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10월 19일, 강원도 인제에서 일어난 일가족 살인사건이다.
고재봉(高在奉)은 1938년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봉덕1리 동산마을 128번지에서 아버지 고**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946년 국민학교 2학년 중퇴하였고
1947년 10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고 6.25 전쟁 중에 누나 한 명이 행방불명되었다.
1952년 15살 때 아버지 사망후 친척의 도움을 받아 여수-부산연락선에서 담배 장사를 하며 돈을 벌었다.
1955년 18살 때 12살 난 누이동생을 데리고 상경 서울역 앞에서 노숙을 하기도하였고 매춘 뚜쟁이 구두닦이를 하며 직업소년학교를 1년간 다녔다.
이후 동두천 미군부대에서 구두닦이 세차장 인부 하우스보이로 생활하고 서울 어느 빵집에서 빵과 우유를 배달하였고, 장충단공원에서 빵 장사와 행상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1961년 10월 26일 육군에 입대하여 수료한 뒤 12월 29일 제1106야전공병단 제101대대 1중대에 배속되었다.
1962년 12월 29일 고재봉은 옆 부대 박** 중령의 관사에서 여러가지 일을 끝낸 후 서재에서 나오다가 고기 한 근을 훔쳐 들고 나왔는데, 이것이 가정부에게 발각된 것에서 시작되었다.
가정부는 소리를 질렀고 가정부를 죽이지는 않았지만 자신 옆에 있던 도끼로 가정부를 위협하였고 박** 중령은 신발을 잃어 출근까지 못하고 윗집의 국민학교 교사의 옷가지도 도둑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부관을 시켜 신남지서에 신고하였고 체포되어 살인미수로 징역 7개월형을 받고 육군교도소에서 복역했다.
1963년 7월 20일 출소 후 제1109야전공병단으로 재배속되었다.
1963년 9월 1일 부대에 복귀하지 않고 탈영하였다.
1963년 9월 초 서울 중구 을지4가에서 애인인 최*숙을 만났으나 그가 범죄자라 냉대하며 결별을 통보했다.
고재봉은 이 모든 게 박** 중령 때문이라고 생각해
1963년 10월 10일 박** 중령을 죽이기 위해 인제 절골산 등을 다니며 강냉이 등으로 연명하며 몸을 숨기고 노숙하였다.
10월 12일~10월 18일: 인제 남면 어론리 류**의 집에서 도끼 한 자루를 훔치고 남면 신풍리 어느 민가에서 식칼 한 자루를 훔친 뒤 박병희 중령의 집 뒷산 낙엽 속에 숨겼다.
이날 밤부터 일주일간 매일 밤 박** 중령의 집에 가서 문고리까지 잡기도 했으나 차마 결행하지 못하고 뒤돌아서기를 반복하다가
10월 18일 오후 마을의 탈곡 작업장에서 술을 얻어 마신 후 술기운을 빌려 범행을 저지르기로 결심하며 밤 10시에 산에서 내려와 관사로 갔다.
마침 박** 중령이 술에 만취해서 부부싸움을 한 뒤 혼자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하여
10월 19일 새벽 1시 30분 관사 뒷 문으로 침입해 만년필형 전지로 중령의 위치를 확인 후 도끼로 살해했다.
고재봉은 방 안의 불을 켠 후 주전자 속 술을 마시고 권총을 찾기 위해 옷장을 뒤졌다.
뒤이어 중령의 방에 들어온 중령의 부인 김** 역시 살인하고 아랫방으로 가서 식모 옥**(15세)와 장녀 이**(9세) 차녀 이**(5세) 차남 이**(3세)을 살해한후 중령의 '보마' 손목시계와 중령 부인의 백금다이아 반지, 현금 10원, (금고는 문을 열지 못해 포기), 야전 점퍼, 작업바지, 군무복, 군화 등을 훔쳐 달아났다.
이 중령의 자녀 중 유일한 생존자는 서울 큰 집에 있던 큰 아들 이*군(12) 뿐이었다.
그 후 사건 현장에서 40m 쯤 떨어진 어론교 밑에 중령의 옷과 구두 한 켤레를 숨겼고 홍천 두촌 산속으로 가 범행 당시 입었던 작업복 하의와 중령의 신분증을 숨겼다.
새벽 3시 30분 홍천군 서석면 풍암리 제11보병사단 소속 김** 병장 등 2명으로부터 불심검문을 받았다.
이때 군인들은 고재봉에게서 손목시계와 반지, 현금 580원을 강탈하고 풀어줬다.
이후 고재봉은 홍천읍 읍내까지 걸어가 하룻밤을 노숙하고
10월 20일 오후 8시에 버스로 횡성을 거쳐 오후 4시에 서울 성동 마장동에 살고 있던 사촌 형 고**의 집에 도착했고 이곳에서 3일을 묵었다.
10월 23일 저녁 7시 30분에 이곳을 떠나 금호동의 다른 사촌 형 고**의 집으로 가 하룻밤을 보냈다.
그리고 이 날 신문을 보고 나서야 자신이 죽인 사람이 박병희 중령이 아니라 새로 부임해 온 이득주 중령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고재봉은 사건발생전 일주일간 관사의 동태를 지켜봤으며 범행 때는 전지로 상대를 확인했고 범행 후에는 이 중령의 신분증을 훔치기까지 했는데 이중령과 박중령을 몰랐다는 것은 고재봉이 범행이유가 단순한 원한이라기보다는 강도가 목적일 수 있다는 설도 있다.
10월 24일 낮 12시에 고**의 집을 나와 금호동에 있던 4촌 매형 김**의 집을 잠시 들렀다가 오후 1시에 마장동에 있던 사촌 형 고**의 집으로 돌아갔다.
10월 25일 박 중령이 살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인제로 다시 가서 그가 제6보병사단으로 전출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산속에서 하룻밤을 잤다.
같은 날 군경합동수사대가 범인을 고재봉으로 확정하고 전국 지명수배를 내렸으며 육군본부 헌병감실과 제1야전군사령부에서 고재봉에 현상금 3만 원을 내걸었다.
10월 26일 저녁 7시 50분에 고재봉은 서울로 돌아와 마장동 사촌 형 집으로 잠시 돌아갔다가 박 중령을 죽이고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동대문시장으로 가서 60원을 주고 과도 3개를 샀다.
고재봉은 군경의 추적을 피해 도보와 버스를 이용해 경기도 시흥군, 안양읍, 수원군을 거쳐 평택군 송탄읍 서정리에 도착했다.
10월 27일 산속에 계속 숨어 있다가 저녁에 서정리 비행장 부근 모래밭에 토굴을 파고 16일간 노숙하였다.
낮에는 근처 들판을 헤매었고 토굴에서 600~700m 떨어진 민가에 가서 밥을 훔쳐다 먹으며 연명했다.
11월 6일 민가에서 자전거 1대를 훔쳐 타고 과도 3개 등을 챙긴 뒤 6일 동안 이동해 서울에 도착했다.
고재봉은 박 중령이 전출간 강원도 철원군까지 갈 여비가 없자 종로5가에서 행상을 하던 외사촌 동생 김**를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했다.
대신 외사촌 동생과 함께 사는 땅콩장수 김**(20세)를 만났다. hl2tci
김**는 고재봉을 만난 적이 있어 경찰 조사를 받았기 때문에 그가 지명수배 중이던 것을 알고 있었다.
김**는 고재봉에게 리어카 보관소에 가 보라고 말한 후 미행했다.
그리고 보관소 직원에게 경찰신고를 부탁했지만 신고되지 않았다.
고재봉은 보관소에서 사촌 동생 김**을 만나지 못하자 청계천변을 따라 걸었고 김**는 다른 행상인들에게 고재봉을 같이 잡자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하고
양말 장수인 김*(26세)이 김복수의 말을 듣고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오후 6시 20분부터 청계천을 통제했다.
그리고 마침내 고재봉은 동대문시장 입구에서 경찰들에게 체포당했다.
고재봉 체포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김**와 경찰에 신고한 김*은 표창장과 현상금, 2박 3일 관광여행 상품을 받아
1963년 11월 15일 아침 10시에 여의도동에서 경찰비행기를 타고 내무부 치안국 공보계장의 안내하에 해운대-경주시-대구시 등을 거쳐 11월 17일 오후에 돌아오기도 하였다.
고재봉은 미국 육군범죄수사단(현 미국 육군범죄수사국)에서 수사받으면서 자신의 단독 범행이라며 순순히 자백했다.
1963년 12월 12일 고재봉은 육군보통군법회의에서 죄수번호 5000번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고재봉은 강도살인, 상관살해, 예비강도 등 8개 혐의로 기소됐으나 재판 도중 자신은 강도살인이 아니라 살인강도라고 주장했다.
즉, 자신은 강도질을 하기 위해 관사에 침입해 이득주 중령을 살해한 게 아니라 이득주 중령을 살해하기 위해 관사에 침입했고 살인을 저지른 김에 강도질도 했다고 하였다.
12월 19일 사형 판결을 받았고 고재봉은 항소를 포기하면서 사형이 확정되었다.
사형수로 복역하던 중 교회목사의 전도로 옥중에서 회심하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사형 선고 다음 해인 1964년 3월 10일 경기도 인천시 부평 근교의 어느 산골짜기에서 고재봉의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찬송가를 부르며 죽었다고 한다.
1963년 10월 19일, 강원도 인제에서 일어난 일가족 살인사건. 피해자와 범인이 모두 군 관련 인물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온 식구가 살해당했을 박**중령은 이 사건에 마음고생하다가 결국 오래 가지 못하고 예편해 군직에서 물러났다는 후일담도 나왔다.
병-간부 사이의 불화가 극단에 달해 벌어진 사건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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