코 않으리라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것을 기회로 양산백은 또 자신의 심각한 욕망에 돌아가 이제는 위협조로 그러면 지난번 의형제를 맺은 평생의 의리를 배신할 작정이냐고 협박하고, 그렇게 되면 자기는 죽음으로 그것에 항의해 보이겠노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추양대는 또다시 눈물을 뿌리며 애정과 효도의 어려운 철학을 강의하기 시작하였다.
“소저는 본디 무남독녀로 양위(兩位) 존당을 위로할 길 없는 고로 평생을 남자로 처세하여 부모 만년을 즐기고자 하였나니 어찌 다른 뜻이 있으리요. 그러나 마음인즉 언약을 저버리지 아니하리니 그대는 괘념하지 말고 편히 취침하소서.”
하니 이 말에 정직한 양산백도 마음의 악마를 깨끗이 씻어 버렸다. 때가 올 때까지 다시는 서투른 욕심을 내지 않으리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늦게까지 곤하게 잠을 잤다. 해가 머리 위로 한 발이나 올라와서야 그는 눈을 떴으나 순간 그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경악과 실망에 잠겼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밤까지 그의 옆에서 잠자리를 같이 하였던 추양대는 간 곳조차 없고, 그녀의 이불이나 행리(行李)도 깨끗이 없어져 버렸다. 그는 부리나케 일어나 동자를 불러 물어보았으나 그의 대답은 간단하게, ‘공자께서 곤히 잠드셔서 못 뵙고 가니 이불과 행리를 두었던 자리나 나중에 잘 치워 달라. 그리고 주인을 잘 모셔라. 자세한 사연은 따로 편지를 써서 바람벽에 붙여 놓았으니 그렇게 아뢰어라’라는 말을 남겨 놓고 산을 내려갔다는 이야기였다.
“그럼 너는 언제 간 줄을 알리라. 그 점을 빨리 아뢰라.”
“소인이 그 댁 동자와 밥을 짓고 있으려니 그 아름다운 공자가 동자를 불러내어 무엇인가 소곤소곤하옵더니 그 길로 그런 분부를 남겨 놓고 가셨나이다.”
“그럼 너도 그 공자가 여자인 줄 알았더란 말이냐?”
“호오! 그럼 공자께옵서는 그 댁이 남자인 줄 알았다는 말씀이오니까?”
“건방지게 말 말고 내 물음에 대답이나 정확히 하여라.”
“그야 누구 앞이라고 여부 있겠나이까. 지난밤 세수를 할 때 알았고 그 댁 동자놈이 빨래를 할 때 알았나이다. 공자께서는 벌써 알고 계셨느니라 내딴에는 짐작하였나이다.”
동자는 추양대의 동자에게 술대접과 돈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차마 하지 못하였다. 양산백은 낙심하여 돌아섰다. 아침밥을 지을 때라면 이제 쫓아 내려가도 무방한 일이다. 그는 방으로 돌아와 벽에 붙여 둔 추양대의 봉서(封書)를 떼어 뜯어 보았다.
“그대는 인연을 이루지 못할까 번뇌하지 마소서. 내 마음은 빙옥(氷玉)같으니, 천지는 변하나 내 마음은 고쳐지지 않으리니 공부를 성취하고 돌아가 양가 부모께 고하고 백년화락(百年和樂)을 하려니와 어이 사사로이 인연을 맺으리요. 그런고로 작별하지 못하고 가나니 그대는 나로 하여 심려하지 마소서.”
양산백은 이러한 글을 읽고 푹 주저앉아 분한 마음에서 엉엉 어린아이같이 울었다. 간밤에 그냥 넘긴 것을 생각하니 그것이 너무나 통분한 것 같았다. 폭력이라도 써서 강제로 정복하였더라면 오히려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을까 하고도 생각하였다.
그러기에 그는 이제야말로 그녀에 대한 자기의 애정의 깊이를 분명하게 깨달을 듯하였다. 추양대가 없는 한 그는 살 것 같지도 않았다. 그녀의 이불이라도 두고 갔더라면 그것을 안고서라도 뒹굴 텐데 하고도 생각하였다. 그래서 미친 듯이 일어나 그녀의 이불이 깔려 있던 자리로 달려가서 아직도 그녀의 체취가 나는 듯한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발작적으로 그녀를 끌어안는 시늉을 해 보이며 엉엉 또다시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그는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발견하고 온세계를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기뻐하였다. 그것은 뺨에 대보고 입에도 넣어 보고 냄새를 맡기도 해 보았다. 그는 별안간 미친 사람이 되어 헛소리도 질러 보았다. 추양대가 이토록 고귀하게 느껴지던 때는 그 동안 한 번도 없었다. 아! 그는 이제야말로 자신의 불 같은 정열의 포로가 된 듯하였다. 그는 이 막중한 고통을 무엇으로 감당해야 좋을지 몰랐다.
양산백은 그녀의 머리털을 생명 이상의 소중한 물건처럼 그녀의 편지와 함께 싸서 정중하게 품속에 간직하였다. 그리고 문득 자기의 손을 입에 갖다 대고, 깨물어 보고, 냄새를 맡아 보기도 하였다. 그 손은 추양대의 젖가슴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듯하였다.
그는 손바닥을 눈앞에 대고 한참동안 지켜보았다. 팽팽하게 부풀어오른 젖가슴을 펼쳐 아무런 수줍음도 없이 그의 품에 달려드는 추양대의 열화 같은 관능과 아름다운 얼굴이 그의 손바닥에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두 눈에서는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지며, 손바닥을 흠뻑 적셨다.
얼마 후 그는 방을 나와 법당 뒤의 늙은 소나무 밑을 지나서 산골짜기 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은 어제까지도 추양대와 함께 저녁을 먹은 뒤 거닐은 길이었다. 양산백은 그 길에서도 사랑스러운 추양대의 체취를 가슴 뿌듯이 느낄 수 있었다. 길바닥의 돌 하나 나무 하나 잎사귀 하나 꽃나무 하나 골짜기를 흐르던 물소리건 바위건 새소리건 하늘의 흰 구름이건 이제는 무엇 하나 그 여자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물건들뿐이었다. 추양대의 체취가 거기에 배어서 그녀의 냄새가 오고, 촉감이 오고, 아름다운 얼굴이 거기에서 보이는 듯하였다. 그녀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시를 짓던 일들을 회상하며 다시 시를 읊어 보기도 하였다. 그러노라면 그 시에 서슴없이 대답해 보이는 추양대의 재치있고도 맑은 음성이 바로 귓전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는 그 소리에 놀라 한동안 멍청하니 자신을 잃고 거기에 서 있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또 별안간 무서운 발작이 일어나 엉엉 울고, 그런 뒤 견디기 어려운 고독이 오면 미친 사람처럼 자기방으로 달려가곤 하였다. 동자가 당황하여 안절부절을 못하였다.
동자가 몇 번인가 집으로 돌아가기를 권고하였으나 그는 들은 척도 않았다. 이러기를 거의 반 달이나 지났다. 이제는 좀 나아진 듯하였다. 책을 읽기도 하고 글을 짓기도 하였다. 그러나 번번이 그 책을 펼친 그대로 있었다. 붓을 들어 시를 짓는가 하면 몇 자 끼적거리다가 붓을 던지고는 긴 한숨을 짓곤 하였다.
한 달이 지나서 그는 이제는 짝을 잃은 외로움을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몸은 지칠 대로 지치고 쇠약할 대로 쇠약하였다. 잠자리도 괴로웠고, 공부도 될 턱이 없었다. 글을 지어도 보낼 수가 없다.
거의 두 달이나 되어 양산백은 행리를 꾸려 동자에게 지우고, 만 3년 동안이나 허다한 추억과 아름다운 일화를 남겨 놓은 운향사를 하직하고 산을 내려갔다. 승려들은 멀리 산문 밖까지 배웅해 주었다.
양산백은 산을 더듬어 내려가면서 몇 번 걸음을 멈추어 뒤를 돌아보고, 은밀한 수림 속에 감춘 운향사와 그것을 둘러싼 자연을 서운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것은 추양대를 거기서 또 보는 듯한 마음에서뿐이었다. 세 갈래의 길에 와서 3년 전 거기서 추양대를 처음으로 만났던 추억을 생각하고는, 그녀가 혹시 자기 집에서 기다리지나 않을까 하여 부리나케 뒤도 아니 보고 달려 내려갔다.
처음 가는 길이나 그에게는 두 번 가는 길인 것같이 길가의 모든 것이 반갑기만 하였다. 그녀의 성격이나 취미나 체취마저 깊이 알고 있는 그는 그녀도 보았고 주위를 끌었을 만한 경치도 죄다 일일이 기억하고 내려갔다. 추양대가 걸어가고 잠시 멈추어 서고 또 앉아서 쉬었던 자리도 알 만한 듯이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에 더구나 초행이라도 반갑고 소중하게 기억해 두고 싶은 길이었다.
평강의 추양대 집에 당도한 것을 그로부터 여러 날 만이었다. 그러나 그의 긴장은 조금도 풀려 있지 않았다. 그녀의 집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더 더욱 그녀가 보고 싶은 욕망은 간절해질 뿐이었다.
추상서의 집은 매우 으리으리한 집이었다. 동네에서 큰 산을 뒤로 등지고 높직이 앉아 대소 제가를 내려다보고 있어서 이내 그 집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문전(門前)의 큰 마당에는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노복(奴僕)들도 바쁜 듯이 쉴 새 없이 문을 드나들었다. 대개 이러한 명문거족의 집이란 큰 것뿐만 아니라 그 전체에 어딘가 특색이 있는 법이다. 양산백은 그것을 처음 보았을 때 이내 알 수가 있었다.
문전에 이르자 사람들이 그의 주위에 모여들어 이상한 경멸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이라 옷도 헙수룩하고 나이도 어린데다가 별로 이로운 인물이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보다 더욱 중대한 사실이 거기에 있었다.
추소저를 만나러 왔다고 하자 그들은 더욱 경멸의 미소마저 지으며 그냥 돌아가시라고 대답하였다. 문을 드나드는 노복들은 더구나 이 낯모르는 소년을 아예 거들떠볼 생각도 없는 듯하였다.
그래서 소년은 자기의 지체와 가문을 설명하고 추소저와는 운향사에서 같이 공부한 동학(同學)의 다정한 친구이니 잠깐만 만나 보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냉정한 태도는 여전하였다.
“비록 동학지의는 있으나 이제는 그때와 달라 당신을 보실리 없으니 부질없이 묻지 말고 어서 돌아가소서.”
하고 처음부터 대답하던 한 젊은 사람이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 버렸다.
양산백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실망한 채 잠시 그 자리에 멍하게 서 있었다. 가슴속은 혼란해서 방망이질을 치는 것만 같았다.
아닌게아니라 추양대에게는 이날 그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중대한 사건이 임박하고 있었다. 오늘이 바로 혼례를 치르기 며칠 전이었다. 그래서 그 중대한 행사를 위하여 바쁘게 돌아갔다. 벌써부터 경사스러운 준비를 하느라고 야단들이었다. 상대방 혼가(婚家)에서도 몇 사람인가 와 있는 듯하였다.
그러나 추양대 자신은 이러한 경사스러운 일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기쁜 줄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기쁘기는커녕 절망하고, 절망이 넘쳐서 죽음을 각오하고까지 있었다. 추양대는 출가를 강요당하는 것이었다.
신랑은 성주 땅에 있는 심천이라고 이름난 재상의 외아들이었다. 아버지의 벼슬이 재상이고 보니 부귀영화가 온 집안에 가득 차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의랑이라고 하는데, 벌써부터 등과해서 그 이름이 조야(朝野)에 떨치고 있는 재주덩이였다. 그의 재주만 가지고도 십분 장래의 영화를 예측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자식의 백년 배필을 찾는 부모의 허영심은 클 대로 컸다. 웬만한 규수는 쳐다보지도 않고, 문벌과 재치와 교양과 미모와 재산에 있어서 최고가 아니면 아니 되고, 군자가 애써서 바라는 요조숙녀가 아니면 아니 되었다.
이러한 고상한 취미와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고 심 재상이 힘써서 간택한 결과 평강 땅에 있는 추 상서의 무남독녀 추양대가 제일 적격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추 상서로 보더라도 명예가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매파가 오고가고, 양가의 통혼은 서로의 기쁨 속에 완전히 성공하였다. 그것은 매우 급속히 이루어졌다. 딸이 심 재상의 자제와 혼사를 반대하자 추상서는 화를 내며 강제하였다.
“네 3년을 집을 떠나 공부는 유명유실하고 너 같은 불효녀는 두어 문호를 더럽힐 줄 어찌 알았으리요. 다시는 그런 욕된 말을 내지 말라.”
하고 딸이 양산백의 이야기를 하자 분격한 그는 언성을 높이며 호령하였다.
“규수의 몸으로 학업을 위하여 산간에 들어가옴이 그 죄 크오나, 이제 소녀가 고한 말씀은 예절에 마땅하온 바이거늘 어찌 문호에 욕된다 하시나이까. 비록 납폐지례(納幣之禮)는 없사오나 맹약이 있사오니 중도에 배반하오면 이 또한 실절(失節)이오니 바라건대 아버님께옵서는 이것을 숙찰(熟察)하소서.”
추양대는 최후로 아버지에게 그렇게 선언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추 상서의 결심은 대단하여 딸의 반대를 무시하고 혼사를 정해 버렸다. 아버지의 권위로 딸을 처리하자는 결심이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당연한 권리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혼사는 결정되어 납폐를 행하고, 이제는 길일(吉日)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혼사 준비를 위하여 양가는 서로가 바쁘게 돌아갔다. 추양대는 그것을 지켜보며, 그때가 오면 죽으리라 결심하였다. 부모의 뜻을 어기면 불효가 되고, 그 뜻을 받들면 자신의 가치는 없어져 실절한 누명을 만대에 남는다고, 순결한 그녀의 마음은 이 두 가지의 어려운 문제를 놓고 밤낮으로 근심에 싸여 있었다.
어느덧 혼례 일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문득 그녀에게 시비의 급한 전갈이 왔다. ‘남양 땅에 사는 양산백이라는 사람이 소저를 찾아왔노라.’ 라는 이야기였다. 추양대는 깜짝 놀라 누워 있던 자리에서 소스라쳐 일어나 앉았다.
운향사에서의 온갖 추억이 일시에 그녀의 기억 속에서 살아올랐다.
그날 밤의 그 잊을 수 없던 일이며, 공부하던 일이며, 의형제를 맺던 일이며, 편지를 써 두고 도망해 오던 일들이 주마등(走馬燈)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려 아버지에게로 달려가서 양산백이 집 앞에 와 있음을 알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크게 화를 내어 하인을 불러 그 남양 땅에서 왔다는 소년놈을 당장 내쫓으라고 호령하였다. 추양대는 울면서 아버지에게 애원하기를,
“아버님, 무슨 일이든 아버님의 분부대로 따르겠사오니 불원천리를 찾아온 그 소년을 한 번만이라도 만나 보게만 해주십시오.”
그러나 마지막 딸의 애원이 너무나 간절해서 마지못하여 허락을 내렸다.
“사정이 그렇다니 그러면 잠시 만나 보고 이내 쫓아 버려라.”
추양대는 자기 방으로 달려가 운향사에서 남복을 하고 양산백에게 들켜 도망을 온 일을 생각하며 급히 몸을 단장하였다. 그날 밤 자기의 젖가슴을 풀어 제치는 그의 손을 느끼면서도 잠을 자는 척한 자기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였다.
추양대는 몸치장을 단장하고 후당(後堂)으로 나아가 양산백을 모셔 오게 하였다. 시비를 매수해서 소저에게 들여보내 놓고 바깥마당에 자기를 경멸과 비난의 눈으로 지켜보는 여러 시선들을 피해 가며 왔다갔다하고 있는 양산백은 시비가 나와 인도하자 정말 죽도록 기뻐서 그 시비의 뒤를 따랐다. 좁은 문을 들어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 시비에게 또 몇 푼의 은전을 집어 주었다.
시비는 거뜬히 양산백을 후당으로 소저에게 인도하고는 싱긋 웃으면서 뒷문을 빠져나갔다.
사랑하는 두 남녀는 잠시 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추양대가 그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전신을 무섭게 경련시키며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양산백도 그녀의 등을 쓸고, 머리를 어루만지며 눈물을 쏟았다. 그녀의 고운 옷이 눈물로 흠뻑 젖을 정도였다.
얼마 동아 이와 같이 부둥켜안고 울면서 두 남녀는 떨어질 줄 몰랐다. 지금까지 쌓여 온 두 사람의 감정이 해소되어 평온을 찾으려면 아직도 기다려야만 할 것 같았다. 서로는 육감적인 너무나 격렬한 감정에 취해 버린 것이다. 그것은 정신 이상의 무엇인가 본질적인 것, 생명적인 것이 떨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양산백은 이제는, 여자답게 땋아 내린 추양대의 고운 모리에 입을 맞추고, 그 머리를 들어 이마에다 뺨에다 목에 그리고 그녀의 뜨거운 입술에도 자기의 입술을 한없이 열렬하게 추어 보았다. 그는 맹렬한 열의로 그녀의 생명을, 모든 존재를 그 입술을 통하여 자기에게 빨아들이려는 것만 같았다. 그의 한없이 말라 버린 생명의 갈증은 그녀의 그것이 아니고는 도저히 조금도 만족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추양대의 욕망도 그의 그것에 비해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윽고 얼굴을 들어 그를 보는 그녀의 감정에 빨갛게 충혈된 두 눈이 그것을 명백하게 증명해 주었다.
양산백은 그냐의 눈에 자기 눈이 부딪치자 또 저항하기 어려운 갈망에 끌려, 그녀를 꽉 으스러지게 안아 주었다.
아! 서로는 너무나 사랑하고 있었다. 애정의 깊이를 서로는 여기서 비로소 깨달은 듯하였다. 서로는 피차 떨어져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이러한 온갖 애욕의 표정으로 실증해 주었다. 아직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행복을 영원히 파괴해 버릴 무서운 방해를 똑같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구나 그들의 애정의 농도는 광열에 가까울 정도였다. 아! 우리의 이 행복을 누가 파괴하려고 하는가. 이 저항을 그들은 똑같이 쉴새없이 느꼈다.
따라서 이들 두 사랑하는 남녀가 포옹이라는 애정의 첫 번째 표시를 끝내고 자리에 앉았을 때에는 할 말은 아무것도 없는 듯 하였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열렬한 포옹과 눈물로써 할 말을 죄다 해 버린 것만 같았다. 울적한 감정을 깨끗이 표백하고 생명을 잃어버린 가을의 나뭇잎처럼 카랑카랑 말라서 허전하니 약간의 바람기에도 날아 버릴 것만 같을 뿐이었다. 풀기가 빠진 풀주머니처럼 그들은 맥이 없고, 온갖 정열의 소모에 자신도 모르게 놀라는 듯하였다.
“첩이 불민(不敏)하와 어찌 배약(背約)하리요마는.”
하고 양산백이 겨우 입을 떼려고 하였을 때, 추양대는 그 말을 막으며 재빨리 말을 계속하였다.
“첩이 운향사에 있을 때 부친이 이미 심 상서의 집과 정혼하였는지라, 일이 이렇게 되어 진퇴양난이나 스스로 몸을 버릴지라도 구약(舊約)을 지키고자 하니, 낭군은 나 같은 인생을 생각하지 말고 타문(他門)에서 어진 숙녀를 취하여 백년을 동락하소서.”
그녀의 눈에서는 커다란 눈물방울이 마치 안개 깊은 아침의 풀잎처럼 주르륵 주르륵 소리가 날 만큼 흘러내렸다.
양산백은 얼굴을 번쩍 쳐들어 말을 하려 하였으나, 그녀는 또 막으며 계속해서 말하였다.
“첩은 타일에 지하에 가서 낭군과 상봉을 비나이다.”
양산백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말이 목구멍에서 막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대는 고문대가(高門大家)의 군자를 맞이하여 백년동락하려니와 박명한 이 양생은 그대로 하여 황천(黃天)의 원객(怨客)을 면하지 못하리니 어찌 가련하지 아니하리요.”
“내 어찌 구약을 무신무의(無信無義)하리요마는 창천이 우리를 업신여기사 차생의 연분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누구를 한하리요. 첩은 가히 구약을 지키려니와 군자는 일개 여자를 위하여 귀체를 버린다는 것은 만만 불가하니 바라건대 낭군은 천금중신을 보중하사 불효를 깨치지 마소서.”
양산백의 눈에서는 마침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이루지 못하는 이 행복 때문에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는가 생각하니 더구나 미친 듯이 슬퍼졌다.
양산백은 손을 잡은 채 그녀의 무릎에 머리를 파묻어 어린아이처럼 흐느껴 울었다. 추양대도 그의 등에 얼굴을 대고 울기 시작하였다. 불행한 연인들의 이 광경은 누가 옆에서 본다면 처량해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효도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젊은 사랑하는 이 한 쌍에게 눈물과 비애에 잠겨 놓은 것일까? 그들은 자기들의 행복을 거부하는 도덕에 용감히 싸우고 나설 용기가 없었다. 인간을 통제하는 국가를 반대하고 전제 군주를 항거하여 싸울 수 있는 용기와 담력이 없는 것처럼, 그들은 사랑을 구속하고 결백을 억제하는 효도라는 괴물과 대담하게 맞서 나갈 기력이 없을 뿐 아니라, 그러한 마음조차 먹을 수가 없었다. 충신을 배척하고 역적이 될 그러한 대담한 정신이 그들에게 있을 수 있을 것인가. 정직한 그들로서는 도저히 이러한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 그들의 비애는 더욱 컸다. 죽음을 각오하는 결심도, 눈물을 비 오듯 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아! 이 눈물이여, 그것은 약자(弱者)의 이름이 아닐 것인가. 용감한 자에게는 눈물이 있을 수 없다. 그들은 방해를 넘어서서 용감하게 나아가지를 못하고 굴러오는 바위에 깔려서 죽으려고 한다. 그런자에게 눈물만이 위로이다. 도덕의 폭군 앞에 그들은 완전히 압도되어 깔려 잔인하게 죽어 가려고 결심하는 것뿐이었다. 충신이 사약을 받아 마시는 비장한 결의를 가지고, 어떻게 보면 바보라고 할 정도로 그들은 희생의 길을 택하였다.
아까 양산백을 인도해 온 예의 사랑스러운 시비가 이 때 문을 열고 주과(酒果)를 가지고 들어오려다가 깜짝 놀라 문을 닫아 버렸다. 추양대는 얼굴을 들어 사랑하는 양산백을 위로하였다. 손으로 잔등과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만 진정하라고 하였다.
무안을 당한 시비가 잠시 후 다시 문을 열고 주과를 들여왔다. 그러나 추양대도 양산백도 그것에 손을 대지 않았다. 시비는 주인의 귀에 대고 무어라고 속삭이고 나가 버렸다. 아버지가 그만 손님을 보내라고 분부한 것같이 양산백에게 해석되었다.
“낭군은 첩을 다시 생각하지 마시고 만수무강하소서.”
하며 추양대는 겨우 정신을 차려 입을 뗐다.
“날이 이미 저물었사오니 빨리 돌아가소서. 만일 더딘즉 부모 책망하실지라 첩은 돌아가오니 타일 황천에 가서 만나기를 기약하나이다.”
하고 그녀는 일어서서 나가려고 하다가 또 한 번 꼭 안아 달라고 그에게 애원하였다. 양산백은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녀를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힘껏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것이 인생에서의 최후라고 생각하면 그의 가슴은 별안간 천길의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며 두 눈이 아득하게 캄캄해지는 것만 같았다.
추양대는 놓지 않으려는 양산백의 손을 밀어 떼어 놓고 나가버렸다. 예의 시비가 들어와 그를 인도하였다. 양산백은 또 은전을 듬뿍 쥐어 주고 그 집을 나와 밖에서 기다리는 동자와 함께 길을 재촉하였다.
자기 집으로 돌아오자 자식을 맞이하는 부모의 기쁨은 측량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얼싸안고, 기쁜 눈물을 흘리며 마치 젖먹이 아이같이 어루만져 주었다. 아버지는 절에서의 생활을 묻고 학업의 성공 여부를 물으며, 간단한 글제를 내어 시험해 보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그런 것에는 관계하지 않고 아들의 핼쑥해진 얼굴과 손목을 보고 놀라면서 가슴 아파하였다.
이 때문에 양산백을 따라갔던 동자가 불려와 왕씨로부터 단단히 꾸지람을 받았다. 비복들에게 냉큼 화를 내지 않는 왕씨이기에 그것은 특별한 문책인 것 같았다. 양현도 이에 대하여 관심을 두고 아들에게 생활의 이모저모를 다시 자세히 물었다.
양산백은 공부를 한 때문이라고만 말할 뿐 추양대와의 관계를 전혀 입 밖에도 내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그의 쇠약의 원인을 양현 내외는 완전히 모르고 있었으나, 이 심상치 않은 건강 문제는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하루하루 그의 건강은 악화되어 드디어 병상에 눕기까지 되었기 때문이다.
양현 내외의 경악과 비애는 형용할 수가 없었다. 하늘과 부처님에게 정성을 들여 얻은 아들을 죽인다면 그들은 멸망이나 다름이 없었다. 사방으로 명의를 찾고 선약(仙藥)을 구해 병들은 아들에게 먹였으나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였다. 점점 악화될 뿐이었다.
양현은 의원의 말을 들어, 어떤 유명한 의원 하나가 이런 병은 약으로 고칠 수 없다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드디어 그의 말대로 아들의 비밀을 캐묻기 시작하였다.
아버지의 물음이 너무나 엄하고 교묘하였기 때문에 양산백도 자기의 마음에 깊이 간직해 둔 비밀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현과 왕씨는 아들의 고백을 듣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표정은 고백을 듣는 동안 몇 번이고 변하였다. 그것은 그들의 내심의 격동을 잘 실증해 주는 듯하였다.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잡고 그 아들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면 좀 쉬었다가 말하라고 때때로 위로해 주기도 하였다. 어머니의 마음은 아들의 감정이 경험하고 있는 것과 같이 경험하는 듯하였다. 아들이 탄식하면 어머니도 탄식하였다. 아들의 눈에 눈물방울이 솟으면 어머니는 몇 갑절로 흘렸다.
“네가 3년을 떠나 공부는 유명무실하고, 괴이한 여자를 결연하여 사생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이와 같이 부모에게 불효를 끼치니 불가 사문어타인이라.”
하고는 양현이 약간 노기마저 띠며 결론을 내렸다. 왕씨는 남편을 지켜보며 탄원하듯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하나 대장부 되어 조그마한 아녀자를 잊지 못하여 죽기에 이른다면 어찌 슬프다 아니하리요. 너는 모름지기 안심하라. 내 마땅히 추 상서 댁에 찾아가서 의혼(議婚)하여 네 백년 배필을 삼아 평생을 즐기게 하리라.”
인자한 아버지는 이렇게 선언하고 일어섰으나, 병석에 누워 있는 양산백은 더욱 펑펑 눈물을 쏟았다. 아버지의 친절에 감복해서 그런지 자기 자신의 비분에 연민의 정이 솟아서 그런지 그것은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병자 자신도 이 점은 분명하게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리라. 왕씨는 아들의 눈물을 닦아 주며 같이 울상이 되어 위로하기를 마지않았다. 그러나 아들의 눈물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양현은 즉시 날랜 준마에 앉아 옛날 벼슬 시대의 위엄을 자랑하면서 몇몇 창두를 데리고 곧장 평강으로 달려갔다. 추 상서의 집은 양산백에게도 그랬듯이 찾기가 쉬웠다. 추 상서 하면 평강 땅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더구나 이날은 가던 날이 장날이라는 식으로 특별한 날이어서, 그 거대한 저택의 안팎으로 운집한 사람만으로도 능히 그 집이라고 알아볼 수가 있었다.
양현은 의문이 나서 그 집까지 가지 않고, 옆을 지나가는 아마도 그 집의 손[客]이 되어 가는 듯한 사람을 붙들고 추 상서댁에 웬 사람이 저렇게 모였느냐고 물어 보았다.
“우리 상공께서······.”
하고, 예의 남자는 점잖게 입을 뗐다. 그 시작하는 어투로 보아서 추 상서의 권세가 웬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분명 추 상서의 날개 밑에 들어 있는 사람 같았다.
“우리 상공께서 1녀를 두사, 오늘 혼례를 지내시고 이제부터 삼일 잔치를 하게 되어 그 때문에 저렇듯 분요(紛擾)하나이다.”
양현은 더 묻지 않고 슬며시 말을 돌려 세웠다. 병들어 죽어가는 아들이 머리에 떠올라 별안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만 같았다.
양현은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그것조차 알 수가 없었다. 자기 집 문을 밟아 서자 그는 이 때까지의 상념과 결심을 총결산해서 짤막하게 결심하였다. 주인이라는 의식이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는 어찌 되었든 아들을 안심시키고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왕씨는 여전히 아들의 옆에 앉아 인자한 어머니로서 병자를 간호하고 위로해 주고 있었다. 그 여자는 벌써 며칠 동안 아들을 위해서 한 잠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피로가 말이 아니었다. 건강은 상해서 옆에서 보기에도 가엾도록 쇠약해 있었다. 그러나 왕씨는 이 금덩이 같은 아들의 회복을 위해서는 자신의 건강 같은 것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남편이 들어오자 왕씨는 그의 눈을 거기에서 무엇이라도 찾으려는 듯이 빤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눈을 다시 불행한 아들에게로 돌리며 아무 말도 없었다. 그것으로 충분한 듯하였다. 남편은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아들은 이 때 눈을 감고 잠깐 잠들은 듯하였다. 이러한 혼수상태가 어제오늘로 부쩍 심하였다. 잠을 자는가 생각하면 별안간 소스라쳐 깨어나 헛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이유 없이 눈물을 쏟는 수도 있었다. 그래서 더구나 부인은 아들의 옆을 떠날 수가 없었다. 양현은 아내의 옆으로 걸어가 앉으면서 작은 목소리로 아들의 병세가 어떠냐고 물었다.
왕씨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보일 뿐이었다. 그 이상 묻지도 않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양현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러자 조용히 눈을 뜬 아들이 힘없는 눈빛으로 아버지를 지켜보며,
“이번 행로에 회보나 있삽나이까?”
하고 역시 힘없는 음성으로 말하였다. 양현은 거짓말을 해서 아들을 달래 보려고 하였으나 그 가엾은 눈에 부딪치자 솔직하게 이렇게 말하였다.
“너는 내 말을 단단히 들어라. 사람은 모름지기 결심 여하에 달려 있는 법이로다. 네가 결심하면 너를 구할 것이로되, 그렇지 못하면 어찌 부모의 마음이 슬프지 아니하리요. 그 낭자는 이미 혼사를 타처에 행례(行禮)하였은즉 무가내하라. 부질없이 생각하지 말고 다른 곳에 통혼함이 무방하니 매파를 놓아 숙녀를 구하면 어디 간들 추 낭자만한 배필이 없으리요. 너는 부모의 간장을 이 이상 태우지 말고 병세를 관억(寬抑)하여 수이 회복하면 문호를 위하여 만분 다행이니 너는 깊이 생각하라.”
“추씨 아니오면 월궁(月宮)의 항아라도 불관이옵나니, 아버님은 다시 혼인지사를 의논하지 마소서.”
하고 양산백은 다시 눈을 감으며 얼굴을 저쪽으로 돌려 버렸다.
왕씨는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만 있었다. 양현은 더 달래며 결심을 시켜 보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들은 그 이상 죽은 듯이 말이 없었다.
이날 밤 양산백은 몇 번이나 혼수상태에 빠져 의식을 잃고 하였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상태였다. 그럴 때마다 번번이 헛소리를 지르며 추양대를 찾고, 추양대가 거기에 와 있다고 손을 들어 까불고, 두 눈을 무섭도록 하얗게 까뭉개곤 하였다. 이 때문에 양현 내외는 거의 절망할 지경이었다.
이튿날도 이러한 상태는 계속되었으나 오후가 되어 약간 조용해진 듯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좋아진 것이 아니라 악화되고 최후를 예고하는 저 폭풍 전야와도 같은 극히 위험한 순간이었다. 아니나 다르랴, 그는 지극히 냉정해져서 거의 정상적인 인간처럼 말하였다.
“3년을 이슥토록 공부하옵기는 입신양명하와 이현과모하고 문호를 빛내고자 하였더니 괴이한 병을 얻어 집에 돌아와 부모께 불효를 끼치오매 이제 구천지하(九天地下)에 죄인이 되올지와 인력으로 하올 바 아니오니, 다만 엎디어 바라건대 양친은 소자를 생각하지 마시고 만수무강하옵소서. 추 낭자를 다시 보지 못하고 죽기를 당하오니 진실로 눈을 감지 못할지라. 봉서 하나를 닦아 두옵나니 소자 죽거든 서간을 갔다가 추 낭자에게 전하여 함원치사(含怨致死)함을 알게 하시고, 소자의 시신을 추낭자 왕래하는 길가에 묻어 주사 죽은 혼백이라도 낭자 얼굴을 다시 보게 하소서.”
이것이 그의 부모에게 하직하는 마지막의 말이었다.
아! 얼마나 불행한 양산백이었던가. 그는 그렇게도 사랑하는 사람을 더 만나지 못하고 감기지 않는 눈을 억지로 감아 버렸다. 왕씨와 양현이 손을 잡고 늘어지며 천지가 진동하도록 울어댔으나 이 엄연한 현실에는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는 다시 눈을 뜨지 않았다.
양현과 왕씨의 비애는 말이 아니었다. 그들은 아들을 따라 죽겠다고 몸부림을 치며 몇 번인가 실신 졸도하였다. 그래서 더구나 이 양 상서의 집은 슬픔이 몇 배로 늘어났다. 충실한 비복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겨우 수습은 되었으나 이 다시없는 불행을 씻을 길은 없었다.
양현은 아들의 소원대로 추양대가 신부 되어 머지 않아 신행(新行)할 길가에 묻어 주기로 하였다.
한편 추양대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녀는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그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회라는 것은 효도와 사랑의 양 갈래 길에 끼어서 고통하고 있는 이러한 단순한 여자에게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최후의 순간을 말하였다. 효도를 완선하고 사랑을 완성하려는 두 가지 욕심에 불과한 것이다. 그때를 찾아 죽으려고 그녀는 굳게 각오하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매우 어리석은 소녀의 단순한 꿈 같기도 하나 추양대 같은 순진한 마음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부명(父命)을 존중하고 혼례를 올리는 데 서슴없이 응하였다. 신랑이 그 여자를 비로소 보고 그 아름다움에 황홀하여 어찌할 줄 모르게 될 만큼 이날의 단장을 멋있게 꾸미기로 하였다. 추상서와 그의 아내가 보고 딸의 변심에 놀라 무한히 기뻐하였을 정도였다.
첫날밤의 어려운 곤란도 추양대는 재치 있게 넘겨 버렸다. 열 다섯 살의 나이 어린 신랑을 적당히 금을 그어 놓는 것쯤은 그녀의 슬기로서는 문제가 아니었다. 추양대는 양산백을 남편으로 알고 그를 위하여 절개를 지키겠다는 굳은 결의가 있었다. 그래서 신랑이 접근해 오는 순간에도 그녀의 마음과 눈앞에는 언제나 양산백의 환영이 아른거리며, 그녀의 마음과 몸을 지켜주었다. 다행히 그녀는 이러한 과정을 아무런 부끄럼 없이 보낼 수 있었다. 이 명예를 그녀는 양산백에게 돌려주었다. 그가 이미 죽은 것을 모르고 있는 추양대는 지금이라도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가서 자기의 명예로 정조를 바치고 싶을 정도였다.
삼일 잔치가 지나고 신행하게 되었을 때에도 추양대는 자기가 먼저 자진해서 어머니에게 재촉하였을 정도였다. 이 때 그녀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다시는 만나 뵙지 못할 것이라고 이상한 말을 남겨 놓았으나 추 상서 내외는 그것을 다만 딸의 하직하는 인사라고 간단하게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여자에게 있어서는 그 말은 최대의 의미와 결의를 두고 있었다.
그것이 사실로 증명되었다. 추양대가 신랑의 후행(後行)을 받으며 구가(舊家)로 행하는 신행의 행렬은 매우 화려하였다. 양가의 부귀와 영화가 이 행렬에 과시되어 누가 보아도 신랑 신부를 부러워할 정도였다.
추양대는 신부의 예복을 화려하게 차려입고 칠보금덩에 높직이 앉아 시녀들이 앞뒤를 옹위하며 갔다. 이들 시녀들은 저마다 녹의홍상에 아름답게 단장하고 쌍쌍으로 벌려 서서 앞을 인도하고 뒤에는 금안백마(金鞍白馬)에 높직이 앉은 신랑이 자기의 행운을 과시하면서 서서히 따르고 있었다.
운남산 황령이라는 고개에 올라섰을 때 그곳에서 아까부터 기다리고 앉아 있던 한 젊은 남자가 이 화려한 신행의 행렬에 접근해 왔다. 그는 행렬의 선두에 선 하인들의 제지를 받고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나 그에게 악의가 없는 것을 그의 언동을 보면 이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남양 땅 양 상서 댁 노복이러니 우리 댁 부인께서 분부하시되, 이 서간을 추소저께 드리면 자연 아실 일이 있다 하시기로 바치려 하나이다.”
이런 말에 놀란 것은 다름아닌 신부 추양대였다. 그 여자는 칠보금덩 안에서 졸음이 와 눈을 감을 듯 말 듯하다가 남양 땅 양상서라는 말에 벌떡 놀라 눈을 뜨고 밖을 내다본 것이었다.
신부는 이내 그 젊은이의 목적을 묻고 가지고 온 봉서를 바치라고 하인들에게 분부하였다. 봉서를 받아본 추양대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그것은 그렇게 그리고 사랑하던 양산백의 필적이 아닌가. 필적만 보고도 양산백을 알아보며 반가운 눈물이 솟아오를 정도였다.
추양대는 아이들처럼 기뻐하고 가슴이 두근두근하면서 그것을 뜯어 펼쳐 들었다. 처음 순간에는 앞이 캄캄하여 보이지 않기도 하였다. 이윽고 그녀는 읽기 시작하였다.
‘박명 죄생 양산백은 삼가 글월을 추 소저 좌하(座下)에 부치나니, 우리 양인이 인연이 지중하기로 3년을 동거처하여 피차에 심중 맹약을 가져 불전에 도축(禱祝)하니 천지로 증참(證參)이 되온고로 백년을 잊지 말자 하올 때에는 피차에 남자로되 맹약함이 금석 같거늘 하물며 여화위남(女化爲男)을 안 연후에 다시 범연하리요. 생이 내심에 숙녀를 만나 평생을 쾌락하리라 하고 창천께 예하였더니 조물이 시기하여 소저가 본댁으로 가온 후 주야로 생각이 간절하기로 낭자를 찾아 꿈같이 만나 기쁜 말을 듣지 못하고 놀라운 말씀이 청천백일에 벽력이 일신을 분쇄하매 어이 살기를 바라리요. 죽기는 슬프지 아니하되 학발쌍친을 사절하니 불효막심이라. 구천 타일에 무슨 면목으로 조상을 뵈오며, 후세의 꾸지람을 어찌 면하며, 낭자를 차생(次生)전에 다시 만나 뵙지 못하고 황천으로 돌아가니 이 유한을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리요. 죽기를 임하여 두어 자로 생의 뜻을 고하며, 생이 부모께 고하여 낭자의 신행길에 묻어 주시면 낭자 왕래지시(往來之時)에 성음(聲音)이나 들어 원혼이라도 위로하여 주시기를 바라오니 원컨대 낭자는 왕래지시에 한 잔 술로 무주고혼(無主孤魂)을 위하여 주시면 사무여한(死無餘恨)입니다. 죽기를 임함에 정신이 혼미하여 대강 기록합니다.’
추양대의 눈에서는 벌써부터 눈물이 주룩주룩 쏟아져 편지의 검은 먹 글씨를 번져 놓았다. 그러나 그녀는 잠시 동안 그것을 치울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무릎 위에 놓은 채 울고만 있었다.
그 편지는 죽기 전 임박하여 쓴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또 어떻게 되어 이런 곳에서 이 편지를 받게 되었을까? 얼른 편지의 마지막 글귀를 생각하고 편지를 가져온 창두를 불러 양산백의 무덤을 물어보았다.
창두는 바로 그 옆길 위로 산언덕에 있는 이제 며칠도 안 된듯싶은 새 무덤을 가리켰다. 추양대는 금덩에서 내려 신부의 예의도 잊은 채 그 무덤에게 달려갔고, 그리고 무덤 앞에 쓰러져서 목놓아 울기 시작하였다.
아까부터 백마를 세우고 그대로 마상에 앉은 채 이 전후 광경을 십분 적의를 가지고 지켜보고 있던 젊은 신랑은, 이 때 더 이상 견딜 수 없는지 말에서 내려 통곡하고 있는 신부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 아내의 팔을 잡아 힘주어 앞세웠다.
여기서 신랑 · 신부 사이에 잠시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러나 제아무리 소년등과한 명문대가의 천재라 하더라도 추양대의 굳은 의지와 재치 있는 설교에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수년 신랑은 이러한 아내를 원망하며 이 신행에 참가하고도 잠자코 구경만 하고 있는 신부집 남녀 노복들을 비난과 적의의 시선으로 훑어보면서 길로 나와 지키고 있었다. 전부가 한통속이 된 것 같아 분하고 미워서 그는 견디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이것을 기회로 추양대는 이제는 식을 갖추어 본격적인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노복들이 사방으로 달음질을 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칠보금덩을 옹위하며 따르던 시녀들은 집사(執事)가 되어 상주를 도왔다.
즉석에서 꾸민 감동에 찬 축문을 읽고 났을 때 실로 기묘한 현상이 일어났다. 이 세상의 일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현상이었다.
이 공전 절후의 기적으로 해서 질겁하고 이른바 혼비백산한 시녀라든가 노복이라든가 하인 등속의 양산백의 무덤 앞에 모여 서 있던 하례배들은 죄다 엎어지고 자빠지고 하면서 정신없이 도망쳐 달아났으나, 그중 맨 나중까지 대담하게 지켜보고 있던 양 상서 집 창두의 보고에 의한다면 그것은 이러하였다.
불행한 신부가 눈물을 뿌리며 축문을 읽고 났을 때 그때 거기에 모여 있던 모든 남녀는 예의 분개한 신랑만을 제외하고 죄다 감동해서 역시 눈물을 뿌리고 있었다. 그러자 난데없는 오색구름이 무덤에서 뭉게뭉게 돌기 시작하였다. 창두는 웬 구름인가 하고 놀라서 눈을 비비며 그것을 똑바로 지켜보았노라고 다짐하기까지 하였다.
그러자 다음 순간 봉분(封墳)의 꼭대기에서 한 가닥 찬란한 무지개가 비쳐 올랐다. 그런가 해서 놀라서 보고 있을 때, 별안간 쾅하고 천지가 뒤흔들리며 그 무덤이 쫙 갈라졌다. 이 무서운 벽력 같은 소리에 모여 서 있던 남녀들은 죄다 뿔뿔이 도망쳐 버렸다. 창두도 겁에 질려 땅에 엎드리고 기어서 겨우 늙은 소나무 뒤로 몸을 피하여 그 소나무 줄기를 부여잡고 지켜보았다.
이 때는 무덤 앞에서 축문을 읽던 신부는 보이지 않고, 언제 어떻게 되었는지 그 여자는 그 갈라진 무덤 속으로 뛰어들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하는 것은 아까부터 분개하여 신부의 뒤에 서서 지키고 있던 신랑이 그 갈라진 구멍으로 달려들어 그 여자의 치맛자락을 부여잡고 땀을 뻘뻘 흘리며 무서운 형상으로 그것을 잡아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치마는 발기발기 찢겨져 그 여자의 하얀 다리가 힐끔 보였으나 그것마저 이내 없어지고야 말았다.
신랑은 흙과 땀으로 전신이 새까맣게 되어 할 수 없이 물러섰다. 그리고 날이 저물어 저녁이 어둑어둑할 때까지 무덤 옆에 멍청히 주저앉아 두 다리를 여덟 팔 자로 펴고 앉아 땅을 치고 통곡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도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도망쳤고 무덤도 소리 없이 정적을 지키고 있었다.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가고 죽음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그제야 창두는 소나무 뒤에서 걸아 나와 젊은 주인의 가엾은 무덤을 만져 놓고 여전히 땅을 치며 울고만 앉아 있는 신랑을 달래 말에 태워 보냈다. 신부가 타고 있던 칠보금덩과 다른 가지가지 신행의 예물들은 근처의 촌락에 부탁해 놓고 달려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창두의 보고를 양현 내외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좀처럼 믿으려고 하지 않아서 그는 확신을 보이고 증거를 세우는 데 진땀을 뺄 정도였다. 어떤 젊은 노복 하나가 자기 눈으로 보지 않는 한 결코 믿을 수 없다고 해서 창두는 그 길로 그를 데리고 현장을 확인시키기까지 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노복과 내기를 해서 술을 한턱 기쁘게 얻어먹었다.
이런 말이 있는 이후 황령 고개를 지나던 사람들은 멀리 돌아서 지나고 혼자서는 더구나 얼씬도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깊은 감명이 아니고서는 이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고, 될 대로 되어 갔다고 공명을 표시하였다. 그 한 젊은 애인들의 사후에 기대를 가져 보기도 하였다.
그것은 실로 막연한 기대였으나, 그들의 감정에 깊이 뿌리를 박은 열렬한 축원임에는 틀림없었다. 신부를 이와 같이 허무하게 잃어버리고 본가로 돌아간 심 상서의 젊은 재사는 사흘 동안 이불 속에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추 상서의 집안은 물론이고, 심 상서의 집안에서도 이 신기한 사건의 뒤처리를 하느라고 야단법석들이었다. 초상을 만난 추 상서의 집에서는 묻으려야 묻을 시체가 없었다. 신부를 감쪽같이 잃어버린 심 상서 집에서는 문책하려야 문책할 대상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 양가는 며칠 동안 똑같이 허공만 쳐다보며 한숨을 지었으나 현실 파악에 남다른 재주를 가지고 있는 심 상서는 조야에 이름난 귀여운 아들에게 잃어버린 추 소저 대신 그녀에 못지않은 요조숙녀를 얻어서 안기려고 사방에 매파를 출동시키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꼭 필요하다고 결심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들의 상처받은 감정은 이런 정도로 아물지 않았다. 그는 모욕을 느끼고 분격하여 복수의 무서운 정열에까지 솟아올랐다. 며칠 동안 절망해서 누워 있는 동안 이러한 감정으로 적당히 만져 키워 놓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몇몇 용감한 창두를 불러 일장의 훈계를 내리고 삽과 괭이를 주어서 자기를 따르도록 명령하였다.
첫 새벽에 담을 뛰어넘어 황령으로 달려온 젊은 열다섯 살의 심의랑은 연적(戀敵)의 무덤을 앞에 대하였다. 전에는 없었던 반죽과 칡덩굴이 나 있었다. 그것이 묘하게 엉겨붙어 있어서 이 복수심에 불붙어 있는 젊은 소년은 별안간 발작적인 강한 증오의 정을 느끼며, 그것을 발로 짓밟고 뭉개고 뜯어서 동댕이쳤다. 더구나 반죽에서는 무서운 분노를 느끼며 마디마디 꺾고 조각조각 깨물어 버렸다. 그리고 창두들에게 무덤을 파헤치라고 명령하였다.
시체는 두 개가 묘하게 서로 끌어안고 있었다. 아직도 산 사람처럼 생생하니 그대로 있는 듯하였다. 이러한 광경은 소년의 증오심을 무서운 질투와 복수의 감정으로 화해 놓았다. 그는 미쳤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무덤을 파헤친다는 것도 결코 정상적이 아니려니와 시체에 대한 증오감은 죽은 자를 관장하며 잔인한 폭력을 가하는 염라대왕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이 때의 소년의 얼굴을 본 자가 있다면 그것이 저 절간의 벽에 많이 그려져 있는 염부(閻府)의 무서운 맹장들의 하나가 아니라고 누가 감히 부인하고 나설 것인가.
그에게 노예의 맹세를 하고 염부의 졸개가 되어 염라대왕의 폭력과 악을 돕고 있는 창두들조차도 그의 파렴치한 행동에 한동안 아연실색하고 있을 정도였다. 심의랑은 다정하게 말도 없는 두 시체를 떼어서 따로따로 저주하고 오욕(汚辱)을 가하자 그것을 나란히 두 개의 무덤을 만들어 묻으라고 그의 졸개들에게 명령하였다.
졸개들은 가까이 무덤을 팠으나 대왕의 시정 명령이 내려서 두 개의 무덤 사이에 또 하나의 무덤이 들어갈 만한 거리를 두고 파기 시작하였다. 그 중간에 자기가 들고 더구나 추양대와는 자기가 한층 가까이 묻혀져야 할 권리가 있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이후에 자기가 죽게 되면 그곳에 묻어 달라고 이르기도 하였다.
이렇게 해서 복수의 쾌감을 만족하며 심의랑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날 밤 그는 한잠도 이루지 못하였다. 그의 머리가 놓여졌던 베개와 요 끝머리에는 이튿날 아침에 보았을 때 물을 부은 것처럼 눈물이 흥건하게 괴어 있었다. 그는 여전히 며칠 동안 흥분한 감정을 식히지 못하였다.
심의랑은 또다시 분연히 일어서서 창두들을 데리고 무덤으로 향하였다. 그러자 어찌된 일인가. 뗏장도 입히지 않았던 무덤에 하나에는 반죽이 자랐고, 또 하나에는 칡덩굴이 뻗어서 그 칡덩굴이 반죽을 향하여 가 이제 조금만 있으면 엉겨붙으려 하고 있다. 이것은 소년의 질투와 증오감을 또다시 맹렬하게 폭발시켜 놓았다.
그는 칡은 자르고 반죽을 뽑아 던지면서 무섭게 흥분하여 자기 아내의 무덤을 고개를 넘어 반대편 산비탈에 묻으라고 창두들에게 명령하였다. 그는 그 시체를 묻기 전에 꼭 품에 안고 눈물을 한없이 뿌리기까지 하였다. 이 때문에 창두들의 작업은 의외로 시간이 걸려서 날이 저물기까지 계속되었다.
심의랑은 얼마가 지난 뒤에 와 보았다. 역시 없던 반죽과 칡덩굴이 돋아나서 칡덩굴은 고개를 넘어 이쪽 무덤으로 오려 하였다. 아! 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집착인가. 그들의 사랑이 진정이라면 자기의 사랑도 진정이었다. 적어도 심의랑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살아서 받지 못한 아내의 애정을 죽어서는 받아보려고 발버둥쳤다. 그래서 더구나 그의 증오와 질투심은 맹렬히 솟구쳤다.
“아! 끝까지 나를 배신하려는 이 악녀!”
격분한 그는 칡덩굴을 뿌리째 뽑아 갈기갈기 찢고 이쪽의 반죽도 그렇게 해서 함께 불을 질러 버렸다. 삭장이 나무에 불을 붙여 그 위에 올려놓은 칡과 반죽이 타는 것을 지켜 서서 내려다보던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다. 어린아이처럼 어떻게나 처량한 많은 눈물이었는지 그것도 마침내 다타서 남은 불을 꺼 버릴 정도였다.
이 짓궂은 정열의 소모자는 이번에는 그대로 무덤을 내버려둔 채 말에 올라 돌아섰다. 날은 저물어 컴컴하게 어두워 왔다. 이날 혼자서 왔던 그는 어둠을 타고 돌아갔다.
가깝게 달린다는 것이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 버렸다. 불빛 하나가 울창한 수목 사이로 반짝반짝 비쳤다. 그는 그 초옥을 찾아갔다. 절벽을 등진 조촐한 산간초옥이었다.
동자 하나가 갈건야복에 백우선을 손에 쥐고 앉아 있는 백발의 노인 앞으로 그를 인도해 갔다. 심의랑은 경건한 존경심이 앞서서 그 노인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내 들으니 그대는 추 낭자와 결혼하였다가 필경은 허사되었으매 가장 무료하리라.”
덤덤한 표정으로 자세히 보지도 않으며 이렇게 입을 떼는 노인의 말에 심의랑은 완전히 압도당해 버렸다. 남을 지배하고, 그런 반면 보다 높은 권세에 무조건 노예가 되는 벼슬아치의 가정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아온 그로서는 이러한 천신과 같은 예지의 권위 앞에 털끝만큼도 고개를 쳐들 수 없었다.
그는 천자 앞에 무릎을 꿇고 감동하듯이 노인에게 몸과 마음을 죄다 굴복시켜 내심 노예를 다짐하였다. 천자가 내린 사약을 일종 감격의 눈물을 머금으며 들이키는 위대한 충신처럼 그도 이런 경우 노인이 죽으라고 하면 오히려 감사의 염을 품으며 감연히 죽어 갔을 것이다.
다행히 노인은 속세를 떠난 고상한 인물인 듯해서 그에게 죽으라는 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운명론을 믿고, 권세와 지배를 싫어하며 정열과 투쟁을 타개하는 듯 하였다.
“그렇거니와 이미 하늘에서 정한 바이거늘 그대 무단히 헛수고를 하니 가장 애달프도다.”
하고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위대한 예언자는 그렇게 말을 맺으며 한 손으로 백발 삼천 장의 긴 수염을 끄트머리만 깔죽깔죽 도토리 까듯 비비고, 또 한 소능로는 예의 백우선을 펼쳤다 접었다 하였다.
그는 통 정면으로 보지 않기에 심의랑은 뒤에 누가 그 노인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더냐고 물어도 전혀 대답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노예의 복종심은 종교적이라고 할 만큼 투철해서 상대방의 그러한 둔갑장신(遁甲藏身)의 술법에 조금도 영향을 받을 까닭이 없었다.
전장에 나가서 그를 위하여 생명을 내던지는 군사가 임금을 본 일이 없고 순교자가 그 교주의 참된 얼굴을 볼 필요가 없듯이 심의랑도 그런 것에는 아랑곳없었다. 심의랑은 노인의 교훈에 감격하여 이렇게 맹세해 보였다.
“산야 우맹이 천의를 모르고 추씨의 일이 심히 괴이하기로 심력을 썼삽더니 이제 존경하온 노선의 말씀을 듣사오니 황연 대각(大覺)하와 마음에 다시는 거리낌이 없나이다.”
과연 총명한 소년이었다. 명문대가에 태어나 일찍부터 소년등과하여 그 이름이 조야에 널리 알려져 있는 이 심 상서 댁의 천재 선동은 여기서 황연 대각하여 노인에게 하직하고 내 집의 따뜻한 품안으로, 아버지가 얼마 후면 천하의 요조숙녀를 골라서 안겨 줄 한없이 아늑한 내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닌게아니라 심의랑 같은 약삭빠르고 재치 있고 권세와 재산의 뒤에 숨어서 천재 신동의 이름을 자랑하는 자는 정열의 무서운 바람에 휘말려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자기와 자기 이름을 최후의 비극으로 이끌어간다는 것은 대단히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그는 아버지와 그 조상들의 이름 있는 피를 이어받아 역시 벼슬에 능하고 처세에 능한 자였다.
그러면 여기서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황당한 기적을 제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서설(序說)은 제쳐놓고 본론에 들어가 현명한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좋겠다. 제아무리 증명과 고증이 명석하다 하더라도 황당한 것은 어디까지나 황당하고 기적인 것은 어디까지나 기적이기 때문이다.
부골생육이라든가 환생인간이란 따위의 묘한 말이 있다. 이 말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나 아득한 옛날부터 약하고 무지한 인간들에게 믿음을 주고 교리를 닦아 온 위대한 인물들이 선전하고 믿어 온 말이니 그대로 믿어 두는 것이 좋으리라. 말하자면 이미 저승으로 가 버린 열렬한 한 쌍의 애인은 이 부골생육의 방법에 의하여 아직도 이루지 못한 인연과 소원을 완성하기 위해 또다시 이생으로 나온 것이다.
방장산의 태을선인과 옥제와 태상노군과 지장왕과 황건역사(黃巾力士)의 순위로 저마다 맡은 바 기능과 친절을 다하여 그들조차 감동한 불행한 연인들의 옛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 지상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조물의 신비와 천지 조화를 장악하고 이럭저럭하는 참된 권위가 있는 그들인지라, 그들의 공동 노력을 한다면 이만한 일쯤 하지 못할 리가 없다.
인간의 지혜가 거기에 미치지 못하니 그들의 하는 일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어디까지나 상상에 맡길 수밖에는 없는 일이다. 인간이 제아무리 지력을 자랑한다고 하더라도 우주의 본질과 천지 조화의 깊고도 깊은 진리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 아니겠는가.
인간은 고작해야 내 인식에 그쳐 버린다. 그런지라 이 위대한 우주의 신비는 옛사람들의 믿음대로 그대로 내버려두자. 박가가 죽어서 박가가 되건 이가가 죽어서 박가가 되건 죽은 김가가 이가로 돌아오건 제 자신으로 환생하건 그것은 우주의 커다란 조화에 속한다.
아무러나 이러한 조화에 의하여 양산백과 추양대는 그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부골생육하고 환생 인간해서 관대한 독자들 앞에 또다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거의 똑같은 시간에 시신이 묻혀 있는 제각기의 무덤에서 똑같이 솟아 나오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기절초풍하여 죽어버렸으리라는 것은 묻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다행히 두 사람이 무덤에서 솟아 나오는 것을 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두 남녀는 서로 손을 맞잡고 환생의 기쁨을 마음껏 즐기면서 우선 추양대의 본가로 향하여 갔다. 평강 땅 그녀의 고향으로 들어섰을 때 동네 사람들이 신기하게 바라보던 광경이나, 그녀의 집의 놀라움이나, 딸을 맞이하는 추상서 내외의 당황하는 모습이나, 반가운 눈물이나 하는 것은 아무리 능한 표현이라도 당할 도리가 없었다. 죽은 사람이 버젓이 살아서 돌아오더라는 사실 그것을 상상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사실에 육박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감격이 아니라 난동이었다. 광란의 도깨비굿이었다. 이러한 경악과 공포와 환희가 엇갈린 도깨비굿이었다. 이러한 경악과 공포와 환희가 엇갈린 도깨비굿이 있은 뒤에 이제는 그칠 줄 모르는 경험으로 들어갔다. 양산백에 대한 추상서 내외의 찬미와 회한이 있었고 이런 다음 길일을 정하여 예법에 좇아 혼례를 행하기로 하였다. 너무 급하게 하는 것이어서 양산백의 본가에 알릴 수는 없었다.
삼일 잔치는 성대하게 베풀어졌다. 이 때 모인 사람들은 모두 신랑 신부를 부러워하고 찬미하며 천생연분이란 말로 메웠다. 그들은 이 두 남녀 사이의 신기한 이야기를 입에서 입으로 전하며 순식간에 그것은 사방으로 번져 갔다.
그 얘기를 들은 자는 누구나 그럴 것이라고 감동하여 머리를 끄덕였다. 하늘이 정한 연분이라면 사생을 넘어서서 존재하여야만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의 감명은 바로 이런 점에 있는 듯하였다.
첫날밤을 맞이한 열렬한 한 쌍의 원앙들의 정은 그 어디다 비할 도리도 없을 정도였다. 양산백은 운향사에서의 옛일을 회상하며 생명의 희열을 십분 맛보았다. 그는 이날 밤보다도 이 나라를 위하여 그토록 몸부림치며 기다려 온 그때가 더욱 좋았구나 하고도 생각하였다. 그러나 무한히 행복하고 기뻤다. 온 세상이 자기를 위하여 기뻐해 주는 것 같고 자기는 태양이 되어 이 세상의 중심이 된 것만 같았다.
추양대의 아름다움도 새롭게 보였다. 양산백은 그 여자를 위하여 무엇인가 기쁘게 해주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이 행복을 어서 빨리 부모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자기가 살아왔다는 것과 사랑하는 아름다운 여인을 얻었다는 이중의 기쁨을 선사한다면 어머니와 아버지는 얼마나 놀라실 것인가. 그는 벌써 그것이 겁이 날 정도였다. 결혼 전에 양친을 모셨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을 하고도 생각하였다.
아닌게아니라 아내를 재촉하여 본가로 돌아갔을 때 처음 추상서의 집에서 있었던 것과 꼭 같은 경악과 감격의 소동이 폭발하였다. 아들의 손을 잡고 놀란 양현 내외는 꿈이냐 생시냐 하면서 몇 번이고 실신해 쓰러졌다. 아들의 돌연한 병사로 갑자기 늙어 버린 듯한 그들은 몸을 지탱할 기력조차 없을 정도였다. 더구나 왕씨의 쇠약을 푹 곯아 버렸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말이 아니었다.
예의 창두의 이야기를 듣고 언제까지라도 그 이야기에 감동하여 무덤의 기적을 잊지 않고 있던 두 내외는 조물의 신비가 놀랍고, 하늘이 감사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은 자기 아들을 인식하고 확인하는 데 며칠을 걸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서도 이것이 내 피를 받은 진짜의 아들인가 그렇지 않으면 무엇인가가 장난질치는 환영뿐인가 하고 의심해 마지않았다. 남들이 그렇다고 하고 더욱 좋아하니 그런가 보다라는 등으로 일종 허망한 생각도 없지가 않았다.
아름다운 신부를 보았을 때 그들은 이중 삼중의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였다. 그 생김생김이나 아름다움이나 건강한 것이나 태도가 우아하고 말씨가 고운 것, 그 어디나 값비싼 비단을 대하는 것 같고 얻기 어려운 보물을 얻은 것 같아, 아들의 고민이 얼마나 컸던가를 새삼스럽게 상기하기도 하였다.
실로 내 귀여운 아들에게 다시없는 배필이라고 생각하였다.
양현 내외는 이들의 새로운 행복을 같이 즐기기 위해서 성대한 삼일 잔치를 베풀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 보기 드문 신기한 신랑 신부를 보기 위하여 원근 촌락에서 다투어 모여들던 남녀 노소는 잔치에 저마다 운집하여 조정의 태평연과도 같은 감격과 환희의 물결을 이루었다.
그들은 추 상서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천생연분이니 기적이니 연분은 인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느니 이런 식의 축사로 찬미와 탄복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저마다 옳게 된 일이라고 기적 그 자체보다도 거기에 맥맥이 흐르는 듯한, 일종의 정의를 확신하였다. 도덕이나 법률 이상의 본질적인 감격을 그들은 거기에서 음미하려고 애쓰는 듯하였다.
이렇게 해서 양산백의 이야기는 동네에서 동네로 번져 온 세상으로 퍼져 갔다. 젊은 사람들은 더구나 양산백처럼 사랑하고 추양대처럼 진실하였으면 저마다 이들을 닮아 보려고 다투어 경쟁하기도 하였다.
양산백과 추양대의 신혼 생활은 다시없이 행복하였다. 먹은 것은 문제가 없고 가문은 높아서 온 사람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고 그들의 기적은 그들의 불빛이 되어 앞을 밝혀 주고 학문과 교양은 서로의 이해를 깊이 해주고 아름다움과 건강은 생활의 커다란 매력이었다. 게다가 시부모에 대한 추양대의 효성은 오히려 남편을 가르쳐 줄 정도였으니 양산백의 가정은 그야말로 명랑과 행복의 꽃밭을 이룬 듯하였다.
이쯤 되고 보니 양현 내외의 만족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이제는 이들도 완전히 건강을 회복해서 아들 내외의 행복을 위로로 삼아 여생의 도락으로 학문과 도덕을 높이려고 힘쓸 뿐이었다. 그러다가도 이따금 아들의 장래를 생각해서 약간의 허영심을 일삼는 수도 있었다. 아들이 용문에 올라 높은 벼슬을 하게 된다면 금상첨화가 되어 가문을 더욱 빛낼 것이고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 아닌가 이러한 평범한 허영이었다.
그러자 마침 좋은 기회가 왔다. 때는 대명 성화 28년이었다. 북방 오랑캐들이 강성해져서 자주 변방에 쳐들어오고 그 세력은 점점 커져 이제는 더 좌시할 수 없게 되었다. 거기에 대하여 이쪽에서도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명나라에서는 오랫동안 태평성대를 계속해 온 때문으로 군사에 대하여 거의 등한히 해 왔다. 풍년은 계속되고, 외적의 침략은 없어서 정치는 그대로 내버려두어도 잘 되었다.
백성들에게 풍년이 오고 먹을 것이 족하고 무엇보다도 그들을 괴롭히지 않는다면 정치는 있으나마나 하다라는 진리를 새삼스럽게 깨달을 정도였다.
따라서 조정에서는 인재가 없고, 장군이 없었다. 적어도 이 때의 조정 제신들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신하들은 대개가 늙고 젊은 의욕 있는 일꾼들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젊고도 씩씩한 장재(將材)를 뽑아서 적의 침공에 대비하여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인재 등용론은 해마다 제때가 되면 한 번씩 있게 마련인 법이나, 이 때는 더구나 그러한 주장이 시기에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오랑캐의 침범을 당하고 있는 변방에서 쉴 새 없이 급한 장계(狀啓)가 날아들곤 하기 때문이었다. 태평세의 편안한 생활에 수염만 연신 쓰다듬어 내리던 조정의 명예로운 제신들은 이러한 장계를 피할 도리가 없고 자신들의 생활의 타성을 계속시키기 위해서도 신명을 아끼지 않는 젊은이가 필요하였다.
따라서 제신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이제 조정에 출전함직한 장수는 없사오니 마땅히 과거를 시행하와 인재를 등용하심이 좋을까 하나이다.”
하고 아뢰었을 때, 천자는 이 말을 옳게 생각하시고 즉시 예부에 하조하여 설과하라고 분부하시었다.
과거를 본다는 기별은 곧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 갔다. 남쪽 땅의 양산백 집에도 그 소식이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혼 생활의 행복에 젖어 있는 산백은 그 행복에다 금상첨화를 하려는 욕심에서 아버지가 권하기도 전에 자진해서 나섰다.
원래가 벼슬을 숭상하고 있는 양현 내외는 아들의 이러한 태도를 환영하였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를 정도였다. 양현은 아들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구나 본인이 싫다고 하더라도 강요하였을 것이었다.
그의 젊은 아내도 기뻐해 주었다.
“군자가 어찌 아녀자를 위하여 이런 말씀을 입밖에 내시나이까. 남자가 출어세상하매 입신양명하여 비현부모하고 명소죽백하옴이 장부의 마땅한 일이거늘 어찌 구구히 권녁하사 공명을 취지 아니하시리이까. 바라건대 낭군은 빨리 계화를 겪으사 국가의 근심은 덜으시고 도탄중에 든 백성을 건지소서.”
하고 말 내기를 가장 어려워하던 남편의 말에 추양대는 서슴없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양산백은 감격해서 과구(科具)를 수습하여 행장에 꾸려 넣고 즉시 부모와 아내에게 하직하고 경성으로 올라갔다. 그리하여 전국에서 속속 모여든 야심 많은 재사들의 틈에 끼어 객점(客店)에 주인을 정하고 과일(科日)을 기다렸다.
그는 자신이 만만한 듯하였다. 원래가 가인으로 태어난 그는 운향사에서의 공부로 문장 시서에는 견줄 사람이 없었고 무예에도 천품이 있어서 누구에게나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번 과거 시행의 목적이 무인에게 있었던만큼 그는 그 점도 십분 자신 있게 준비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아버지와 아내의 도움이 컸다. 특히 추양대의 협조는 그의 성공의 커다란 계기가 될 수가 있었다.
이렇게 해서 과시에 응한 양산백은 다른 어떠한 야심가도 제쳐놓고 문무 양시에 영예로운 장원을 하였다. 천자가 놀라시고 온 천하가 놀라 것은 더 말한 나위도 없었다. 문과만이 아니라 무과에까지 동시에 장원을 한다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전임 상서 양현의 아들이라는 데 천자는 미신적인 기쁨을 감추지 못하시며, 충신의 아들은 충신이라는 원리를 새삼스럽게 깨닫기까지 하신 모양이었다.
이 때문에 양산백의 지난 명예로운 기적마저 천자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천자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양산백을 하늘이 내리신 충신이라고 감탄하시며 격찬을 마지않으셨다.
“이번 장원이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남양 땅의 그 공자라지요? 그렇다면 될 분이 된 것이 아니로소이까. 옥제가 사랑하옵시는 그러한 환생 인간의 천재를 누가 감히 당하겠나이까!”
경성의 거리거리에서 그런 얘기가 또다시 발을 돋쳐 달리기 시작하였다. 장원의 영예로운 삼일유가(三日遊街)를 할 때에 장안 백성들의 환희와 감격과 찬미를 말할 도리가 없을 정도였다.
장원이라는 영예보다도 문무에 동시에 장원을 하였다는 그의 천재적인 재능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그가 한 여자를 열렬히 사랑하고 그 때문에 죽고 또 살았다는 그 감명 깊은 이야기가 그들의 흥미를 더욱 끄는 모양이었다.
문무 겸전한 이 영예로운 천재에게 천자는 전례를 깨쳐서 한림학사 겸 표기장군을 내리시고 게다가 특별히 대완마 한 필을 하사하시었다. 이쯤 되고 보니 그의 금의환향을 누가 부러워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 것인가.
양산백은 장원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에 우선 일봉 서찰을 닦아서 창두에게 주어 달려가게 하였다. 아내와 부모에게 먼저 그 기쁨을 알려두자는 것이었다.
이럴 때에 북방 오랑캐들은 점점 그 침략의 기세를 높였다. 변방의 미미한 고장에 들어오던 그들은 이제는 제법 대담해져서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군세도 경시할 수 없게끔 되었다.
그러자 우북평이 그들의 손에 들어갔다는 극히 위험한 비보가 날아들었다. 이 비보는 천자를 물론 대소 제신과 경성의 상하 백성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우북평에 들어온 적세는 예상외로 큰 것이었고, 뿐만 아니라 그러한 병력으로 적병이 우북평에 들어와 있다면 경성조차 위험하고 명나라의 운명이 또한 풍전등화와 같다고 아니할 수 없었다. 변방의 비보는 그것을 노골적으로 비쳐 놓았다.
천자는 군신들을 모아 놓고 이에 대하여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하시었다. 그 결과 병부상서 왕균이란 자가 대원수가 되고, 전 장군 위홍이란 자가 보원수가 되어 명나라에서는 정병 10만과 용장 1천 명을 즉시 우북평으로 보냈다.
그러나 우북평에 들어와 장차 명나라의 정복을 꿈꾸고 있는 가달국의 적병들은 예상보다는 훨씬 강성하였다. 왕균의 10만병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풍이 살을 찌르는 사막을 내 집으로 삼고 침략을 생업으로 하는 그들의 용감한 기마대들은 바람같이 날래고 천신같이 불사조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전 세계를 고향으로 삼고 거기에 내 생활의 편리와 자유를 찾으려는 이 언어에 절한 강포한 사나이들은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어떠한 권위도 법률도 국경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대담무쌍한 야망의 정열에 불붙었다. 그들은 하나하나가 성난 범이었고, 성난 사자였고, 성난 곰과 같았다. 그들은 자기네의 생활과 자유를 위해서 싸웠다.
인류 사회의 어떠한 문명도 제도도 그들 앞에서는 무와 같았다. 짐승 앞에 국경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그들에게는 이 대자연의 광활한 토지에 말뚝을 박아 놓고 이것이 내 신성한 영토다. 이 안에는 아무도 무단히 들어올 수 없으며 일단 들어오는 날이면 내 절대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라는 식의 간악한 폭군이니 국경을 인정할 수는 없었다.
그들로서는 이러한 국경의 울안에 갇혀서 한 사람의 절대 군주에게 노예의 복종을 맹세하고 평신저두하며 그 속에서 평생의 비루한 생활을 마치는 인간들이 한 사람의 약한 목동에게 끌려가는 양떼처럼 불쌍하고 비굴하게만 생각될 정도였다.
그들은 이러한 인간의 지배와 피지배를 철저하게 파헤치고 거대한 대자연을 인류의 공동 무대로 삼아 거기에 실력을 다투고 누구나 먹고 살아갈 자유가 있다는 인간의 근본 권리를 세워 보고 싶었다.
따라서 그들의 정신은 투철하였고 용감한 전투력은 명나라군이 당할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파괴에 철저하였고 욕망에 불을 뿜었다. 무기력한 명나라 백성들을 침을 뱉어 멸시하고, 천자와 그 벼슬아치들을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로 삼아 이 인류의 대무대에 말뚝을 박아 놓고 새끼를 둘러쳐서 지배와 권위를 부리려는 얌체족들을 증오하여 적개심은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우북평에 들어와 집을 파괴하고 재물과 계집을 겁탈하고 짐승이 그 희생자를 잔인하게 희생해 버리듯이 그들도 잔인하게 희생시켰다.
짐승의 정열과 탐욕을 가지고 그들은 자기네의 욕망과 갈증을 만족시켰다.
왕균의 10만 군사는 우북평 이쪽의 10리 전방에다 진을 치고 싸웠으나, 지옥의 염라대왕을 모아 놓은 것 같은 이들의 적이 될 수는 없었다. 대원수 왕균과 보원수 위홍은 서로 지혜를 짜 예에 제갈량과 같은 비계를 무수히 써 보았으나, 그것은 황하의 홍수를 모래로 막으려는 이들 문화 민족의 얕은 수작에 지나지 않았다.
사막의 무적인 야만인들은 황하의 홍수가 되어 그들의 비계든 잔꾀든 온통 밀어 버리듯이 싹 쓸어 버렸다. 너무나 거창한 홍수가 되어 그들이 지나간 뒤에는 다만 무인지경의 허허한 모래사장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아! 그것은 너무나 잔인하고 파괴의 완성 같은 것이었다.
이 홍수의 무서운 파괴에서 다만 하나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슬기로운 부원수 위홍이었다. 왕균은 적장에게 사로잡혀 간 곳조차 알 수 없었다.
겨우 혼자의 목숨을 건진 위홍은 그 길로 경성으로 달려오다가 천자에게 이 전패의 사실을 눈물로써 주달하였다. 그 눈물이 이기심에서 나온 것은 뻔하였으나, 그러나 너무도 의외의 결과에 놀란 천자나 제신들은 그를 벌 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적병의 세력은 그들이 예상한 것보다는 너무나 강하였다.
이것을 무슨 재주로 막는단 말인가. 천자와 제신들은 이 엄연한 사태에 압도되어 고개를 뚝 떨어뜨리고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무지 엄두도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우승상 황보숭이라는 자가 출반하여 이렇게 아뢰었다.
“이제 가달이 병정 양족하고 70여 성을 쳐서 항복을 받았으니 그 형세 호대하여 졸연히 파하기 어려운지라. 왕균과 위홍의 재주가 등한하지 아니하되 출정하와 일석지간에 10만 정병과 1천여 명 맹장을 잃어버리고 원수 왕균은 적진에 싸여 가고 위홍이 겨우 일명을 도망하여 왔사오니 일로 볼진대 그것을 경적하지 못함을 가히 알지라. 이제 조정 문무 중에 가히 보낼 사람이 없사오매 신의 우견에는 한림학사 양산백이 문무 겸전하올 뿐 아니라 지용(鷙勇)이 과인하오니 차인으로써 대장을 삼아 보내시면 도적을 가히 토멸하올 것이요, 성상이 베개를 평안히 하시리이다.”
양산백이라는 말에 전부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언젠가 본 위대한 영웅인 것 같은 인상이 그들의 기억을 달려 지났다. 이 친근한 이름을 그들은 웬일인지 얼른 생각하지 못하였다.
천자의 기쁨도 말이 아니었다. 갑자기 용기를 얻은 천자는 어진 재상 황보숭의 의견을 만족히 여기시고 즉시 양산백을 천하 병마 대장군을 봉하시고 그에게 형양 제도의 백만 대군을 총독하게 하시었다. 그리하여 그에게 이 칙명을 받들도록 사신을 남양으로 급히 내려보내어 명조하시었다. 거기에 어느 누구의 이의도 있을 수가 없었다.
천자는 또 우북평의 싸움에서 10만 군사를 전몰시키고 혼자서 겨우 도망쳐 온 위홍을 불러 양산백을 도우라고 하교하시며 그에게 무장의 직함을 내리시었다. 벌을 주는 대신 관대하게 등용하여 더 한층 신명을 아끼지 말고 헌신하라는 뜻에서였다. 이런 자는 위에서 이러한 관대한 마음을 보인다면 감지덕지해서 눈물을 쥐어짜며 충성의 맹세를 해 보이는 법이다.
위홍이가 바로 그런 자여서 그는 자기가 살아온 죄과를 통절하게 뉘우치며 진실로 헌신 봉사해야 하리라고 자기 마음에 깊이 새겨 넣었다. 그는 두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며 어전을 물러났다.
몇 달 말미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간 한림학사 양산백은 이른바 금의환향의 영예로운 맛을 십분 맛보았다. 아내와 부모의 기뻐함은 더 말할 나위도 없겠고 원근 백성들과 친척 노복들 그리고 근처 각 도 각현의 벼슬아치들이 저마다 예물을 가지고 구름처럼 모여들어 일일이 인사를 받기가 바쁠 정도였다.
이럴 때 벼슬아치들의 아첨은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상대방의 벼슬과 천자의 신임을 적당히 고려하여 그 결과에 따라 허리를 구부리는 도수를 신축하고, 예물의 무게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양산백으로 말하면 그들의 아첨은 최대한도로 요구하는 한사람이었다. 문무 양과에 자원을 한 데다가 천자는 그에게 특별한 은총을 내려서 한림학사 겸 표기장군을 봉하신 데다가 값비싼 대완마까지 내리시었다.
시골 마을에서 백성들을 몰아치며 군림하고 있는 각 읍의 수령들은 이러한 소식을 듣자 그의 장래를 평가하고 예물의 무게와 허리를 구부리는 도수와 인사하는 말을 어떤 식으로 써야 할 것인가, 예방의 거리를 어느 정도로 잡아야 할 것인가, 다른 고을의 수령은 어떤 정도로 인사를 차릴 것인가, 거기에 뒤떨어져서 되겠는가 아니 되겠는가, 이러한 가지가지 번잡한 절차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생각하고 생각하였다. 게다가 예물은 어느 집 누구의 것을 뺏어 오는 것이 좋겠다라는 것까지 결정을 지어 버렸다. 거기에 따라 그의 며칠 동안의 집무의 방향은 결정되었다.
양산백은 그들의 존경을 최고로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령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백성들의 것을 많이 빼앗아 가지고 많이 예물을 만들어서 아전들을 뒤에 이끌고 그의 집에까지 예방하기로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양한림의 집에서 일일이 인사를 받기가 귀찮아 아예 삼일 잔치를 열어 버렸다. 그러나 양현 내외는 명문대가의 전통과 위엄을 지키기 위하여 이들 벼슬아치들만은 특별히 따로 자리를 마련하여 겸허하게, 그러나 무게 있게 그들의 인사를 받아 두었다. 양현은 점점 이러한 고상한 취미를 갖기 시작한 것이다.
삼일 잔치가 끝났을 때 사신이 별안간 달려들어 그들은 놀랐다. 각 도 각 읍의 수령 방백들은 또 다시 존경을 표시해 왔다. 이번에는 그들의 머릿속에서 언제나 정해 놓고 있는 아첨의 저울이 혼란해 버려서 그것을 최고로 할 것인가, 특별로 할 것인가 매우 난처하였으나 어찌 되었든 자기의 마음에 긴급 명령을 내려 이번에는 백성들마저 동원해 갔다.
일하던 사람들은 일손을 놓고 장사를 하던 사람들은 가게문을 닫고 밥 먹던 사람들은 그것을 내버려두고 사신이 천하병마 대장군이 본가를 나와 경성으로 향하는 길을 사람으로 메우기 위하여 달려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명나라 백성들은 이런 명령에는 매우 순량하여 거역할 줄을 몰랐다. 하기야 아니 나간다면 뒤에 생활에 커다란 피해를 입는 다는 것도 있었으나 아무튼 이 때문에 양산백의 집은 또다시 사람의 바다를 이루고 사방에서 감격이 물끓듯하였다. 양현 내외는 기쁘고 국은(國恩)이 망극해서 견딜 수 없었고, 착하고 아름다운 추양대는 남편을 맞이한 지 며칠도 아니 되나 역시 정중하게 이성을 지켰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남편이 제 아무리 위험한 전장에 나가더라도 승리는 하고 올망정 결코 죽을 리는 없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념은 그 여자의 섭섭한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양산백은 이러한 사랑스러운 아내와 부모와 많은 사람들을 하직하고, 천사와 함께 용기백배해서 경성으로 향하여 올라갔다. 수령방백들은 10리 밖까지 따라 나와 그에게 머리를 땅에 닿도록 숙였다. 그들의 고분고분한 허리에는 장래 운명이 거기에 걸린 듯하였다.
경성으로 올라와 즉시 예궐한 양산백은 천자와 제신들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천자는 그에게 일국의 운명을 맡기노라는 감명 깊은 교훈을 내리시고 이미 정한 천하병마 대장군의 중임을 봉하시었다. 그리고 방장검을 주시며 군령을 짐과 마찬가지로 엄히 하라고 하교하시고, 또 어주(御酒)마저 내려 그를 위로해 주시었다.
양산백은 백만의 대군을 이끌고 지체 없이 적병이 머물러 있는 우북평으로 직행하였다. 그 군세는 참으로 대 명나라의 위엄을 과시할 정도였다. 포악한 적병이 쳐들어온다고 하여 벌써부터 벌벌 떨고 있던 경성의 백성들과 노변의 백성들은 이제야 희망을 얻은 듯이 기뻐하고 반가워하였다.
가달국의 침략군은 아직도 우북평에 머물러 있었다. 이들은 승리에 도취하여 마음껏 즐기며 이제는 명나라의 경성에 쳐들어가 천자를 사로잡으리라고 저마다 호언하였다. 그래서 더구나, 양산백의 백만 대군이 온다는 말을 듣고 그들은 한없이 흥분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저마다 말에 올라 명나라 군이 진을 치기 시작한 성밖으로 달렸다. 달리면서 대오(隊伍)를 짓는 그들은, 전투의 천재들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가달왕은 이것을 선두에서 지휘하고 용맹한 장군들은 그를 호위해서 좌우로 늘어섰다. 뒤늦게 계집 하나를 안고 집에서 나오던 군사 한 놈은 이것을 보자 그 계집을 내던지고 말에 뛰어올라 대오의 뒤를 따랐다.
이렇게 해서 성문을 나오기 시작한 적병은 그 수 몇 10만이 되는 듯하였다. 양산백은 이들과 대진하여 10여 일을 싸웠다. 그러나 적은 예상외로 강력하고 용감해서 냉큼 결과가 나지 않았다. 황은에 감격해서 흥분하고 있는 위홍은 다른 누구보다도 용감하게 싸웠으나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양산백은 계교를 써 보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적장을 유인하여 겨우 하나를 잡았다. 그러나 다음은 그들도 이러한 꾀를 간파하고 그물에 걸려들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맹렬하게 정공(正攻)을 해 올 뿐이었다. 기병대인 그들은 북방의 대사막을 가로질러 질풍처럼 달리듯이 이러한 일제 돌격에는 명나라의 백만 대군도 당할 도리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양산백은 오히려 그들의 공격을 받고 얼마간의 군사를 잃었다. 화가 벌컥 치밀어 오른 양산백은 말에 채찍질하여 혼자서 적진으로 향하여 갔다. 가달왕과 싸워 최후의 결판을 내려는 생각이었다.
아니나 다르랴 적진에서도 대단한 덩치의 가달왕이 성난 사자처럼 달려나왔다. 갑옷 투구로 전신을 무장한 무서운 가달왕은 칼끝 하나 들어갈 곳이 없는 듯하고, 게다가 얼굴은 온통 털이 뿌옇게 솟아서 입이 어디에 있는지 눈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한 털 속에서 그는 마치 허기진 범이 사람을 보고 입을 벌리듯 입을 떡 벌리고 이렇게 호령하였다. 그 소리 또한 천지를 진동할 것 같았다.
“너 이놈! 아직도 털을 벗지 못한 어린 놈이 어디라고 감히 대적하려는고. 빨리 앞에서 내려 항복하라! 그렇지 못하는 날에는 네 몸의 잔뼈를 한입에 삼켜서 그림자도 없게 할 테다.”
“흥! 무지막지한 짐승놈! 네가 너희의 강성만을 믿고 천의를 거스르니 그 죄가 어떤 것인가를 알려주리라.”
양산백도 소리를 높여 그렇게 대답해 주었다.
“내가 천의를 거슬렸다니! 이놈! 듣거라, 하늘은 너희에게도 있는지 모르나 우리에게도 있다. 이 하늘 아래 너희만이 말뚝을 박고 새끼를 둘러서 이것은 우리의 땅이니 아무도 들어올 수 없다라고 헛소리를 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하늘 아래에 그러한 국경이 언제부터 있다는 이야기인가. 너희는 너희의 강도를 행한 선조의 덕분으로 그 국경의 울안에 들어서 그것이 마치 하늘이 정해 준 신성한 영토인 것처럼 생각하는 모양인데 이 대자연에는 모래밭과 산과 강과 들밖에 없다. 이러한 대지에서 발을 붙이고 있는 자는 누구라고 살 권리가 있고, 어디에 가서든 살 자유가 있다. 하늘은 누구에게도 이 권리를 똑같이 주고 있다. 그렇거든 유독 너희 천자만이 이 인류의 근본 권리를 혼자서 차지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짐은 분명히 너 천자의 졸개에게 선언한다. 너희 천자의 선조가 우리의 생활 무대인 대자연의 한 귀퉁이를 강도질해서 영원히 독점하려고 한 것처럼 나 역시 너희 천자를 잡아서 북해의 깊은 바다에 던져 버리고 이 땅을 차지할 테다! 그렇게 될 경우에 너는 듣거라! 너희 우매한 졸개와 어리석은 백성들은 짐이 얼마든지 모욕을 줄 테지만 그러나 어떠한 모욕에서도 은인자중(隱忍自重)하여 봉사해 오는 자는 부려먹을 터이고 그렇지 못하는 자는 내게 용감하게 대결해 오던지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죽어야 할 것이다. 너희 비겁한 자들은 어서 빨리 굴복해서 내 더러운 발이 그 위를 지나가도록 인간의 방석을 만들어라. 짐은 너희에게 침을 뱉고 밟아 줄 테다!”
“오랑캐놈에게 예의가 있고 도덕이 있을 수 있겠느냐! 나는 너 짐승을 잡아서 우리 천자에게 바치려니와 능지처참으로 극형하리라는 것을 알라!”
“흥 명나라다운 사치스러운 이야기를 하는구나, 사람을 죽이는데도 너희같이 사치스러운 놈들은 없으리라. 내가 일찍이 너희 나라에 문화니 도덕이니 법률이니 시서 · 음률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것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괴물들인가. 인간을 죽여도 격식은 차려서 번잡하게 죽이고 백성들을 괴롭혀도 번잡한 절차를 밟아서 오래 시간을 끌어 괴롭히자는 심사가 아닌가. 어리석은 놈들은 죽이는 데 있어서도 독약을 주어서 스스로 받아 마시도록 하는 것이 너희가 아닌가. 백성들의 물건을 강도질 하면서도 우선 명분부터 내거는 너희가 아닌가. 그러할진대 나는 너희의 도덕과 법률을 멸시하고, 차라리 오랑캐를 택하련다!”
“짐승이 제아무리 강포하더라도 사람에게 쫓긴다는 것을 아는가 모르는가!”
“그 말이 네 간사한 종족의 최후라는 것을 알라!”
무서운 가달왕은 격분해서 그 말을 던지자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양산백은 재치 있게 옆으로 피하여 그들에게 반격해 들었다.
두 장군은 거의 한나절 가량이나 싸웠다. 그러나 결과는 없었고 양쪽 진영에서 대담한 장군이 몇몇 달려나와 이들은 도우며 싸웠으나 결과는 없었다. 양산백은 최후로 그가 가장 자신을 갖는 활을 빼어 들었다. 그 화살은 가달왕의 날랜 말에 맞아 말은 거꾸러지고, 가달왕은 그의 부하들의 엄호(掩護)를 받으며 본진으로 도망쳐 갔다. 이것이 이날의 양산백의 성과일 뿐이었다.
양산백은 할 수 없이 또 비계를 쓰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좌우 장군들에게 제각기 작전 명령을 내려놓고 적진으로 향해갔다. 적진에서 가달왕이 다른 말을 바꾸어 타고 달려나왔다.
“이놈, 듣거라! 어제는 네놈이 간악하게도 화살로 내 말을 꺾었다마는, 오늘은 너 어린 놈이 내 칼에 죽고 명나라가 내 발에 깔린다는 것을 알라!”
“버릇없는 오랑캐놈아! 천의를 거스르는 도적놈이 제가 갈 길을 재촉하고 있다는 것을 알라!”
“이놈! 어린 놈이 되지 못하게 작작 큰소리를 쳐라! 너희 천자는 무능하고 박덕한 놈이다. 하늘은 이러한 놈을 없애치우고 유덕하고 유능한 사람을 앉힌다는 것을 아는가 모르는가! 내 너희 놈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줄 테니 그 목을 곱게 늘여라!”
여기서 또 피를 토하는 격전이 벌어졌다. 가달왕은 어제의 분풀이를 하려는 마음으로 불덩어리처럼 흥분하고 있었다. 양산백은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가달왕은 너무나 흥분하고, 분노에 끌려 있어서 상대방의 꾀에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양산백은 그를 끌고 슬금슬금 자기 진영으로 움직여 갔다. 그리하여 최후로 본진에 들어서자 그를 철통처럼 포위하고 사방에서 공격하였다.
과연 용감한 가달왕이었다. 여의봉을 후려치며 변화무쌍한 손오공처럼 삼두육비(三頭六臂)의 비상한 힘을 발휘하여 전후 좌우의 적을 일시에 막아내는데, 이를 당할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앞을 보고 있으나 동시에 뒤를 보고 좌우를 보고 그야말로 현상을 초월한 심령을 가지고 싸우는 듯하였다. 무예에 달통한 신인이었다.
양산백은 내심 감탄해 마지않을 정도였다. 가달왕은 한 곳을 뚫고 절벽을 굴러 내리는 커다란 바위처럼 도망쳐 달아났다. 그러나 웬일이냐. 본진으로 갔을 때 자기의 진영은 완전히 궤멸되어 버리지 않았는가. 명나라 군이 그곳을 차지하고 그에게 공격해 왔다.
가달왕이 또다시 36계 줄행랑을 쳐서 멀리 달아나 산 하나를 넘어서자, 거기에 자기의 패잔병이 모여 있었다. 그것은 불과기만에 지나지 않았다. 어디선가 부장군 야출이란 놈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가달왕은 이들은 모아 놓고, 본국에 남아 있는 군사들을 죄다 몰아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 급히 달려온 본국의 군사를 보니 불과 30만밖에 안 되었다. 적의 백만 대군에 비한다면 너무도 적은 수 였다. 가달왕은 이들을 이끌고 이번에는 그들이 능수로 아는 일제의 돌격을 개시하였다.
장사진을 치고 이것을 기다리고 있던 명나라 군은 뱀이 그의 희생자에 대하여 머리와 꼬리를 감아 완전히 포위해 버리듯이 그들 역시 좌우를 감아서 극히 자연스럽고 저항할 수 없게 가달국 30만 군을 삼켜 버렸다.
가달왕은 야출과 함께 겨우 도망쳐 달아났다. 그의 뒤를 따른 자는 불과 몇 만도 안 되었다. 우북평을 점령하고, 명나라 변방 70여 성을 뺏어 쥐었으며, 이제 명나라의 정복을 눈앞에 두고 있던 가달왕으로서는 너무나도 허망한 실패가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대지에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분해 하였다.
옛날 그들의 오랜 선조인 흉노의 한 왕자는 토지를 위해서는 사랑하는 천리 준마도, 아름다운 아내도 적에게 바치고 아버지와 아버지의 충비(忠婢)도 죽여 없앴다. 그러나 지금 실패에 울고 있는 이 사막의 대 야심가는 또 무엇을 줄 것이 있을 것인가. 그는 대지를 부둥켜안 듯이 주저앉아 다만 우박 같은 눈물을 주룩주룩 쏟을 뿐이었다.
그러자 지혜로운 신하 하나가 유명한 자객 하나를 소개하였다. 신장이 9척 5촌이고 머리털이 빨갛고 얼굴이 시푸르뎅뎅하며 한번 소리를 지르면 천지가 뒤집힐 듯하고 게다가 힘으로 말하면 그야말로 역발산의 대단한 근력을 소유한 자였다.
이 거인의 이름은 육힐이라 하였고 희주현에서 살고 있었다. 지혜로운 신하의 분명한 보장에 의한다면 그를 불러다가 천하를 양분할 약속을 하고 적진에 들어가 양산백을 죽여 없애는 날이면 명나라의 정복은 누워서 떡 먹기라는 이야기였다. 절망에 우는 대 정복자는 이 말을 듣자 별안간 용기를 얻어 벌떡 솟구쳐 일어섰다.
육힐은 대번에 불려왔다. 과연 대단한 거인이었다. 천하를 양분해 주겠다는 약속의 욕심만 없다면 그는 무사무욕한 대자연과도 같은 위인이었다. 바위처럼 욕망이 없어 보였다. 바위나 대자연이 무엇에 의하여 존재하고 질서를 잡고 있는지 알 수 없듯이 그의 원리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가달왕의 만족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보기보다는 매우 단순해서 육힐은 많은 말이 필요 없었다. 그는 가달왕의 툭툭 치는 어깨의 손과 천하 양분의 말 한마디를 명백한 계약 문서로 삼고 흔연히 미소를 짓고는 칼을 들고 적진으로 향해 갔다.
밤 삼경이라 그의 거창한 육체를 감추기에는 좋았다. 태산도 이런 밤에는 보이지 않을 테니까. 양산백은 불빛을 밝혀 놓고 병서를 보고 있었다. 육힐이 접근해 가도 전혀 모르는 듯하였다. 육힐은 대담하게 밀고 그의 침실로 뛰어 들어갔다.
양산백은 조용히 얼굴을 들어 그를 보았다. 이토록 대담무쌍한 소년 장군을 육힐은 칼을 번쩍 들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아! 웬일인가. 태산 같은 거인은 두어 걸음 발을 옮겨 떼었을 때 그만 땅바닥에 푹 빠지며 그는 보이지도 않았다.
“이놈! 알겠는가! 네가 오랑캐의 자객이 되어 온 모양이나, 이쪽에서는 너를 곱게 모시기 위하여 오늘 하루 몇 사람이 땀을 흘렸단 말이다.”
좌우에 숨어 있던 힘센 장군들이 양산백의 이 말이 떨어지자, 육힐을 묶어 끌어올려서 목을 쳐 버렸다. 양산백은 벌써부터 패주한 가달왕을 감시하고 있었다.
가달왕은 자신만만하게 기다렸으나, 그의 눈앞에 바쳐진 것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육힐의 머리였다. 양산백은 이미 대기시켜 둔 그의 복병에 의하여 가달왕과 부장군 야출을 잡아 버렸다. 나머지 적병들도 죄다 잡아 버렸다.
가달왕과 야출을 원문 밖에 내어 참하게 하고 첩서를 천자에 올린 뒤 양산백은 회군하여 경성으로 올라갔다. 천자와 제신들은 그를 멀리 나와 환영하고 백성들은 감격에 넘쳐셔 어쩔 줄을 몰랐다. 찬자는 이 위대한 영웅을 치하하시며, 그에게 북평후를 봉하시고, 그의 아버지 양현에게는 초봉을 봉하시었다. 그리고 많은 상사를 하시고 이들 일가를 황성으로 올라오도록 특별히 분부하시었다. 이렇게 하여 양산백의 영귀는 완성된 것이나 그는 1녀를 두었고, 사랑하는 아내와 팔순을 누려, 온 세상 사람의 존경을 받으며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
<작품해설>
조선 영 · 정조 시대를 전후하여 씌어졌다고 추측되는 작품으로, 지은이와 집필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소설은 중국의 설화를 소재로 하여 소설화한 작품으로, 일면 〈양산백〉·〈축영대〉등으로도 불리고 있다.
양생이라는 청년과 추랑이라는 아름다운 처녀가 인연을 맺고 사랑을 속삭였다. 그러나 추랑은 부모의 강압에 못이겨 심생이라는 남자와 결혼했다. 상심한 양생은 추랑을 그리다가 상사병으로 죽고, 그를 사랑하는 추랑도 신생 길에 양생의 무덤 속에 뛰어들어 죽었다. 그러나 그 후 두 남녀는 다시 살아나 행복한 생애를 누렸다.
이와 같은 원전인 설화의 간단한 기록을 소재로, 애정에 군담(軍談) · 신괴(神怪) 등을 조금씩 가미하여 이와 같이 역량 있는 소설로 발전시켰다는 것은 지은이의 놀라운 기교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고대 애정 소설의 백미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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