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원래 백제 오차현이 삼국통일 이후 신라 경덕왕 때 오아(烏兒)로 개칭
보성군의령현이 되었음.
고려시대
고려 초에 정안으로 고쳐 영암에 소속되었다가 인종때 장흥으로 개명
지사부로 승격 정주 관산으로 부름
원 종 6년(1265년) 회주목으로 승격
충선왕 2년(1310년)에 다시 장흥부로 강등
조선시대
이태조 원년(1392년) 수령현의 중령산에 성을 쌓고 치소로 하였음
13년(1413년)에 도호부에서 그 이듬해 수령현으로 도호부를 이설
세 조 3년(1457년)에 진을 두고 2현으로 강진, 해남을 관할
선 조 32년(1599년)에 병마철제사영을 강진에서 장흥으로 이설
선 조 37년(1604년)에 강진 구영으로 옮김
(인 조 14년(1636년)12월 <죽산최씨5세손 최림 전라도 장흥에 직장으로 참전>
인조대왕이 중전,세자,빈궁을 데리고 남한산성 으로 피난을 갔으나 청나라 군인들이 이미 남한산성을 포위,위급한 사태에 이르러 신하 황일호(黃一皓)가 의병을 모아 의병장 으로 하여금 청나라군사들을 무찌르기 청하였더니 각 도에 있던 의병중 안우산(安牛山)선생이 각 고을에서 자원한 의병 100여명의 대표를 모아 의논 하기를 청나라 군사를 무찌르기로 합의 하였다.
그후 도내 여러 고을에서 의병을 모집하고 군량미를 비축 했다.
그때 의병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여산(礪山)에 진군하여 청주(淸州)에 이르니 이미 경성(京城)과 남한산성은 청나라 군사가 장악해 버렸고, 왕자를 볼모로 잡아 북으로 도망 갔다고 한다.
그때 전라도 장흥(長興)지방에서는 의병으로 윤동야(尹東野). 위사진(魏士進). 백수현(白수賢). 남기문(南起文). 김기원(金器元). 직장 최림(直長 崔琳)이 출정 했는데 공의 본관은 竹山이요, 숭록대부의정부좌찬성홍문관대제학(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經筵弘文館大提學)을 지낸 최효운(崔孝雲)의 고손자요., 판서를 지낸 최충좌(崔忠佐)의 손자이며, 면천(沔川)군수를 지냈던 최영(崔령)의장남 이다.
공은 의롭지 못한일을 보고 정의심이 북받치어 슬퍼하고 한탄한 성품이며 고고한 품성과 충효사상이 투철하고 지혜와 용맹이 있는 직장으로서 의병장 안우산과 출정 했다.
---자료근거: 丙子倡義錄:제5간죽산최씨세보21쪽---)
현 종 9년(1699년)전영을 병설
숙 종 9년(1683년)에 진을 순천에 이설
(숙종34년(1708년)12월 죽산최씨7세손 최상윤 통정대부 장흥부사 임명.
최상윤은 최림(장사랑사재감직장)의손자이며 통훈대부,
면천군수를 지낸 최령의 증손자 이다.
---자료근거:장흥부사 사령장,제5간죽산최씨세보24쪽---)
고 종 32년(1895년)에 장흥군이라 함.
근대-현재
1914년에 천포,회령,웅치 등 3개면이 보성군에 편입 11개의 행정구역 으로 개편
1936. 11. 1 면통폐합으로 부동면을 장흥면으로 남하, 남상 양면을 폐합,
용산면으로 남하면의 하발,고마,죽청과 고읍면을 폐합 관산면 으로 개칭 9개면이 됨
1940. 11. 1 장흥면이 장흥읍으로 승격 1읍8개면 275개리로 지속
1973. 07. 1 행정구역 조정으로 장동면 광평리가 장평면으로 조정
1980. 01. 1 장흥읍 건산3구, 예양리, 대덕면 회진리가 분할 279개리가 됨
1980. 12. 1 관산면과 대덕면이 관산읍과 대덕읍으로 승격 3읍 6면이 됨
1982. 01. 1 장흥읍 건산 4구, 원도리, 대덕읍 회진리, 안양면 수문리가 분할
3읍 6면 283개리가 됨
1985. 10.19 대덕읍 회진출장소 설치
1986. 04.10 대덕읍에서 회진면이 분면 3읍 7개면이 됨
1986. 07.15 관산읍 옥당,
용산면 인암, 풍길리,
안양면 해창 3구,
장동면 북교1구,
장평면 용강2구, 봉림리, 우산리, 청용리,
회진면 진목 2구가 분할
3읍 7개면 294개리의 행정구역으로 개편 현재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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