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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창세 신화

Choi가이버 2022. 10. 31. 07:01

한국의 창세 신화

 

<창세가>는 하늘과 땅이 생길 적에 미륵님이 탄생한 즉, 하늘과 땅이 붙어있어서 미륵님이 땅의 네 귀퉁이에 구리 기둥을 세워서 갈라 놓았다고 말하고 있으나, 40년 후 채록된 <셍굿>에서는 나무들이 걷고, 동물이 말을 하는 혼돈의 시절 자방에서 하늘이, 축방에서 땅이, 인방에서 인간이 생겨났다고 말하고 있어서, 천지개벽이 곧 질서의 세계로의 입문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창세가>의 미륵을 천지개벽의 창조주로 볼 것인가의 문제는 오히려 조화주의 입장에 선다고 볼 수 있다는 견해가 학계에 일반적이다.

 

 

단군신화 이전의 창조신화

신라시대 박제상(朴堤上)이 쓴『부도지(符都誌)』는 우리 민족의 가장 오래된 사서(史書)이다. 또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뜻 깊은 창세(創世) 기록이기도 하다.『부도지』에 의하면 천지창조의 주인공은 율려(律呂)이다. 율려가 몇 번 부활하여 별들이 나타났고, 우주의 어머니인 마고(麻姑)를 잉태했다. 마고는 홀로 선천(先天)을 남자로 하고 후천(後天)을 여자로 하여 배우자가 없이 궁희(穹姬)와 소희(巢姬)를 낳고, 궁희와 소희도 역시 선천과 후천의 정을 받아 결혼하지 아니하고 네 천인(天人)과 네 천녀(天女)를 낳았다. 율려가 다시 부활하여 지상에 육지와 바다가 생겼다. 기(氣), 화(火), 수(水), 토(土)가 서로 섞여 조화를 이루더니 풀과 나무, 새와 짐승들이 태어났다. 마고는 율려를 타고 지구를 삶의 터전으로 만들었으며, 천인과 천녀들은 하늘의 본음(本音)으로 만물을 다스렸다.
네 천인과 네 천녀는 마고의 뜻에 따라 서로 결혼하여 각각 3남 3녀를 낳았다. 그리고 그들이 또 서로 결혼하여 몇 대를 지나는 사이 1만 2천명의 무리가 되었다. 그들은 지구상의 가장 높은 곳에 '마고성(麻姑城)'이라는 이상적인 공동체(符都)를 이루고 살았다. 그들은 품성이 조화롭고 깨끗하며, 땅에서 나오는 지유(地乳)를 먹고살아 혈기가 맑았다. 그들의 귀에는 오금(烏金)이 있어 하늘의 소리를 듣고 율려를 체득하여 자신이 바로 우주와 하나임을 깨달았다. 우주의 원리인 율려에 의존하여 살았기 때문에 유한한 육체의 한계를 넘어 무한한 수명을 누렸다. 그들은 만물에 깃들인 마음의 본체를 읽는 지혜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마음의 본체를 운용하여 소리를 내지 않고도 말을 했고, 마음먹은 곳은 어디든지 갔으며, 형상이 없이도 행동할 수 있었다.
그들 중에 지소씨(支巢氏)라는 사람이 어느 날 지유(地乳)를 마시려고 유천(乳泉)에 갔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아 마시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배가 고파 어지러워서 쓰러졌다. 지소씨는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소(巢)의 난간의 넝쿨에 달린 포도열매를 허겁지겁 따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귀가 윙윙거리고 혀가 아려오고 온 몸의 피부가 가렵고 코가 맹맹해졌다. 어쩔 줄을 몰라하던 지소씨는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시간이 흘러 지소씨는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눈앞에 펼쳐진 세상이 전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온 세상이 색색으로 물들어 있고, 꽃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귀에는 물 흐르는 소리와 새의 노래가 들려왔다. 지소씨는 "넓고도 크구나 천지여! 하지만 내 기운을 능가하지는 못하는구나. 이 모두가 포도의 힘이로다."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포도를 권했고, 포도의 다섯 가지 맛을 알게 된 사람들은 번잡하고 사사로운 욕망과 감정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오미(五味)의 변(變)이다.
마고성의 사람들은 깜짝 놀라 사람들이 포도를 먹지 못하도록 금지하기에 이른다. 마음의 본체, 즉 본성이 하고자 하는 대로 살던 마고성의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인위적인 금지법이 생긴 것이다. 아무런 구속과 강제 없이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던 자재율(自在律)이 파괴된 것이다. 결국 포도를 먹은 이들뿐 아니라 포도를 먹지 못하도록 지키는 이들도 율려에 의존하여 살 수 없게 되었다. 포도를 먹은 이들은 몸이 이상하게 변했다. 또한 포도를 먹은 것을 창피하게 생각해 거짓말을 하고, 점차 남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어두워져서 마침내 천성(天性)을 잃어갔다. 오금(烏金)은 흙으로 변해 더 이상 하늘의 음을 들을 수 없었으며, 마음의 본체를 볼 수도 운용할 수도 없었다. 사람들은 유한한 육체의 한계 속에 갇혀 육체의 감각인 오감에만 의존해서 살아야 했다. 여러 사람들이 지소씨를 원망하자 그는 부끄러운 나머지 사람들을 이끌고 마고성에서 나가 숨어버렸다. 천성을 잃은 다른 사람들도 이곳 저곳으로 흩어졌다. 마고성의 제일 어른이었던 황궁씨(黃穹氏)는 떠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간곡하게 말했다. "그대들의 마음이 심하게 흐려져 마음의 본체가 변하니 어쩔 수 없구려. 그러나 스스로 하늘의 이치를 깨달아 마음이 다시 맑아지면 자연히 천성을 되찾게 될 것이니 노력하고 또 노력하시오." 그러나 성밖은 기(氣), 화(火), 수(水), 토(土)가 서로 부딪치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만물은 서로를 시기하고, 불신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다퉈 성밖의 세상은 점점 혼란스러워졌고, 나중에는 마고성까지 위험하게 되었다. 이에 황궁씨가 모든 사람들 가운데 어른이었으므로 마고의 앞에 사죄하여 오미(五味)의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고 복본할 것을 서약하였다. 제족들과 의논한 결과 마고성을 완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마침내 성문을 닫고 모두가 성을 떠나 이주할 것을 결심한다. 황궁씨는 마고성에 살던 네 무리 중 한 무리의 3천 명을 이끌고 가장 춥고 위험한 북쪽의 천산주(天山洲)로 향했다. 다른 세 무리도 각각 동, 서, 남쪽으로 향했다.
황궁씨는 천산주에 도착하여 해혹하여 복본(複本)할 것을 서약했다. 또한 사람들에게 수증(修證)하는 일을 열심히 하도록 일렀다. 큰아들인 유인씨(有因氏)에게는 하늘의 징표인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주어 세상을 밝히게 하고, 둘째와 셋째 아들에게는 천산주 일대를 순행(巡行)하도록 하였다. 아들에게 후일을 도모하도록 한 뒤, 황궁씨는 스스로 천산(天山)으로 들어가 긴 소리를 토하는 돌이 되었다. 돌을 통해 율려의 음을 울려 오감과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려서 그들이 율려를 회복하는 일을 도왔다.
큰아들 유인(有因)씨는 황궁씨에게 물려받은 천부삼인으로 사람들에게 만물의 근본이 하나임을 깨닫게 하였다. 또한 불을 일으켜 어둠을 밝게 비추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음식을 익히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후일 유인씨는 아들 한인(桓因)에게 천부를 정하고 산으로 들어간다. 한인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밝히고, 햇빛을 고르게 비추고, 기후를 순조롭게 만들었다. 마침내 만물이 평정을 되찾고 사람들의 괴상한 모습이 점차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이는 황궁, 유인, 한인 3대에 걸쳐 3천년 동안이나 수증을 한 정성 덕분이었다.

 

 

단군 신화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 환웅(桓雄)이 있어, 항상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세를 탐내거늘 아버지가 아들의 뚯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白)을 내려다 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밑에 내려와 여기를 신시라 이르니 이가 환웅천왕(桓雄天王)이란 이다. 그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 명(命), 병(病), 형(刑), 선(善),악(惡)등 무릇 인간의 3백 60여 사를 맡아서 인간세상에 살며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그때 한 마리의 곰과 한 마리의 호랑이가 같은 굴에서 살며 항상 신웅(神雄)에게 빌기를, 원컨데 화(化)하여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거늘, 한번은 신웅이 신령스러운 쑥 한 줄기와 마늘 20개를 주고 이르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아니하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 하였다. 곰과 범이 이것을 받아서 먹고 기(忌)하기 삼칠일 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고 범은 능히 기하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는 그와 혼인해 주는 이가 없으므로 항상 신단수 아래서 축원하기를 '아이를 배었으면 합니다.' 하였다. 환웅이 이에 잠간 변하여 결혼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왕검이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컫고, 또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에 옮겼는데 그 곳을 궁홀산(弓忽山)또는 금며달(今 達)이라고 하니, 나라를 다스리기 1천 5백년이었다. (궁홀산, 금며달은 '곰골', '곰딸'의 사음(寫音)이다.) 단군은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후에 아사달에 돌아와 산신이 되니 수가 1천 9백 8세이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