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글.모음

춘면곡(春眠曲)

Choi가이버 2022. 12. 7. 09:18

봄잠을 늦게 깨여 대나무 창을 반쯤 여니
들의 꽃은 활짝 피어 있고 가던 나비는 꽃 위를 머무는데 
강기슭의 버들은 우거져서 물가에 띄여 있구나
창전에 덜 괸 술을 일이삼 배 먹은 후에 
호탕한 미친 흥을 부질없이 자아내여
백마 타고 금채찍 들고 흥청망청 놀수 있는 곳을 찾아가니 
꽃향기는 옷에 배고 달빛은 뜰에 가득한데
광객인 듯 취객인 듯 흥에 겨워 머무는 듯
이리저리 거닐다면서 기웃거리다가 유정히 섰노라니 
푸른 기와와 붉은 난간이 있는 높은 집에 연두저고리와 다홍 
치마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비단으로 가리운 창을 반쯤 열고 고운 얼굴을 잠깐 들어 
웃는 듯 찡그리는 듯 요염한 자태로 맞아주네
은근한 눈빛을 하고 녹기금을 비스듬히 안고 
맑고 청아한 노래로 봄흥취를 자아내니 
운우 양대상에 초몽이 다정하다

사랑도 그지없고 연분도 그지없다
이 사랑 이 연분 비길데 전혀없다
너는 죽어 꽃이 되고 나는 죽어 나비가 되어 
봄이 다 지나가도록 떠나 살지 않을려고 했더니

인간이 말이 많고 조물주도 시기하여
새 정을 다 펴지 못하고 애달프지만 이별이라 
맑은 강에 놀던 원앙 울면서 떠나는 듯 
거센 바람에 놀란 벌과 나비 가다가 돌치는 듯 
석양은 다 져가고 매여둔 말은 졸고 있을 때 
나삼을 부여잡고 침울한 마음으로 이별한 후에 
슬픈 노래 긴 한숨을 벗을 삼아 돌아오니 
이제 이 님이야 생각하니 원수로다
간장이 모두 썩으니 목숨인들 보전하겠는가

몸에 병이 드니 모든 일에 무심해져
서창을 굳이 닫고 어색하게 누워 있으니 
꽃 같은 얼굴에 달 같은 모습은 눈앞에 삼삼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거처하는 방은 침변이 여기로다 
연잎에 이슬이 맺히니 이별의 눈물을 뿌리는 듯 
버들막에 연기끼니 맺힌 한을 머금은 듯 
적적한 산에 달은 밝고 두견새는 슬피 우는데 
슬프구나 저 새소리 내 맘 같은 두견새라

삼경에 못든 잠을 사경에 간신히 드니
마음속으로 품고 있던 우리 님을 꿈속에서 우연히 만나니 
천 가지 시름 만 가지 한 못다 이루는 부질없는 꿈이 되니 
아리따운 미인 곁에 얼풋 앉았는데
어화 황홀하다 꿈을 생시로 삼고 싶구나

잠자리를 걷어차고 바삐 일어나 바라보니 
구름 낀 산 첩첩히 천리의 꿈을 가리었고

흰달은 창창하여 님을 향한 마음에 밝게도 비춰 주는구나 
애인을 만나기 좋은 시절(또는 아름다운 약속)은 끊어졌고
세월이 많기도 많아(빨리 흘러가)

엊그제 꽃이 강 언덕의 버드나무 가에 붉었더니
그 동안에 세월이 빨리 지나가 잎 떨어지는 가을의 소리라

새벽 서리 지는 달에 외기러기 슬피 울 때 
반가운 임의 소식 행여 올까 바랐더니
멀어 아득한 구름 밖에 빈 소리(비소리) 뿐이로다 
지루하다 이 이별이 (끝나) 언제면 다시 볼까 
아! 나의 일이야 나도 모를 일이로다
이리저리 그리면서 어찌 그리 못 보는고
비 내리는 머나먼 길을 멀다고 하는 것은 이런 때를 두고 이 
르는 것이구나
산머리에 조각달되어 님의 곁에 비치고 싶구나 
돌 위의 오동나무 되어 님의 무릎에 베이고 싶구나 
빈 산에 잘새 되어 북창에 가서 울고 싶구나 
집 위 아침 해의 제비 되어 날고 싶구나
옥창(여인의 방) 앵두꽃에 나비 되어 날고 싶구나 
태산이 평지 되고 금강이 다마르나
평생 슬픈 회포 어디에 끝이 있으랴

글을 부지런히 읽어 공부를 잘하면 아름다운 아내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은 나도 잠깐 들었으니
마음을 다시 먹고 강개(의지)를 다시 내어
대장부의 공적이 뚜렷한 사업(입신양명)을 끝까지 이룬 후에 
그제서야 임을 다시 만나 백년(한평생)을 살려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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