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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순전(麴醇傳)

Choi가이버 2022. 11. 19. 11:58

국순전(麴醇傳)-임춘(林椿)

국순(麴醇)의 자(字)는 자후(子厚)이다.
그 조상은 농서( 西) 사람이다. 90대조(九十代祖)인 모(牟)가 후직(后稷)을 도와 뭇 백성들을 먹여 공이 있었다.
‘시경(詩經)'에, “내게 밀과 보리를 주다." 한 것이 그것이다.
모(牟)가 처음 숨어살며 벼슬하지 않고 말하기를, “나는 반드시 밭을 갈아야 먹으리라."
하여, 밭에서 살았다.
임금이 그 자손이 있다는 말을 듣고 조서(詔書)를 내려 안거(安車)로 부를 때, 군(郡)과 현 (縣)에 명하여 곳마다 후하게 예물을 보내게 하였다.
신하를 시켜 친히 그 집에 나아가, 드디어 방아와 절구[杵臼] 사이에서 교분을 정하였다.
화광 동진(和光同塵)하게 되니, 훈훈하게 찌는 기운이 점점 스며들어서 온자한 맛이 있어 기뻐 말하기를, “나를 이루어 주는 자는 벗이라 하더니, 과연 그 말이 옳다." 하였다.
드디어 맑은 덕(德)으로써 들리니, 임금이 그 집에 정문(旌門)을 표하였다.
임금을 따라 원구(園丘)에 제사한 공으로 중산후(中山侯)에 봉해졌다.
식읍(食邑)은 일만 호(一萬戶)이고, 식실봉(食實封)은 오천 호(五千戶)이며, 성(姓)은 국씨(麴 氏)라 하였다.
5세손이 성왕(成王)을 도와 사직을 제 책임으로 삼아 태평 성대를 이루었고, 강왕(康王)이 위(位)에 오르자 점차로 박대를 받아 금고(禁錮)에 처해졌다.
그리하여 후세에 나타난 자가 없고, 모두 민간에 숨어살게 되었다.
위(魏)나라 초기에 이르러 순(醇)의 아비 주(酎)가 세상에 이름이 알려져서, 상서랑(尙書郞) 서막(徐邈)과 더불어 서로 친하여 그를 조정에 끌어들여 말할 때마다 주(酎)가 입에서 떠나 지 않았다.
마침 어떤 사람이 임금께 아뢰기를, “막이 주와 함께 사사로이 사귀어, 점점 난리의 계단을 양성합니다." 하므로, 임금께서 노하여 막을 불러 힐문하였다.
막이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기를, “신이 주를 좇는 것은 그가 성인(聖人)의 덕이 있삽기에 수시로 그 덕을 마셨습니다."
하니, 임금께서 그를 책망하였다.
그 후에 진(晋)이 이어 일어서매, 세상이 어지러울 줄을 알고 다시 벼슬할 뜻이 없어, 유령(劉 伶), 완적(阮籍)의 무리들과 함께 죽림(竹林)에서 노닐며 그 일생을 마쳤다.
순(醇)의 기국(器局)과 도량은 크고 깊었다.
출렁대고 넘실거림이 만경 창파(萬頃蒼波)와 같아 맑게 하여도 맑지 않고, 뒤흔들어도 흐리 지 않으며, 자못 기운을 사람에게 더해 주었다.
일찍이 섭법사(葉法師)에게 나아가 온종일 담론할 때, 일좌(一座)가 모두 절도(絶倒)하였다.
드디어 유명하게 되었으며, 호(號)를 국처사(麴處士)라 하였다. 공경(公卿), 대부(大夫), 신선 (神仙), 방사(方士) 들로부터 머슴, 목동, 오랑캐, 외국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향기로운 이름 을 맛보는 자는 모두가 그를 흠모하여, 성대(盛大)한 모임이 있을 때마다 순(醇)이 오지 아 니하면 모두 다 추연하여 말하기를 “국처사가 없으면 즐겁지가 않다." 하였다.
그가 당시 세상에 애중(愛重)됨이 이와 같았다.
태위(太尉) 산도(山濤)가 감식(鑒識)이 있었는데, 일찍이 그를 말하기를, “어떤 늙은 할미가 요런 갸륵한 아이를 낳았는고. 그러나 천하의 창생(蒼生)을 그르칠 자는 이 놈일 것이다." 라 하였다.
공부(公府)에서 불러 청주 종사(靑州從事)를 삼았으나, 격( )의 위가 마땅한 벼슬자리가 아니 므로, 고쳐 평원 독우(平原督郵)를 시켰다.
얼마 뒤에 탄식하기를, “내가 쌀 닷 말 때문에 허리를 굽혀 향리(鄕里) 소아(小兒)에게 향하지 않으리니, 마땅히 술 단지와 도마 사이에서 서서 담론할 뿐이로다." 라고 하였다.
그 때 관상을 잘 보는 자가 있었는데 그에게 말하기를, “그대 얼굴에 자줏빛이 떠 있으니, 뒤에 반드시 귀하여 천종록(千鍾祿)을 누릴 것이다.
마땅히 좋은 대가를 기다려 팔라." 라고 하였다.
진후주(陣候主) 때에 양가(良家)의 아들로서 주객 원외랑(主客員外郞)을 받았는데, 위에서 그 기국을 보고 남달리 여겨 장차 크게 쓸 뜻이 있어, 금구로 덮어 빼고 당장에 벼슬을 올려 광록 대부 예빈경(光祿大夫禮賓卿)으로 삼고, 작(爵)을 올려 공(公)으로 하였다.
대개 군신(君臣)의 회의에는 반드시 순(醇)을 시켜 짐작(斟酌)하게 하나, 그 진퇴(進退)와 수 작이 조용히 뜻에 맞는지라, 위에서 깊이 받아들이고 이르기를, “경(卿)이야말로 이른바 곧 음[直] 그것이고, 오직 맑구나.
내 마음을 열어 주고 내 마음을 질펀하게 하는 자로다." 라 하였다.
순(醇)이 권세를 얻고 일을 맡게 되자, 어진 이와 사귀고 손님을 접함이며, 늙은이를 봉양하 여 술․고기를 줌이며, 귀신에게 고사하고 종묘(宗廟)에 제사함을 모두 순(醇)이 주장하였다.
위에서 일찍 밤에 잔치할 때도 오직 그와 궁인(宮人)만이 모실 수 있었고, 아무리 근신(近臣 )이라도 참예하지 못하였다.
이로부터 위에서 곤드레만드레 취하여 정사를 폐하고, 순은 이에 제 입을 재갈 물려 말을 하지 못하므로 예법(禮法)의 선비들은 그를 미워함이 원수 같았으나, 위에서 매양 그를 보 호하였다.
순은 또 돈을 거둬들여 재산 모으기를 좋아하니, 시론(時論)이 그를 더럽다 하였다.
위에서 묻기를, “경(卿)은 무슨 버릇이 있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옛날에 두예(杜預)는 좌전(左傳)의 벽(癖)이 있었고, 왕제(王濟)는 말[馬]의 벽이 있었고, 신 (臣)은 돈 벽이 있나이다." 하니, 위에서 크게 웃고 권고(眷顧)가 더욱 깊었다.
일찍이 임금님 앞에 주대(奏對)할 때, 순이 본래 입에 냄새가 있으므로 위에서 싫어하여 말 하기를, “경이 나이 늙어 기운이 말라 나의 씀을 감당치 못하는가." 라 하였다.
순이 드디어 관(冠)을 벗고 사죄하기를, “신이 작(爵)을 받고 사양하지 않으면 마침내 망신 (亡身)할 염려가 있사오니, 제발 신(臣)을 사제(私第)에 돌려주시면, 신(臣)은 족히 그 분수를 알겠나이다." 라고 하였다.
위에서 좌우(左右)에게 명하여 부축하여 나왔더니, 집에 돌아와 갑자기 병들어 하루 저녁에 죽었다.
아들은 없고, 족제(族弟) 청(淸)이, 뒤에 당(唐)나라에 벼슬하여 벼슬이 내공봉(內供奉)에 이 르렀고, 자손이 다시 중국에 번성하였다. 사신(史臣)이 말하기를, “국씨(麴氏)의 조상이 백성 에게 공(功)이 있었고, 청백(淸白)을 자손에게 끼쳐 창(鬯)이 주(周)나라에 있는 것과 같아 향기로운 덕(德)이 하느님에까지 이르렀으니, 가히 제 할아버지[祖]의 풍이 있다 하겠다.
순(醇)이 들병의 지혜로 독 들창[甕爽]에서 일어나서, 일찍 금구(金 )의 뽑힘을 만나 술단지 와 도마에 서서 담론하면서도 가(可)를 들이고 부(否)를 마다하지 아니하고, 왕실(王室)이 미란(迷亂)하여 엎어져도 붙들지 못하여 마침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거원(巨源)의 말이 족히 믿을 것이 있도다."라고 하였다.

어휘 풀이
* 국순(麴醇): 술을 의인화된 말. 술의 재료인 누룩[麴]을 성으로, 술[醇]을 이름으로 삼음 * 농서(隴西): 진·한시대 군 이름
* 후직(后稷): 중국 주나라의 시조. 농사일을 잘 다스려 순임금이 후직이란 이름을 줌 * 기국(器局): 사람의 도량과 재간
* 섭법사(葉法師): <태평광기>의 ‘섭법선(葉法善) 설화’에 나오는 인물 * 일좌(一座): 온 좌석
* 절도(絶倒): 까무러쳐 넘어짐
* 방사(方士): 신선의 술법을 닦는 사람
* 종묘(宗廟):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던 왕실의 사당
* 참예(參詣): 나아가서 빎
* 창(鬯): 옛날 강신제(降神祭) 때 썼다는 옻기장을 재료로 하여 빚은 술. 창주(鬯酒) * 들병[설병(挈甁)]: 술동이
* 들창[옹유(甕牖)]: 항아리 뚜껑
* 금구(金毆): 금 또는 쇠로 만든 사발이나 단지
* 미란(迷亂): 정신이 흐리멍덩하여 어지러움
* 거원(巨源): 중국 진나라의 높은 선비로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산도(山濤)의 자(字). 공정한 성품에 덧붙여 인물을 보는 감식안이 있어 그가 골라 뽑은 인물은 모두 한 시대에서 빼어난 선비였다고 한다.

임춘(林椿 1147-1197)
고려 중기의 문인. 호는 서하(西河). 정중부의 무신난 때에 일가가 피해를 입고, 겨우 목숨을 보전하였다. 문명(文名)은 크게 떨쳤으나 과거에 번번이 낙방하였다. 불우한 일생을 보내면서도, 이인로 등과 죽림고회(竹林高會)를 이루어 시주(詩酒)로 생활하며 많은 시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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