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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끼전

Choi가이버 2022. 11. 15. 19:38

장끼전

이곳은 조용하고 으슥한 산골짜기 봉묏골이다.
 뒤로는 기이한 바위들이 촘촘히 둘러싸  있고, 옆 좌우로는 소나무 참나무,  떡갈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는 진달래, 싸리, 머루덩굴 들이  옹기종기 솟아있고, 저 아래쪽으로 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어, 그앞을 맑은 시냇물이 가로질러 굽이쳐 흐르고 있다.
 봄이 되면 온갖 새들이 예쁜 모습과 고운 목소리를 자랑하며 나무 사이를 뚫고 날아다닌 다.
 여름이면 우거진 나무와 풀들이 앞을 다투어 하늘로 치솟아 위세를 부린다.
 가을이면 날짐송과 들짐숭들이 이리저리 어울려 추수에 정신을 팔며, 겨울에는 온갖 식물 과 동물들이 일년 동안의 노고를 잊고 잠들어 이듬해의 봄을 조용히 기다린다.
 때는 어느 화창한 봄날.
 사방을 살펴보면 진달래와 개나리 등이 그득히 펼쳐져 저마다 활짝 핀 꽃을 자랑한다.
 "도련님, 고단하실텐데 이만 돌아가시지요."
 "지금 돌아가야 할 일이 없지 않느야? 고단하다 해도 한잠자고 나면 몸이 가쁜해져서  새 기운을 얻게 되는 법이다. 좀더 있다가 꽃낸새에 싫도록 취해 보자꾸나."
 나무위에 나란히 앉아있는 두 마리의 장끼가 주고 받는 대화였다.
 한 마리는 면두가 우뚝 치솟고 꼬리가 유난히  길며 두 눈이 샛 별처럼 빛나는 귀공자로 바로 봉묏골 골짜기에 대대로 살아 내려오는 태수의 맏아들 한뫼도령이었다.
 다른 한 마리는 면두가 조그맣고 후줄그레한 꼬리에 두눈이 곧 감겨질 듯이 게슴츠레해서 어디로 보나 남의 하인 노릇밖에 못할 어벙벙한 모습인데 바로 태수의 집에서 대대로 종노 릇을 해내려오는 하인 장끼의 아들 들머루 였다.
 진달래꽃이 산과 골짜기를 뒤덮고, 잠을 깨어 피어난 새싹은  어서 오라 손짓하는 계절이 라 한뫼도령과 들머루는 일찌감치 둥지에서 나와 고개를 넘고 들판을 건너 이곳 강벼랑에서 구경하는 중이었다.
 해가 뜰 무렵에 집을 나왔는데 벌써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해서 들머루는 부지런 히 날아가야만 어둡기 전에 집에 닿으리라 생각하고 조바심을 하는 중이었다.
 들머루가 다시 재촉했다.
 "도련님, 어서 가십시다. 늦게 들어가면 아버님이 꾸중하실 것입니다."
 하뫼도령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이 아름다운 풍경을 놓칠수는 없지 않는냐? 꾸중 이야 참으며 견딜수가 있지 만 이아름다운 풍경은 한번 떠나면 다시 볼수가 없다."
 "하지만 꽃구경은 이곳이 아니더라도 다른곳에 얼마든지 있을뿐더러 이곳의  모양도 올해 가 지난다 해도 내년이 또있지 않습니까? 아버님의 꾸중은 도련님의 마음을 오랫동안 아프 게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어서 돌아가십시다."
 그러자 한뫼도령이 마지 못해 몸을 일으켰다.
 "네 말에도 그럴듯한 것이 있기는 하다. 그럼 슬슬 돌악 보도록하자. 어? 저기  저것은 무엇이냐?"
 한뫼도령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소리에 들머루는 덩달아 고개를 부쩍 치켜들고 두리번거 렸다.                           
"무엇 말입니까? 소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뎁쇼."
 "어허 심분이 미천한 놈은 눈마저  밝지 못하구나! 저기 저  잔디위에 선녀처럼 아름다운 까투리 아가씨들이 놀고 있지 않느냐?"
 들머루가 쳐다보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저 아가시들 말입니까? 소인은  벌써부터 보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보시고 야단 이십니까?"
 "상놈은 욕심이 많아서 눈에 띠는 것도 많구나. 저렇게  아리따운 아가씨들을 보고 왜 돌아가자고 안달부달했느냐?"
 들머루가 히죽 웃고 대답했다.
 "소인이 바른 말을 드리리다. 사실은  도련님이 저 아가씨들을 보고  딴 생각을 일으킬까 봐 어서 돌아가자고 재촉한 것입니다."
 "허허... 네 녀석은 눈만 빠른줄 알았더니  눈치 또한 빠르구나. 과연 저  아가씨들을 보니 내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구나.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이라. 어서  이리로 데려 오도록 해 라."
 들머루는 고개를 흔들었다.
 "도련님은 성미도 급하십니다. 저들이 어떤 아가씨들인 줄이나  알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네놈은 정말 무식한 상놈이로다. 사내 대장부가 처녀를 보면 우선 만나볼 생각부터 해야지, 그누가 신분을 알고자 한단 말이냐?"
 한뫼도령의 말에 들머루는 펄쩍 뛰었다.
 "그런 말씀 함부로 하시면 큰일 나십니다. 저 아가씨는  우리 꿩들을 다스리고 있는 임금 님의 무남독녀 공주님이십니다. 오늘 어쩐 일로 저렇게 시녀 몇 명만 이끌고 나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리 탐을 내어도 안될것이니 어서 돌아가십시다."
 그러나 한뫼도령은 들은 척도 않고 오히려 들머루를 꾸짖었다.
 "듣거라, 이 무식한 녀석아, 제아무리 신분이 높다해도 까투리는 장끼를 남편으로 삼는 법이다. 그리고 남편이 될 장끼들중에서 누가 먼저 공주의 마음을  사로 잡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저 아가씨들도 이쪽을 힐끔 힐끔 바라보고 있는 것이 분명히 내게 마음을 둔것같다.
 들머루야, 어서 가서 데려 오너라."
 하뫼도령이 호령호령하자 들머루는 어이가 없어 자꾸만 달랬다.
 "도련님, 저까투리는 한 나라의 공주님입니다. 그러니 이쪽을 바라본다 해도  정다운 눈은 아닐것이니 제발 딴생각은 마십시오."
 "이뽁을 바라보는 눈이 서릿발처럼 차갑다고 하더라도 내 가슴에서 치솟는 이  뜨거운 정열은 걷잡을수가 없구나. 만나지 않고 이대로 돌아갈수는 도저히 없다."
 들머루는 안타까운나머지 발을 동동 굴렀다.
 "이대로 돌아가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고, 도련님과 짝이 될  까투리가 무수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 이상 가슴을 졸이지 말고 어서 고개를 돌리십시오."
 "인석아, 자기의 마음도 어쩔수 없는 떄가 세상에 많은 법이다. 저분 공주님도  나를 만나기만 하면 내 마음을 곧 헤아리고 나와 평생을 함께 지내려고 할 것이다."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저 공주님의 주변에는 수많은 군졸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잘못하 다가는 도련님이 꼼짝없이 잡혀가서 목숨을 잃게 될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그런 말씀은 거 두시고 어서 돌아가십시다."
 그러나 한뫼도령은 무슨 배짱인지 고집  불통이었다. 지금 당장 붙들려가서  죽는다 해도 만나보지 않고는 돌아가지 못하겠다. 어서가 데려 오도록 해라.
 들머루는 안색이 변해 속으로 부르짖었다.
 '큰일 났구나! 이럴줄 알았으면 애당초 이쪽으로 오지 말 것을 그랬구나. 잘못하다가는 우리 도련님 목숨만 잃게 될 것이다.'
 들머루는 어쩔줄을 모르다가 필사적으로 말렸다.
 "안됩니다! 제발 소인의 말씀도 좀 들어 보도록 하십시오."
 하지만 한뫼도령은 불길처럼 타오르는 사랑의 마음을 어떨게 해도  누를 수가 없었다. 해 서 눈을 부릅뜨고 호통쳤다.
 "이런 발직한 놈, 갔다 오라고 하면 갔다 올것이지 말대꾸가 왜그리도 많으냐? 만일 거역 했다가는 집에 돌아가서 다른 하인 들을 시켜 네 깃털을  뽑고 면두를 뜯도록 하겠다. 그게 싫거든 어서 가서 냉큼 모셔오지 못하겠느냐?"
 그러나 들머루는 집에가서 곤장을 맞을지언정  대궐군사들이 지키고 있는 곳으로  들어갈 마음은 없었다.
 "소인은 죽음녀 죽었지 못가겠습니다. 다리가 덜덜 떨리고  날개가 빳빳하게 굳어져서 목을 도무지 움직일수가 없구만요."
 들머루가 죽을 듯이 엄살을 부리자 한뫼도령은 참다 못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에이, 못난 녀석 같으니라구! 싫거든 그만둬라. 내가 몸소 가볼 테니까!"
 한뫼도령은 나뭇가지를 박차고 하늘높이 몸을 솟구쳤다. 이를 본 들머루도 엉겁결에 뒤쫓 아 푸르륵하고 날개를 쳤다.
 두 마리의 장끼는 허공을 가로질러 위세당당하게 까투리들이 놀고 있는 잔디밭 위에 풀썩 내려 앉았다.
 "에그머니!"
 까투리들은 기겁을 하여 달아나려고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공주만은 한 마리의 시녀와 함께 잔디 옆 숲속에 겨우 몸을 숨길수 있었지만 다느 까투리 시녀들은 갑자기 나타난 두 마리의 장끼 앞에 어쩔줄을 모르고 몰려 있었다.
 그러나 행여 공주에게 해나 끼치지 않을까 해서 눈을 팽팽하게 치뜨고 있었다.
 한뫼도령은 의젓하게 인사를 차렸다.
 "무례하게 군 것을 영서하십시오. 저는  저쪽 봉묏골에 살고있는 한뫼라는  자입니다.저기 숨어 계시는 저분 아가씨를 만나 뵈러 염치 불구하고 왔습니다."
 깍듯이 예의를 차리는 한뫼도령의 태도에 겁에 질렸던 까투리들은 얼마간 마음이 놓엿다.
 그중에서 가장 영특하고 용기있는 시녀 하나가 앞으로 나와서 매섭게 꾸짖었다.
 "잘못은 이미 저질러 놓고 무슨 용서를 구한단 말이죠? 우리는 이 나라를 다스리는  대왕 님의 무남독녀 이신 공주님을 모시고  나온 궁녀들이예요. 그러니 이곳은  장끼가 얼씬할 수 없으니 조금도 지체하지 말고 이 자리를 뜨면 무사하겠지만 잠시라도 어물쩍 거렸다가는 신변이 위태롭게 될 것이오."
 횐뫼도령이 어찌 순순히 물러가겠는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점잖게 입을 열 었다.
 "나는 그대들이 공주님을 모시는 시녀라는  것도 알고 있소, 또  이곳에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온  곳이니 만나지 않고는 가지 못하겠 습니다." 시녀 까투리가 버럭 호통을 쳤다.
 "이렇게 무엄하고 경우를 모르는 장끼가 있나! 설사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고 해도 미천한 몸으로 어떻게 귀하신 공주님을 만나 보겠다는 것이요? 할말이 있거든 시녀장인 내게 말하 도록 해요." 한뫼도령이 듣고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이 비록 공주님의 심복이라 할지라도 내가 할말을 대신 전해 달라고 할 수는 없습니 다. 내가 직접 아뢸 테니 부디 소원을 들어 주십시오."
 시녀장은 어이가 없는지 한동안 입을 딱 벌리고 있다가 다시 꾸짖었다.
 "바위보다도 더 답답하고 굼뱅이 보다도  더 미련한 장끼가 있을줄이야!  다시 한번 그런 무엄한 소리를 하면 바로 저아래 있는 경비대장에게 알리겠소.  공녕히 개죽음을 당하지 말 고 어서 자리를 뜨오!" 그래도 한뫼도령은 막무가내였다.
 "이미 목숨을 각오하고 온 이상 이대로 돌아갈수는 없소이다. 공주님을 해코자 하는 뜻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니 공주님을 뵙게 될 때가지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니 소원을 들어 주십시오" "고집은 똥고집이로다. 더 말해 보았자 내 입만 아프겠다. 얘들아!"
 시녀장은 한쪽에서 웅크리고 관망하고 있는 조그만 까투리들을 돌아보고 외쳤다.
 "네이!" "어서 내려가서 경비대장에게 고하라. 공주님이 나들이 나오신  이곳 잔디밭에 난 데없는 장끼 두 녀석이 와서 행패를 부리고 있다고! 주둥이가 세고 발톱이 날카로운 경비병 을 당장 올려 보내라고 일러라."
 "네이!" 명을 받자 시녀 까투리가 후르륵 낏을 치고 나무 위로 치솟아 올라갔다.
 바로 이때, "얘들아 어찌 그리 소란하냐?"
 숲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공주가 더 이상 보고만 있을수 없어 마침내 몸을 나타냈다.
 주둥이가 유난히 곱고 날개에 윤기가 기름을 칠한 것처럼 자르르한 것이 과녕 귀한 몸답 게 품위가 있고 고귀해 보였다. 그러나 시녀장이 땅에 이마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공주마마, 죄송하기 그지없사옵니다. 정신나간 장끼 두놈이 목숨 귀한 줄  모르고 야료를 부리고 있기에 경비대장에게 알리러 보내는 참이옵니다."
 공주가 근엄하게 물었다. "듣자하니 내게 할말이 있다고 하던데 무슨 말이라고 하더냐?"
 "제가 대신 전해 올리겠다고 말했으나 직접 아뢴다고만 하고 물러가지를 않나이다."
 공주는 한쪽에 서있는 한뫼도령을 힐끗 보고는 다시 말했다.
 "보아하니 우리를 해치러 오진 않은듯하니 경비대장에게 알리기 전에 무슨 말인지 들어보 자꾸나. 알리러 가는 아이를 도로 불러라." "몸소 만나시겠다니 이 어인 말씀이옵니까? 저런 무엄한 놈은 털을 뽑고 눈을 빼내어 다시는 못된 마음을 먹지 않도록 벌을 내려야 할  것이 옵니다." 시녀장은 아뢰고 나서 한뫼도령을 흘겨보았다. 공주가 듣고 안색이  변하며 꾸짖었 다.
 "나라의 법이 그러할지라도 용기잇는 자에게는 양보가 있어야  한다. 목숨을 각오하고 이 런데를 찾아오는 용기가 아무에게나 있을수 없는 일이다. 내가  몸소 만날 테니까 너희들은 물러가라." 공주의 엄명인데 어찌 거역하겠는가. 시녀장은 저만큼 날아 내려가는  시녀를 도 로 불렀다. "얘야, 공주님의 명이시니 돌아오너라."
 하고는, 한뫼도령 앞으로 걸어와 퉁명스럽게 일렀다.
 "이번 한번만 공주님이 그대를 만나시겠다고 하오. 귀하신 몸이시니 말을 삼가서 하고 즉 시 물러나도록 하오." 한뫼도령은 의젓하게 고개를 끄덕이었다.
 만나뵙게 해주시는 것만도 황송한데  다른 말씀을 듣게 할  리가 있습니까? 염려 마십시 오." 하고는, 공주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공손히 절했다. 공주가 답례하고 부드럽게 물었다.
 "궁녀들만 노는 곳에 어인 일로 공자는 찾아 오셨소?" "공주계서  죽음 대신 만나뵙게 해 주신 은혜 백골 난망이옵니다." 한뫼도령은 다시 한ㄴ번 예를 차리고 나서 양해를 구했다.
 "여쭙기 황공하오나 시녀들을 잠시 멀리 해주소서." "무슨 말이 그리 은밀하오?"
 공주는 잠시 망설였으나 이미 만나보기로 한 바에 굳이 여럿이 있는 앞에서 말하라고 하 기는 싫었다. 이 젊은 장끼가 수상하게 굴면 즉시 군졸들을 불러 물리칠수가 있기 때문이다.
 "얘들아, 너희들은 잠시 물러가 있거라."
 공주가 명령하자 시녀들은 하는수없이 멀찌감치 물러갔다.
 그러자 한뫼도령이 모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제가 여쭙고자 하는 말씀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날씨도  화창하고 해서 여기까지 놀러 나왔다가 공주님의 자태를 한번  뵙고는 젊은 가슴이 설레이고  황홀한 나머지 그만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에 어리석은 백성이 공주님의 높은 지체를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저의 애틋한 말씀을 드리러 이렇게 감히 나섰나이다."
 "무...무슨 말을..." 뜻밖의 말에 공주는 몸둘 바를  몰라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렇듯 정면 에서 사랑의 고백을 들은 적이 이제까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상상이나 해보았던 가! 공주의 작은 가슴은 달달 떨리기까지 했다. 한뫼도령의 말이 계속되었다.
 "저는 비록 보잘것없는 신분의 몸이오나 공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도 비길수 없나이다. 공주님이 제 뜻을 받아주신 다고 하면 언제든지 공주님을 위해 이한 목숨 바치겠나 이다. 부디 저의 뜻을 받아주십시오."
 "갑작스럽게 이런 말을 듣고 어떯게 대답하라는 것이오? 백성의 홍인은  부모가 정해주는 것이며 공주의 혼인은 오직 대왕마마만이 결정하시는 것을 모르시오?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말고 어서 돌아가시오."
 한뫼도령은 실망하지 않고 거듭 여쭈었다.
 "물론 혼인의 절차는 대왕마마의 처분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공주님의 마음만 이라도 알려주십시오. 이렇게 애타게 사모하는  저의 마음을 헤아려 주겠노라고  한 말씀해 주십시오." 공주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며 모기 소리만하게 대답했다.
 "그런 말인들 이 자리에서 어떻게 대답하라고 하시오? 공자의 심정을  알았으니 다음날을 기약하고 오늘은 이만 돌아가도록 하오."
 한뫼도령은 하느수없이 작별을 고할수 밖에 도리가  없엇다. "그럼 공주님의 회답을 기다 리겠나이다. 저는  봉묏골 태수의 아들 한뫼라는 자이옵니다. 언제쯤으로 알고 기다려야 할지..." "내게 맡기고 어서 돌아가도록 하오."
 "높고 푸른 하늘을 믿듯이 공주님의 말씀을 믿고 기다리겠나이다.  부디 다시 뵐 날을 알 려 주십시오."
 하뫼도령은 공손히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그리고는 일이 어떻게 될가 하고 목을 움츠리고 있는 들머루에게 소리쳤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
두 마리의 장끼가 푸드득하며 하늘로 치솟아 저편 골짝기로  멀어져 갔다. 공주는 애틋한 눈길로 사라져가는 한뫼도령의 뒷모습을 바라조고 있었다.
 어느덧 저녁해가 서쪽 산너머로 숨고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한뫼도령은 그 뒤 모든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인 들머루를 데리고 언제나처럼 집을 떠나 언덕으로 날아 올라가도 쾌할하고 즐겁게 뛰 놀생각은 않고 나뭇가지나 잔디밭에 앉은채 멍하니 있을때가 많았다.
 두 눈은 항상 공주가 사는 대궐이 있는 저편 고개 똑으로 향해있었으며, 구름조각 하나만 지나가도 무슨 소식이 오지나 앟을까 해서 고개를 쳐들어 보곤했다.
 그러다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뿜었다. 들머루는 보기가 안타까와 옆으로 와서 말했다.
 "도련님, 이렇게 기다리신다고해서 소식이 빨리 오고 기다리지 않는다고 올 소식이 안 올 리도 없지 않습니까? 이러다가 병이라도  난다면 몸만 축날뿐이니 어서 꽃구경이나  하며 벌레도 잡아먹고 하십시다." 그러나 한뫼도령의 귀에는 소 귀에 경읽기 경이엇다.
 "얘야!" "네, 도련님." "저기에 솟아 있는 저 검은 점은  무엇이냐? 궁궐에서 공주님이  보 내는 심부름꾼이 아니냐?"
 들머루가 보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심부름꾼이 아니라 바위 틈에 솟아잇는 나뭇가지 인뎁쇼."
 "그러면 저기 먼하늘을 날아오르는 것은 무엇이냐? 저것은 분명리 까투리가  아니면 장끼 렷다?" "에이, 도련님두... 먼하늘이 아니라  바로 저  고개위를  날고있는뎁쇼. 까투리가 아 니옵고 까불기 잘하는 종달새이옵니다."
 한뫼도령은 다시 한 번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벌써 여러날이 지났는데 왜 아무런  기별이 없지? 분명히 소식이 있을  터인데, 왜 아무 새도 날아오르니 않느냐?"
 "아무렇게나 말한 아녀자의 말을 도련님은 너무 믿고  계십니다. 공주꼐서는 벌써 도련님 을 까맣게 잊고 지금쯤은 다른 신랑감과 즐겁게 얘기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서 공주의 생각 을 마음에서 지워 버리도록 하십시오." 들머루가 아뢰는 말에 한뫼도령은 화를 벌컥 냈다.
 "시끄럽다! 상놈이란 할 수없구나. 너희 상놈은 아침에 한 말을 저녁이면 까맣게 잊어버린 다마는 공주는 결코 그런 일이 없는 법이다. 공주의 말 한마디는 마위처럼 굳고 나뭇잎처럼 싱싱한 것이다. 아, 저기 저 이리로 기어오는 것은 무엇이냐?"
 들머루가 보고 기급을했다. "저건 삵괭이놈입니다. 이렇게 있지 말고 어서 몸을 피합시다.
 이러다가는  도련님 눈에서 저 무서운 늑대나 사냥개도 모두 공주가 보낸 사신으로 보이겠 습니다요." "괴로움과 기다림 속에서 이렇게 사느니보다 차라리 늑대나 사냥개에게  잡아먹 히어 세상을 떠나는 편이 좋겠다."
 얼빠진 소리를 하는 한뫼도령을 서둘러 재촉하여 들머루는 간신히 삵괭이의 공격을  피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뫼도령은 여전히 얼이 빠져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간신히 문안 을 드리고는 밤새도록 꼼짝도 하지 않았다.
 걱정이된 어머니가 한밤중에 한뫼도령이 잠자리를 몰래 찾아왔다. 그러자 아들은 별이 총 총한 하늘을 멀거니 본채 눈을 또랑 또랑 뜨고 있지 않은가.
 "한뫼야, 밤이 벌써 깊었는데 왜 자지  않는거냐?" 어머니가 근심스럽게 묻자 한뫼도령은 공손히 아뢰었다. "어머님, 근심하지 마옵소서. 아무일도 이닙니다."
 "얘야, 이 어미가 보건ㄷ재  분명히 근심이 있는 것  같구나. 어디 무슨일인지 얘기해  보 렴."
 어머님, 누구에게나 잠 못이루는 밤이 있는 법입니다. 곧 잘테니 어머님은 아무 걱정 마시고 가서 주무십시오."
 어머니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엇다.
 "옛말에도 어미의 눈길은 불빛보다도  빠르고, 그마음은 천리  떨어진 곳에서도 닿는다고 했느니라. 보아하니 너는 며칠 동안이나 잠을 자지 않고 근심하고 있는 것이 분명히 가슴속 에 있느니라. 어서 무슨일인지 이 어미엑게 들려다오."
 "별것이 아니니 너머님은 돌아가 주무십시오, 소자도 곧 자겠습니다."
 한뫼도령은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말씀드려 답답한 마음을 풀고 싶었으나 어머니마저  괴 로워할까 봐 임을 꼭 다물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야원얼굴을 보고 가슴이 아파 탄식을 하고는 힘없이 덜아섰다.
 이튿날 아침, 한뫼도령은 일어나자 마자 아버지의 부름을 받았다.
 면두에 흰빛이 갑돌 만큼 늙은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상한 어조로 물었다.
 "한뫼야, 요사이 네게 무슨 근심이 있는 것 같다고 네 어머니가 말씀하시니 사실이냐?"
 "약간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이 있기는 하오나 그렇게 대단하지 는 않사옵니다."
 아들이 조심스럽게 아뢰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그건 그렇다 하고 오늘 너를 부른 것은 얘기할 일이 있어서니라."
 아버지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마을 건너편  골짜기의 태수댁을 너도 알고 있겠지?" "네, 아버님."
 "그댁에 혼기가 찬 아리따운 낭자가 있느니라. 우리와 집안도 엇비슷하고 또 친하게 지내 기도 하던차에 너희들의 혼인얘기가 나와서 마로 어제 성사시키기로 합의를 보았느니라. 곧 혼레식을 올릴수 있게 준비를 서두르겠으니 너도 그리 알고 있거라."
 "혼인을 약속하셨다는 말씀입니까?"
 한뫼도령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아찔했다.
 아들의 마음을 아지 못하는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댁과는 대대로 우의가 깊고, 그 집 낭자는 어렸을 때부터 너도 잘알고 있는 처자가 아니냐? 용모뿐 아니라 재주도 뛰났느니라. 들리느 소문으로는  벌써부터 너를 으근히 사모해 왔다는 구나. 우리짐에 그런 며느리가 들어오게 되다니 정말 복이 저절로 굴러 들어온 셈이 다." 한뫼도령이 노란 나머지 급히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님!"
 "왜그러느냐?" "그 혼인은 취소해 주십시오." "무엇이!"
 아버지는 놀란 나머지 압을 딱 벌렸다. 거러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다그쳤다.
 "취소하다니? 너도 전부터 그 낭자를 칭찬해오지 않았드냐? 그 낭자보다 더 나은  신부감 이 어디 있다고 이번 혼사를 취소하라는 것이냐?"
 "아버님, 그낭자가 못생겼다거나 나쁘다는 뜻은  절대로 아닙니다. 혼인을 할생각이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애써 변명하자 아버지는 음성을 낮추어 달랬다.
 "너보다 어리고 못난 장기들도 버젓이 혼인을 하고 자손들을 낳으며 잘살고 잇다. 그런데 도 아직 혼인할 생각이 없다니 무슨 말이냐?"
 "장끼마다 겉모습이 다르듯이 속마음도 다 다르지 않습니까? 저는 아직 혼인할 생각이 없 으니 부디 취소해 주십시오." "그낭자와 혼인할 생각이 없다면 다른 누구에게 마음을 준 상 대라도 있다는 말이냐?" "..."
 한뫼도령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공주와 약속이라도 했다면 서슴치 않고 아버님께 아뢰겠지만 혼자 사모하고 있는 일을 여기서 밝힌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이라고 변명하랴. 그러자 아버지가 다시 추궁을  했다. "어서 말해 보아라. 어 디 다른데 약속했느냐?" "..." 아들이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자 아버지의 음성은 노기까지 띠 었다. "왜 말을 못하느냐? 너는 아비의 말을 이유도 없이 거역하겠다는것이냐?"
 "그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거역하겠다는 것이냐? 적어도 두 골짜기의 태수 가 만나서 여러모로 의논을 거듭한  결과 정한 혼사다. 분명한 이유가  있기 전에는 절대로 취소할 수가 없다. 공연히 말을 꺼냈다가는 우리 마을과 저쪽   마을 사이에 싸움이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또한 이유도 없이 혼인을 취소한 우리가 사움에 지게 되고, 집안가지 망할 것도 자명한 일이다. 그래도 이번 혼사를 취소하라고 말하겠느냐?"
 듣고보니 정말 큰일이엇다. 한뫼도령은 자기도 모르게 등에 식은 땀이 흘러 우선 이 자리 를 모면하려고 했다. "아버님, 죄송하기 이를데 없습니담나 얼마동안의 시간을 주십시오. 갑 자기 듣고 보니 소자는 얼떨떨 하기만 하옵니다."
 그러자 아버지의 안색이 풀어졌다.
 "그렇게 하렴. 혼인을 하기로 한다면야 언제  하겠다는 대답은 조금 늦은들 괜찮다.  그만 나가 보아라." 아버지의 앞을 물러나온 한뫼도령은 이일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만만한 하인 녀석을 붙들고 하소연 할수밖에 없었다.
 "들머루야, 일이 대단히 급하고 까다롭게 되었구나. 어떻게 하면 수습이 되겠느냐?"
 들머루는 눈을 껌뻑껌뻑하다가 대답했다. "지금이야  말로 마음을 돌릴 좋은  기회입니다.
 공연히  공주님만 생각하다간 큰일날 것입니다."
 그러나 한뫼도령이 이 말을 들을리 만무했다. "공주님을 향한  내 마음을 없애느니  차라 리 세상을 하직하겠다. 너는  다시는 그런 소리 말아라."
 도련님, 제발 생각을 고치심시오. 이번 혼사를 취소하면 우리 마을분만 아니라 온  집안이 큰 욕을 당할것입니다. 부모님에게 화를 끼치는 일이 두렵지 않습니까?"
 한뫼도령은 한숨을 길게 내쉬고 자신없이 입을 열었다.
 "공주님과 혼인을 하게되면 그쪽과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지 않겠느냐?"
 "그렇지만 공주민의 마음이 도련님에게 향하지 않으니 어떻게 합니까?"
 "..."
 한뫼도령은 대꾸할 말이 없어 바위 옆에 힘없이 웅크리고 앉아 공주가 있는 대궐쪽을 멍 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산색들이 소란스럽게 웃어댔다. 벌써 정오가 되었다는 신호다.
 "오늘도 소식이 없는가 보구나. 아, 이애타는 마음을 공주님이 알아 주셨으면..."
 한뫼도령이 기운없이 중얼거릴 때 듦루가 갑자기 호들갑스럽게 떠들어 댔다.
 "앗, 도련님! 저것이 무엇입니까?" "무얼 말이냐?"
 "저기 검은 그림자가 보이지 않습니까?" "무엇이 보인단 말이냐? 상놈의 눈에는 허깨비만 보이는 모양이구나." "분명히 장끼와  까투리가 날아오고 있습니다.  도련님, 저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제서야 한뫼도령도 이쪽으로 날아오는 물체를 똑똑히 볼수 있었다.
 "정말 장끼와 까투리가 날아오는구나! 저 뚜렷이 빛나는 깃은 궁궐에서 보내는 사신과 시 녀의 표시이다. 분명히 공주님이 보내신 사신이로다." 한뫼도령이 뛸뜻이 기뻐할 때, 사신으 로 날아온 장끼와 까투리는 한뫼도령과 들머루가 주춤거리고 있는 상공을 한 바퀴 쓰윽 돌 더니 바위 옆으로 가볍게 내려 앉았다.
 그러더니 장끼가 엄숙한 어조로 물었다. "공자가 이곳 태수의 아드님이십니까?"
 한뫼도령이 기쁜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보아하니 궁궐에서  나오신 사신들이시군 요. 먼길에 수고가 많습니다. 그런데 무슨이유로 저를 찾는지요?"
 "공주마마의 심부름으로 왔습니다. 공주마마께서 보내신 이글월을 받으십시오."
 까투리가 깃 속에 간직해온 가랑잎 편지를 내놓았다.
 "아, 공주님의 글월이라구요!" 한뫼도령은 공주가 직접 나타나기라도 한것처럼  떨리는 목 소리로 외치고 편지를 펼쳐 보았다.
 한뫼공자님 보옵소서. 공자님을 한 번 뵈옵고 소녀는 평생 공자님을 의지하여 살아가려고 생각했습이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장벽이 있을 줄이야 그누가  알았겠습니까? 어마마마를 통해서 제심정을 아바마마께 아뢴즉, 아바마마께서는 벌써 부마(임금의 사위)될 장끼를 정해 놓으셨다고 하시며, 소녀의 마음을  사로잡아 나라의 질서를 어지럽혀  놓은 공자님을 즉시 포박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다는 것입니다. 한뫼공자님!
 우리들은 이세상에서 인연이 없는듯하니 험악한 나졸들에게 욕을 보시기 전에 멀리  떠나 서 다른 나라를 찾아가 복되게 지내 십시오.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쓸수가 없습니다.
 공주 올림.
 편지를 읽은 한뫼도령은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았다.
 절망감! 안타까움!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이 얼굴에 스쳐 지나갔다.
 '안돼! 공주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된이상 나는 도망칠수가 없어!'  한뫼동령은 곰곰 히 생각하다가 이욱고 굳은 결심의 빛이 눈동자에 나타났다. "들머루야!"
 "예, 도련님." "나는 이길로 이분 사신을  따라 공주님이 계시는 궁궐로 들어가겠다. 그러 니 너 혼자 들어가서 아버님과 어머님에게 공주님과의 사연과 이 편지 받아보았다는 것을ㄹ 내대신 낱낱이 여쭈어라. 이번에 궁궐로  들어가면 살아 나올 길이 없을  것ㅇ 같으니 부디 나를 찾으시지 말라고 말씀드려라." 이 비장한 말에 들머루는 펄쩍 뛰었다.
 "도련니ㅁ,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발 사리를 냉정히 판단하십시오. 살아 돌아올 길이 없는줄 알면서 왜 대궐로 들어가시겠다는 것입니까?" 한뫼도령의 태도는 오히려 차분했다.
 "공주 없는 세상 살아서 무엇하리. 일찍 죽는 것이 더 마음 편하다. 부모님께 불효자식 되 고 이웃마을 태슈의 따님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공주님이 계신 궁궐에서 죽는 것이  차라리 내 소원이다. 내가 죽음을 당하게 되면 크게 소문이 날것이고 시체또한 들판에 버려질 것이 다. 들머루야, 네가 나를 주인으로 여기고 있거든 시체나마  찬아 고이 묻어다오. 그리고 나 대신 부모님을 잘 모셔다오." 들머루는 정신이 아득하여 급히 외쳤다.
 "도련님, 어쩌자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가신다고 해도 부모님계 인사나 드리고 가십시 오."
 "헤어지는 괴로움은 시간을 끌면 끌수록 길어지는 법이다. 나는 이대로 떠날테니 네가 대 신 인사를 드려다오."
 "도련님, 그렇다면 소인도 따라 가겠습니다. 공주님없는 세상 도련님이 살수  없듯이 도련 님안계신 곳에서 소인이 살아 무엇하겠습니까?"
 들머루는 몸부림치면서 엉엉 소리내어 울어댔다.
 한뫼도령은 측은한 시선으로 하인 녀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사신 쪽으로 돌렸다.
 "편지에는 나더러 이곳을 또나라고 적혀 있지만 나는 이길로 그대들을 따라서  궁궐로 들 어가겠습니다. 나졸들에게 잡히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공주님을 남나 뵙고 싶으니 그대들은 먼저 들어가서 말씀좀 전해 주쇼 시오. 전날 공주님을 뵈옵던 잔디밭에 앉아 기다리겠소이 다."
 사신으로 온 까투리가 공손히 대답했다.
 "우리들은 공주마마의 심부름꾼이니 공자의 말씀을 전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두 사신은 즉시 작별을 고하고 날아 올라 사라졌다. 한뫼도령과 들모루도 하늘로 훌쩍 치 솟아 올라갔다.
 고개를 넘고 골짜기를 건너 그들은 전날 공주가 노닐던 잔디밭위에 내려 앉았다.
 주위의 광경은 전날과 다를바가 없는데 한뫼도령의 마음은 견딜수 없을 정도로  허전하고 쓸쓸했다.
 공주를 기다리고 있기는 하지만 오게 되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공주가 오기전 에 나졸들이 오면 꼼짝없이 묶여 가서 귀신도 모르게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다.
 공주가 편지에서 말한 대로 집으로 돌아가서 부모님께 하직을 고하고 다른 나라를 찾아가 는 것이 옳은지도 모른다는 뉘우침이 간혹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한뫼도령은 이런 마음을 누르고 공주가 오기를 묵묵히 기다렸다.
 이때, 궁궐쪽에서 한 날짐승이 이쪽으로 빠르게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삽시간에 한뫼도령 이 있는 곳까지 날아온 까투리는 뒹굴 듯이 땅 위로 내려앉았다.
 "앗, 공주님!"
 한뫼도령은 급히 공주의 앞으로 달려갔다.
 공주가 말하였다.
 "공자님 이렇게 또 다시 뵙게 되어서 저는 죽어도 한은 없사오나 어쩌자고 여기까지 오셨 습니까?"
 말을 마치자 공주의 섬세하고 커다란 두 눈에서는 놀라움과 반가움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 러내렸다.
 한뫼도령은 이 모습에 감격하여 말하였다.
 "이미 저의 한 목숨은 공주님께 바쳤습니다. 저의 마음속에 언젠들 공주님을 잊을수가 있 으며 어디에선들 찾지 않을 떄가  있겠습니까? 어리석은 저로 인해서 부왕마마의  노여움을 사셨다니 이토록 쿤 죄를 어지해야 합니까?"
 이에 공주가 말하였다.
 "전번에 여기에서 뵌 뒤에 밤낮으로 생각해 왔사옵니다. 그러나 전생에 대체 무슨 사연이 있어서 서로 해로할수 없는지 도저히 알수가 없사옵니다."
 공주는 잠시 한뫼도령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는 다시 말하였다.
 "이렇게 뵙게 되어 몹시 기쁘오나 나졸들이 몰려오기 전에 속히 이 자리를 떠나셔요."
 종구의 염려에 한뫼도령은 차분히 말하였다.
 "수백의 나졸들이 온다해도 조는 조금도 무섭지 않으며 수천의 화살이 제개  날아와도 저 는 이 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주님의 신변이 도리어 걱정되오니 이 자리를 뜨도록 하십시오."
 공주는 한뫼도령의 진지한 말에 대답하였다.
 "저도 공자님과 한께 여기에 있껬사옵니다. 여기에 제가  있으면 공자님ㅇ이 외롭지 안흥 실 거예요. 또 제가 이곳에 있으면 나졸들이 온다해도  공자님을 거칠게 대하지는 못할것이 니까요."
 한뫼도령은 공주를 책하려는 듯 말하였다.
 "여기서 계속계시는 것은 제게 대단히 고마운 일이지만 만일에 부왕마마께서 더  큰 노여 움을 사게 된다면 드때는 공주님의 신변에  화가 미칠텐데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 까?"
 공주는 잠시 고개를 떨구더니 나직히 말하였다.
 "공자님께오서 저의 몸을 위해서 목숨가지 버리시려는데 어찌 전들 혼자 살아서  욕된 목 숨을 보존하려 하시겠습니까? 정녕코 저도 이 자리를 떠나지 않겠사옵니다."
 한뫼도령과 공주님은 가장 긴받한 환경속에서  가장 기쁘고 만족스러운 마음에  도취하였다. 그들은 서로 눈물을 쏟으면서 굳은 사랑을 몇번이고 맹세 하였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소란스러워지며 수많은 날짐승들이 궁궐쪽에서 치달아 올라오고 있엇 다.
 조금ㄴ 참세떼처럼 검고 작은 날짐승들이 쏜살같이 공주와 한뫼도령이 있는 잔다밭을  향 해서 날아오고 있었다.
 점점 가까이 올수록 날짐승들의 모습은 커가고 뚜렷해졌다. 그것은 궁궐을 지키는 나졸 의 무리였고 한뫼도령을 잡으러 온 것임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거기 그대로 있거라!"
 제일 앞서 날아오던 나졸 한놈이 땅에내려서기도 전에 한뫼도령을 향해 소리쳤다.
 "..."
 한뫼도령은 이미 모든일을 짐작하고 있었으므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조금 전에 큰소리쳤던 나졸들이 한뫼도령에게 물었다.
 "네가 봉묏골에 사는 태수의 아들이 분명하렷다!"
 한뫼도령은 아무 동요도 없이 대답하였다.
 "그렇소! 그런데 당신들은 대체 누구요?"
 친위부 대장은 얼굴이 일그러 지며 말하였다.
 "우리는 궁궐을 지키는 친위부대다. 대왕마마의 어명을 받들고 너를 체포하러 왔다."
 말을 듣고 난 한뫼도령은 친위부대장에게 물엇다.
 "대체 대왕마마가 무슨 까달긍로 나를 체포하라고 명령하셨소? 나는 아무런  죄도 없소이 다."
 친위부 대장은 큰 소리로 말하길,
 "이 괘씸한 놈! 대왕마마께서 아무런  이유없이 너를 잡으라고 하셨겠느냐!  여봐라, 어서 이 죄인을 묶도록 하라!"
 우렁찬 친위부 대장의 호통이 떨어지자  나졸들은 우루루 달려가서 한뫼도령에게  밧줄을 들이대었다.
 "이 무엄한 놈들!"
 갑자기 공주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네이!"
 하고, 나졸들은 한번더 호총쳤다.
 "이놈들, 네 놈들눈에는 감히 공주가 보이질 않느냐? 감히 공주의 앞에서 그런 무엄한 짓 을 하고도 목숨이 성할줄 아느냐?"
 친위부 대장은 공주의 태도에 황공한 듯 머리를 땅에 조아리기는 했으나, 오히려 그 얼굴 에는 공주를 비웃는 기색이 감돌고 있었다.
 공주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책하듯 말하였다.
 "이분으로 말하자면 자기 처소에서 노희들에게 들킨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곳까지 찾아오 신 분이다. 옛부터 찾아오신 손님네게는 성대한 대접을 베푸는 것이 예의이거늘, 정중리  모 시지는 못할지언정 이토록 무례하게 포박을 하는 것이 말이나 되는 행동들이냐?"
 이에 친위부 대장이 말하였다.
 "하오나 공주마마, 하늘에 두 해가  없듯이 이나라에 두분대왕마마가 없사옵니다.  어면을 받들고 죄인을 잡는데 포박을 하지 않는 일이 없사옵니다.  공주맘 말씀이 간절하기는 하나 어명을 어길수는 없는 아닙니까?"
 그러자 공주는 크게 노해 말하였다.
 "그렇게는 못한다. 이도련님을 묶어가는 놈응ㄴ 한 놈도 영서없이 큰 벌을 내리리라."
 말을 듣고 난 친위부대장은 은근히 위협하는 말투로 말하며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공주마마! 부디 노여움을 진정하시옵소서. 어명을 거역할수 없는 일아닙니까?"
 말을 마치고 나졸들을 돌아보며 명려하였다.
 "무엇을 꾸물대느냐? 어서 죄수를 무꾸도록 하라!"
 이에 나졸들은 대답했다.
 "네이!"
 부대장의 날카로운 호령이 떨어지자 남은 나졸들은  공주에게서 들은 꾸중의 분풀이도 할겸 아까보다도 더욱 우악스럽게 달려들엇다.
 그리고는 한뫼도령의 날개와 다리를 곰짝 못하도록 옭아 놓았다.
이에 한뫼도령은 크게 노하여 부르짖었다.
 "이놈들! 내기어코 네놈들으 단 한놈도 남기지 않고 죽여버릴 것이다. 두고 보아라. 이 괘 씸한 놈들 같으니."
 친위부 대장과 나졸들은 더 이상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있엇다.
 공주는 이 모습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였다.
 "안된다. 네놈들이 이 공자님을 이토록 참혹하게 끌어가지는 못할 것이리라."
 공주의 말을 듣고 한뫼도령ㅇ느 타이르듯이 말하엿다.
 "공주님은 고정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끌려가는 것이나 편안히  가는 것이나 무엇이 다 를수 있겠습니까? 이제 인연이 제게 남아  있으면 살아 나와 공주님을 평생 모시ㅣ게  될지 그 누가 알겠습니까? 부디 눔물을 거두시고 저를 보내 주십시오."
 그리고는 직접 앞장을 서서 한뫼도령은 걸어 나갔다. 이렇게  되자 공주는 위업도 기운도 다 잃고 친위부 대장에게 울면서 말하였다.
 "여봐라! 제발 모질게 모시고 가지는 말아다오!"
 부대장ㅇ의 태도는 공손하기는 했지만 공주의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앟고 나졸들에게  말 하였다.
 "어서 죄수를 끌고 내려가자. 대왕마마께서 봅시 기다리시겠구나."
 하고는, 모졸들을 이끌고 위세도 당당히 궁궐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한뫼도령이 옥에 갇히게 되자, 그날부터 공주는 침식을 전폐하고 슬퍼하였다.
 이에 시녀들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차려올리고, 여러 가지로  위로를 하였으나 공주는 슬프고 괴로운 펴정으로 밤낮을 지냈다.
 그러므로 공주의 몸은 나날이 수척해 갔다.
 왕후가 공주의 괴로움을 보다 못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가야. 너의 괴로움은 곧 대왕마마의 괴로움이고 나의 괴로움이란다. 이제  그 괴로움을 거두고 다시 예전처럼 명랑하고 밝은 모습으로 돌아가도록 노력해라."
 공주는 완후의 말을 듣고 고개를 숙이며 아뢰었다.
 "어마마마, 죄스러움에 몸둘바를 알지 못하겠나이다.  하오나 한번 마음먹은 저의  마음은 스스로도 어찌할 도리가 없사옵니다. 태수의  아들 한뫼도령이 석방되어 소녀의  배필이 될 대까지는 소녀의 마음과 몸은 회복될 것 같지 않사옵니다."
 공주의 처절한 말을 듣고 왕후는 나직하게 말햇다.
 "공주야, 네 심정이야 어찌 내가 모르겠느냐? 게다가 아바마마께서도  짐작하고 계시단다.
 허나 나라의 법에는 상감도 복종해야될 엄격한 것이 있으니 법앞에서는 너의 괴로움도 참는 수밖에 달리 구할 길이 없지 않겠느냐?"
 왕후는 잠시 얘기를 멈추고 공주의 눈치를 살피는 듯 하더니 계속해서 말하였다.
 "이제 그 도령은 잊고 아바마마가 정하신 대보 장군의 아드님과 혼인하게 되면 그동안 너 의 괴로운은 한낱 지나간 것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왕후의 말을 듣고 공주는 확고하게 말하였다.
 "만일 이 다음에 설사 태수의 아드님을 제손으로 내쫓을 만큼 싫어지는 한이 있다 하여도 지금은 그 도령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아갈수 없나이다. 이제 더  이상 다른 말씀은 말아 주 십시오."
 왕후는 공주의 단호한 말을 듣고 답답하고 긴 한숨이 새어 나왓다.
 아들이라고는 없이 귀하게 애지중이 키워온 딸마저 잃어버리게 되지난 않을까 심히  걱정 이 되엇다.
 그날 밤 침전에 든 대왕에게 왕후는 절실한 음성으로 조영히 말하였다.
 "문명히 공주가 큰 병이 들었사옵니다.  자칫 하다가는 그애까지 잃게  될지 모르니 이 앙실의 대가 끊기게 될 염려가  없지 않사옵니다. 그 애를 구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태수의 아들을 내놓으라 어명을 내리도록 하십시오.":
 대왕은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물론 공주의 병든 몸을 보기 민망해서 눈시울이 더워지는 것 같은 표정도 있었으나,  태수의 아들 한뫼도령에 대한 더욱  커지는 증오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엄숙한 복소리로 왕은 말하였다.
 "공주를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내가  더하오. 하나 태수의 아들을  부마로 삼을 수는 도저히 없습니다. 그 첫째의 이유는 이미 내입으로 정해 놓은  호처를 두버 반복할 수는 없 는 일이요, 또 그뚤재 이유는  미천한 태수의 아들을 궁중으로 들여놓을  도리가 전혀 없기 때문이요. 이제 공주늬 얘기는 더 이상 말하지 않도록 하오."
 왕후는 급하게 물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실 예정이시옵니까?"
 왕은 가만히 눈을 감으며 천천히 말하였다.
 "태수의 아들을 옥에서  내어 공주를 농락한 죄를 엄하게  다스려야 하오. 몸의 털을 하 나도 남기지 않고 뽑아야 하고 다리를 묶어 죽이는 수밖에 다른 도리는 없소."
 왕후는 다급해져서 말하였다.
 "그 말씀은 지당하오나 그렇게 하시면 공주는 필시 자결을 하고 말것입니다. 바위에 머리 를 부딪히고 목숨을 가볍게 버린뒤에 태수의 아들의 영혼 곁으로 갈 것이 분명하옵니다. 대 왕마맘, 무디 공주엣게 그런 참혹한 상황이 닥치지 앟도록 너그러움을 베푸시옵소서.:"
 말을 끝내고 왕후는 엎드리어 체통도 잊고 흐느겨 울었다.
 대왕은 왕후의 동정을 한참이나 살펴보고 있었다. 왕은 마음이 복잡해져서 심란하였다. 그 것은 왕후의 말대로 태수의 아들을 죽이는 날이면 분명 공주가 자결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기 때문이다.
 한참동안 눈을 갑고 생각에 잠긴 끝에 왕은 희한한 묘안을 생각하고 왕후에게 말하였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왕후는 의외의 말에 선뜻 물어보았다.
 "무슨 좋은 방도가 있습니가?"
 왕은 나직히 말하였다.
 "태수의 아들과 대보의 아들을 힘과 지혜겨루기를 하게  한단말이오. 이러한 싸움에서 어 쩔수 없ㅇ치 서로 목숨을 내걸고 싸우게 되는 관계로 태수의 아들은 대보의 아들에게 틀림 없이 죽을 것이오. 그럼 공주도 마음을 돌릴 수밖에 없을 것이 아니오?"
 왕후 는 의아해 하며 다시 물어 보았다.
 "그러다가 만ㅇ리 태수의 아들이 이기게 된다면 어찌하시렵니까?"
 왕은 왕후의 말에 미소하며 덤더히 말하였다.
 "대보의 아들을 이긴다고? 그런 일을 없을 거요. 대보의 아들은 이 나라에서 제일가는 장 사요. 과히 염려 마시오"
 그 말에 왕후는 마음이 크게 놓여 말하였다.
 "필시 묘한 방법ㅂ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럼 언제쯤 그 일을 시행 하시게 됩니까?"
 왕은 잠시 생각하더니 유유히 말하였다.
 "오래 끌수록 왕실의 체면은 사나와지고 민심 또한 불안할  뿐 이오. 그러니 당장 내일이 라도 즉시 겨루기를 연다고 세상에 알리는 것이 좋을줄로 아오."
 과연 이튿날 궁중에서 대보의 아들 운무 장군과 태수의 아들 한뫼도령이 힘과 지혜를 겨 루게 된다고 나라안에 포고가 내렸다.
 별로 자주 못보던 일이라 큰 구경거리가  났다고 백성들은 모두들 반가운 얼굴들을  하였 다.
 한편 대보의 아들 운무장군은 그렇지 않아도 한뫼도령이 괘심하여 어떻게 하든지  가만히 두지 않으려고 벼르던 대였다. 운무 장군은 싸움이 붙게 되면 깃을 뽑는다거나 잔등을 쪼아 아픔을 준다거나 할것도 없이 단번에 승무를 내어 죽이든지 두 눈을 파내어 평생 고칠수 없 는 병신을 만들어 주리라 결심했다.
 각지에서 벌어진 수많은 무술 겨루기에서 단한번도 져 본일이 없는 운무 장군은 하잘것없 는 일개 태수늬 아들쯤은 상대하기 우스운 존재라고 막연히 짐작하였다.
 이때, 공주와 한뫼도령의 경우는 운무 장군의 형편과는 너무도 큰 차이가 났다.
 힘센 운무 장군을 당해낼 힘이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싸움에 나가는 일이 한뫼도 령으로 하여금 죽음에 이르게 하는 노릇임을 공주는 뻔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죽을 마에야 그렇게 해서라도 영광스럽게 죽게 하느냐 편을 고를수밖에 없 는 형편이라고 생각하였다.
 한뫼도령도 마찬가지 생각이엇다. 운무 장군이라 하면 이나라에 으뜸가는 장사요, 그의 힘 을 당할 자는 하나도 없음을 진작부터 알고는 있었다. 그러니 한뫼도령은 도저히 운무 장군 을 당할 힘이 없었다.
 다만 이길 길이 있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어떤 꾀를 쓰거나 하늘이 내려주시는 기적이 일 어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한뫼도령은 싸울 날이 올대까지 운무 장군을 물리칠 꾀만을  생각했다. 허나 묘안은 떠오 르지 않아 단지 아까운 시간만을 공연히 소비하고 말았다.
 드디어 겨루기로 한 날이 왔다.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고 늦은 봄의 날씨에 바람조차 없었다.
 궁궐 뒤, 전날에 한뫼도령과 공주가 처음 만났던 잔디밭이 싸움터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 둘레에 둥그렇게 전국에서 모인 구경꾼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잔디 한 구석에 대왕과 왕후 그옆에는 공주가 불안스럽게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좌우로 대신, 대작, 원로들이 빙 둘러 서잇었으며 또 그옆으로는 직위의 차례대 로 수많은 고관들이 늘어서 있었다.
 대왕의 앞에는 오늘의 주인공인 운무 장관과 한뫼도령이 나란히 자리잡고 앉아 있었다.
 운무 장군은 발톱과 주둥이를 날카롭게 갈아 놓고 목덜미와 등어리에 대보 장군의 아들이 라는 표식이 늠름한 은행잎 관으로 얹혀 있었다.
 그러나 어제 저녁, 비로소 풀려난 한죄도령은 옥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여 얼굴은 창백하 고 핏기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단지 등어리와 목에 공주가 밤새워 짠 청올치 갑옷이 두둠히 입혀져 있을 뿐 신분을 펴시 하는 관조차 얹혀져 있지 않았다.
 운무 장군의 늠름한 체구에 비해 너무도 초라하고 빈약한 한뫼도령의 모습이었다.
 이윽고 시간이 되자 행사를 맡은 전례대신이 육중한 걸음으로 걸어나와 왕과  관랍자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오늘의 싸움 진행 규정ㅇ르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우선 제일 먼저 신호가 나면 두 젊은이는 양편에서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저 산꼭 대기의 높이에 오를 때쯤 또 다시 신호가 보이게 되면  서로 힘을 겨루도록 하시오. 어떠한 방도로 어떻게 싸우든지 상관없습니다. 단 싸움은 중단되거나 쉬는  일이 없으며 승패가 날 때까지 계속 됩니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 힘에 겨워서 항복하게 되거나 해가 저물어서 싸움 이 불가능하게 되거나 또는 대왕전하의 특별한 분부가 계실떄에 한해서는 싸움이 중지 되거 나 끝맺게 됩니다."
 전례대신은 군중에게 설명을 끝내고 나서 두 용사에게 말하였다.
 "지금 말한 것ㅇ느 신성하며 엄숙한 규칙이다. 두 용사는  이 규정을 충분히 알도록 하 고 절대 복종을 해야한다."
 운뮤 장군이 대답했다."네이!"
 씩씩한 운무 장군의 대답에 이어 한뫼도령은 가볍게 대답하였다.
 "알겟습니다."
 전례대신의 지시로 두 용사는 대왕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잔디 밭 양편으로 가서 자리잡고 있다가 깃대를 높이 올려서 신호를 하자 둘이 똑같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갔다.
 두 용사는 날개를 퍼덕이며 올라가 산꼭대기 높이쯤에 이르자 전례대신은 또다시  신호를 보냈다.
 이제 어느 한쪽이고 죽어야 끝나게 죌 숨막힌 처절한 싸움이 시작될 순간이다.
 드디어 두 용사는 잔디밭 한 가운데에서 서로 마주쳤다.
 서로 몇번 쪼고는 물러서고, 또 쪼인 뒤에 달려들고는 하다가 마침내 운무 장군이 맹렬 한 기세로 한뫼도령ㅇ르 향해 달려 들었다.
 한뫼도령은 급히 몸을 피하기는 했지만 워낙  빨리 달려드는 운무 장군의 주둥이를  피할 겨를이 없었다.
 하마터면 목줄을 물릴 뻔 하였으나 겨우 몸을 피하고 나서 보니 목털이 수없이 뜯겨 있었다.
 한뫼도령은 분함을 참지 못하고 맹렬히 달려들었으나 겨우 그의 날개를 한두 개를 뽑았을 뿐, 운무 장군도 조금도 끄덕하지 않았다.
 운무 장군은 또자시 한뫼도령ㅇ을 심하게 공격하였다.
 이번에는 한뫼도령의 머리가 억세게 물어뜯겨 대뜸 붉은 핏줄이 하늘로 치솟았다.
 기어이 횐뫼도령의 목숨은 불과 몇분을 더 견딜수 었을지 의문이었다.
 하뫼도령의 머리에서 피까지 심하게 흐르는 것을 보자 공주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외 쳤다.
 "아바마마! 아바마마!"
 왕은 공주닁 외치는 소리에 놀라서 말하였다.
 "무슨일이냐!"
 공주는 더 이상 지체하지 못하고 결국은 말하고 말았다.
 "제발 싸움은 중지시켜 주십시오. 이제 무슨 말씀이든지 듣자올 터이니 어서 속히 영ㅇ르 내리시어 싸움을 중지시키시옵소서."
 대왕은 매정하게 말하였다.
 "보기가 아무리 딱하다 하더라도 이런 싸움은 경솔하게  중지시킬수 없다. 보기 괴롭거든 궁궐로 들어가 있거라."
 대왕의 냉혹한 거절에 공주는 울며 말하였다.
 "아바마마! 제발..."
 공주는 말을 채 맺지도 못하고 소리내어 울면서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도저히 더 이상 은 쳐다볼수가 없었다.
 하늘에서는 두 용사가 마지막 힘을 쓰며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다.
 서쪽으로 달아나던 한뫼도령이 별안간 방향을 마꾸어서 남쪽으로 몸을 급히 꺾었다.
 한뫼도령의 뒤를 바짝 쫓던 운무 장군은 몸을 남쪽으로 돌리게 되는 바람에 잠시 몸의 균 형을 잃었다. 게다가 정면에서 강하게 비쳐오는 햇빛떄문에 눈이 부시어 앞 뒤 좌우를 분간 할 수가 전혀 없었다.
 그 순간 운무 장군의 입에서는 숨막히는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몸을 돌린 한뫼도령의 주둥이가 운무 장군의 눈앞을 집게처럼 바짝 파고 들어간 채 꿈쩍 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으윽! 아, 아!"
 운무 장군은 아픔에 연거푸 비명을 질렀으나 이미 파고 들어간 한뫼도령의 주둥이는 더욱 억세게 힘을 더해갈 뿐이었다.
 드디어 운무 장군의 두 눈은 뒤집히기 시작했고 정신은 점점 희미해져 어떻게 해도 도저 히 회복할 수가 없었다.
 기운이 거의 없게 되자 몸이 축 늘어지기 시작했고 날개를 떨어뜨린 채 땅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한뫼도령은 운무 장군이 가라앉는 대로 서서히 따라 내렸다.
 그러나 조금도 주둥이를 늦추지 않은채 매달려 따라 내렸다.
 "와아!"
 뜻밖의 광경에 관중들은 높은 함성을 질렀다.
 드디어 땅에 내려오자 운무 장군은 한뫄도령에게 질질 끌려  다녔고 이미 기운도 다해서, 얼굴에는 사색이 완연히 깃들었다.
 "용기를 내라! 힘을 얻어라 운무장관!"
 많은 나졸들이 운무 장관에게 응원하였다.
 그러나 몇 안되는 공주의 시녀들은 한뫼도령을 응원하였다.
 "한뫼도령, 끝까지 놓치지 마셔요."
 괴로움을 이길 길이 없는 운무  장군의 눈은 차차 크게 떠지기  시작했다. 이제 마지막의 죽음에 이르는 모습처럼, 이세상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처절한 눈길이었다.
 "이럴수가!"
 대왕은 이대로 두었다가는 이나라에서 제일 신임하는 운무 장군을 그대로 죽일수  없에 없었다.
 갑자기 대왕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명하였다.
 "즉시 싸움을 중지하라!"
 대왕의 심상치 않은 명령에 신하와 관중들은 잠시 술렁댔으나 곧 잠잠해졌다.
 "싸움을 멈추어라!"
 왕의 명령에 전례대신은 크게 복창하였다.
 이에 정신없이 운무 장군의 눈알을 품고 늘어졌던 한뫼도령은 명을 받들고 급히 주둥이를 뽑았다.
 한뫼도령이 운무 장관의 눈에서 떨어지자 전례대신이 다시 말하였다.
 "대왕마마의 특별명령으로 오늘릐 이 싸움은 여기에서 중지한다."
 전례대신의 말을 듣고 한뫼도령과 운무 장군은 대왕 앞으로 나아가 절을 하였다.
 절을 받고 대왕은 업숙하게 선포하였다.
 "힘을 겨룸에 있어 아까운 목숨을 굳이 빼앗게 하고 싶지는 않다. 오늘의 겨룸은 한뫼가 승리했으므로 그 상에서 옥으로 나오도록 조처를 ㅍ취할 것이며 이로써 싸움이 아직 남아 있 는바, 한달 뒤에 서로의 몸이 완쾌된후에 겨루도록 할 것이니 그때 다시 이곳으로 모여라."
 모든 왕의 신하들은 왕이 운무 장군을 살려내려고 전례없는 조치를 취하는 줄 이미 알아 차렸지만 감히 누구하나 입 밖으로 말을 하지는 못했다.
 공주는 여러 사람들의 눈총도 개의치 않고  한뫼도령의 옆에 가사 기쁨에 넘친  울음으로 그를 격려하며 진정으로 말하였다.
 "잘 사우셨어요. 저는 공자민이 돌아가시는 줄 알고 얼마나 슬퍼했는지 몰라요."
 한뫼도령ㅇ느 공주의 정성에 크게 감동하며 말하였다.
 "이 모두가 저의 승리를 빌어주신 공주님의 은공으로 이렇게 살게 되었습니다."
 한뫼도령과 공주는 함께 울면서 오늘의 승리를 기뻐했다.
 이제 날은 을허 또다시 시합할 날이 되었다.
 한달 전의 모습과 간이 오늘도 똑같은 장소에서 시작되었다.
 전례대신은 전번과 마찬가지로 나타나서 관중과 두 용사에게 설명하여 말하였다.
 "오늘의 시합은 힘의 대소가 아니라 지혜의 대소를 가리는  일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 거니와, 저 앞 큰 뫼 너머에 매들이 사는 매바윗골이 있슴니다. 그 골짜기의 속에는  대왕께 서 늘 구하시는 장수초가 있습니다.  오늘의 시합은 무서운 매들이  득실거리는 매바윗골을 감히 지나가서 그 장수초를 뜯어 오는 일입니다. 누가  먼저 뜯어다 대왕전하께 바치느냐를 겨루는 것입니다. 두 용사는 정정당당히 겨루도록 하시오."
 말을 마치고 나서 전례대신은 다시 두 젊은이를 의미심장하게 마라보며 말하였다.
 "그럼 지금 출발한다. 저쪽 형편을  알수 없는 관계로 언제까지  돌아와야 한다는 규정은 세우지 않았으나 누구든지 먼저 장수초를 가지고 오는 자에게 승리의 관을 씌워 주도록 할 것이다."
 하고, 깃대를 높이 치벼들고 신호를 보냈다.
 시합의 내용과 규정을 듣고 관중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매들이 사는곳에 들어가서 장수초를 뜯어가지고 오라는 것은 스스로 죽음을 택하든지, 애 초에 근처에도 가지말고 그대로 돌아오라는 뜻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한뫼도령과 공주도 이 내막을 얼른 짐작했다.
 시합을 성공시키기 보다는 두 용사 다  실패로 돌아가게 해서 이번을 유야무야로  넘겼다가, 이다음에 운무 장군을 다시 부마로 삼으려는 속셈임을 능히 알수가 있었다.
 사실 알수 있기는 하지만 무엇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한뫼도령과 운무 장군은 훌쩍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두 용사는 전날의 결사전은 아주 잊어버린 듯이 마치 친구처럼 나란히 하여 매바윗골을 향해 달렸다.
 어느 한쪽도 상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매바윗골이 얼마남지 않은 고개에 이르자 한뫼도령은 매의 냄새를 맡을수 있었다.
 이제부터 위험 지역이라는 중거였다.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 매가 공격해 올지 알수 없는 일이다. 한뫼도령은 운무 장구을 바라 보았다.
 운무 장군은 위험한 기색을 전연 느끼지는 못했느느지 그대로 냅다 앞질러서 갔다.
 한뫼도령은 몸을 얕게 내려 날카롭게 언저리를 살피며 운무 장군의 뒤를 바짝 따랐다.
 저아래 골짜기에서 분명히 두려운 매의 소리가 들렸다. 눈을  똑바로 뜨고 쏘아보니 크고 작은 매들이 이리저리 위세좋게 날고 있었다.
 배들의 출현에 운무 장군도 주춤하기는 했으나 뒤로 물러서거나 몸을 숨기거나 하지 않고 그대로 날아갔다.
 저 무서운 악마들의 소굴에 먼저 뚫고 들어가려는 심사임이 분명히 엿보였다.
 장기의 날아오는 모습을 매의 보초가 발견했다. 저아래로 신호를  하자 보기에도 크고 매서운 매의 무리가 여섯 마리나 하늘로 치솟아 갑작스럽게 올라온다.
 "앗!"
 한뫼도령이 놀라는 순간 운무장군은 그제야 일이  수습할수 없는 수렁에 빠진 것을  안 모양이었다.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얼른 머리를 돌려 되돌아 날기 시작하였다.
 장끼가 도망치는 것을 보고 매떼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넓고 큰 날개를 활짝 펼치 면서 장기에게로마구 덮쳐왔다.
 아무리 힘세고 가벼운 장끼라고 하더라도 매의 날개를 당할재간은 결코 없었다.
 채 고개를 넘지 못해서 매의 발톱에 어개죽지가 걸렸다. 매와 장끼는 마치 전날 한뫼도령 과 싸울대처럼 한동안 하늘 가운데서 어울려 뒹굴며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장기의 힘과 기술은 매의 발톱과 주둥이에 견줄바가 아니다.
 다른 매들이 채 닿기도 전에 운무 장군은 먼저 덮쳐든 매에게 숩줄기가 막혀 길다란 비명을 남겨 놓고 그대로 몸이 축 쳐졌다.
 매떼들이 땅에 뒤구는 운무 장군의 눈을 때고 배를 가르기 시작했다.
 숨어서 바라보는 한뫼도령은 소름이 끼쳤다.
 매바윗골에 들어서려고 한다면 저 운무장군의 신세를 스스로 부르는 행도에 지나지  않는 짓이다.
 죽을 결심이라면 몰라도 살 생각이라면 매떼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려 다시 되돌아가는  수 밖에 전혀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대로 돌아가는 나를 공주가 반겨줄지는 모르지만, 그런 부끄러운 태도로 공주를 만날 면목은 도저히 서지 않는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약초를 뜯어가는 수밖에 없다.
 한뫼도령은 백방으로 생각을 가다듬었다.
 몇 시간이나 지나서 한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지루하기는 하지마는  밤 되기를 기자려 몰래 약초가 있는 곳으로 매들 모르게 침입해 들어가는 방법이 그것이다.
 뉘엿이 넘어가기 시작하던 햇빛이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고 누리기 어두워졌다.
 날짐승들은 무슨 종류고 날이 어둡기만 하면 전부 잠자리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뫼도령은 눈에 불을켜고 언저리를 살피며 살금살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날갯소리를 내지 않고 이렇게 걸어갈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 한뫼도령은 생각하였다.
 간간이 흙덩이가 무너져 내려오고 발에 밟히는 나뭇잎 소리가 가슴을 철렁 내려 앉게 했으나, 이곳에 남의 눈을 피해 들어오는 장끼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는 매떼들은 부스 럭 소리를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몇 군데의 바위 기슭, 몇 군데의 바탈길, 또 몇 고비의 모퉁이를 돌아가니 매의 냄새도 짙은 매바윗골의 한가운데였다.
 발소리를 한층 죽이며 더 앞으로 걸어 나갔다.
 매 둥지가 여기저기 유난히 꺼멓게 드러나 보였다.
 매들이 사는 마을의 궁궐 근처인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좀더 기어 들어갔다.
 갑자기 푸드득하며 날개치는 소리가 나더니,
 "누구나?"
 하고, 찢어지는 듯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는 도망갈 길도 없이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한뫼돌여의 머리를 스쳐갔다.
 바위틈에 바짝 몸을 숨기고 숨소리마저 죽였다. 잠시 푸드득 거리던 매의 소리가 도로 조 용해졌다.
 산짐승이 지나가는 것쯤으로 생각하고 그들은 나무 위에서 다시 마음을 놓고 잠들기 시작 했는지도 모른다.
 여기가지 와서 더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한뫼도령ㅇ느 또 몸을 드러내 놓고 앞으로 소리없이 기어갔다.
 무득 이제가지 맡아본 일이 없는 그윽한 풀향히가 코를 찔렀다.
 그것은 얘기로만 들어오던 장수초가 바로 눈앞에 솟아 있는 것을 알수 잇었다.
 어둠 속을 더듬으며 좀더 앞으로 기어가니  칠흑처럼 어두운 바위밑에 마치 무지개  같이 영롱항 빛을 뿜고 있는 풀잎이 앞을 가로 막았다.
 분명 장수초임에 틀림없었다.
 한잎, 두잎, 입이 터질 만큼 그득히 따물고 한뫼도령은 얼른 몸을 빼쳐 나오기 시작했다.
 몸이 빗속을 날을 때처럼 젖어 있는 것은 이슬 때문이 아니라 땀이 흐른 탓임을 한뫼도령 은 알았다.
이미 익혀둔 길이라 돌아올때는 어렵지가 않았다.
 여전히 흐트러지는 흙덩이 소리와 부스럭거리는 나뭇잎소리가 가슴을 철렁 내려 앉게 하기 는 햇지만, 우선 숨을 방도는 있으니 그만큼 안심이었다.
 몇번이고 푸드득 거리는 매의 움직이는 소리가 있기는 했지만 어느 한 마리도 한뫼돌여의 동정을 살펴내지는 못했다.
 아까 운무 장군이 죽음을 당한 마루턱에 이르러 한뫼도령은 이제는 자기의 목숨이 제대로 붙어 있게 된 것을 알았다.
 잠시 숨을 가다듬고 한뫼도령은 날개소리도 요란히 하늘로 치솟아 높이 올라갔다.
 어디서도 매의 날아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설사 쫓아온다고  해도 여기가지 따라올 수없음은 너무도 명백한 일이었다.
 처음 떠날올 때부터 몇 식경이나 지나서 한뫼도령은 아까 출발한 잔디밭 상공으로 날아들 었다.
 "저기 용사의 오는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군중의 놀라움과 환호가 섞인 소리가 한뫼도령의 귀에 들려왔다.
 한낮에 떠난 용사들이 이토록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사실에 모드들 큰 변이 난 것으로 알고 차차 기다리기를 단념하고 있던 참이었다.
 잔디밭 상공에 이른 한뫼도령은 마지막 힘을  모아 한 바퀴 휘익 돌아보이고는  떨러지듯 힘없이 땅으로 내려 굴럿다.
 땅에 내려앉았을 때 한뫼도령은 대왕과 전레대신과 공주의 모습을 눈앞에 보았을 뿐 그대 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지켜 보던 전의가 뛰쳐나와 소생초의 잎을 짜서 그 물을 코에 흘려 넣자 한뫼도령은 조용히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전례대신은 뜯어온 장수초를 신기한 듯이 받들고 섰고, 대왕을  비롯한 여러 신하와 군중들이 근심스러운 얼굴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공자님. 정신이 드셔요?"
 한 쪽에 웅크리고 안절부절 못하던 공주가 달려나와 얼굴을 비비며 울음을 터뜨렸다.
 "아, 공주 마마!"
 한뫼도령은 간신히 말하였다.
 "한뫼는 분명 장수초를 뜯어왔고, 또한 문명히 운무보다 앞서서 되돌아  왔습니다. 오늘의 시합에도 한뫼가 승리했음을 알립니다."
 이에 군중들이 일제히 일어나 소리쳣다..
 "한뫼도령 만세!"
 전례대신은 한뫼도령의 곁으로 가만히 와서 이번에는 나직한 음성으로 말하였다.
 "운무 장군은 언제즘 돌아올 것 같은가?"
 한뫼도령은 심각해지며 말하였다.
 "운무는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사옵니다."
 하고, 한뫼도령은 그동안의 경위를 자세히 말하였다.
 군중들은 운무장군의 아까운 희생을 언짢아  하기는 했지만 한뫼도령의 참착성과  인내와 지혜에 모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장하다! 이번의 싸움에서 한뫼는 힘과 인내심과 지혜를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한뫼가 승리 했음을 우리 모두 축하하자!"
 할수 없이 대왕도 군중에게 말하였다.
 운무 장군을 물리치고 승리를 차지한 한뫼는 옥에서도 풀려나고 그 뒤 거리낌없이 공주와 다정하게 만날수가 있게 되었다.
 그들은 처음에 알게 된 잔디밭 위에서 만나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정을 나누었다.
 한뫼도령이 공주와 혼인을 하게 되리라는 소문이 온나라 안에 널리 퍼졌다.
 한편, 한뫼도령과의 싸움에서 운무장군을 잃은 그 아버지 대보장군은 아들을 잃은 슬픔과 분노로 잠이 오지를 않았다.
 싸움의 경위를 보면 내 아들이 힘이 모자라서 진것이아니라 운수가 나빠서 진 것이요, 목 숨을 잃게 된것도 한뫼처럼 교활하고 기특하게 몰래 침입해서 장수초를 훔쳐오는 수단을 밟 지 않고 정정당당히 매들을 물리치고 그것을 손에 넣으려던 결과였다.
 힘을 제대로 겨루기로 하면 한뫼 같은 애숭이 상놈이 감히 당할 바가 아니었다.
 그런 용감하고 귀중한 아들을 잃은 것은 한뫼라는 악귀 같은 녀석의 출현 대문이지, 자신이나 운무에게 잘못이 있었던 소치가 아니었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아들의 원수는 갚아 주어야겠다고 대보 장군은 이를 달며 맹세 하였다.
 그는 대왕이 한뫼도령에게 승리의 관을 씌워주기는 했지마는 마지못해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이요, 그가 탐탐해서 한일이 아님을 알고있었다.
 운무를 공주의 작으로 하자고 한 것은 다름아닌 대왕 자신의 뜻이었었다.
 운무의 죽음을 대왕도 크게 언짢아 하고, 무슨 핑계든지 명분이 서면 한뫼를 내쫓을 것이 분명한 것을 대보 장군은 알고있었다.
 밤새 궁리를 한 끝에 배조 장군을 그럴법한 계락을 한가지 기막히게 생각해 냈다.
 이튿날 그는 자기하고 그중 가가운 병부대신을 만나 그의 심중을 이야기하였다.
 "미거한 자식놈이 싸움에 진 것을 가타부타 재론할 일은 아니지만, 애비된 심정에 너무도 억울하여 기가 막히오."
 이에 병무댄신이 말하였다.
 "누가 아니라 하겠습니까? 그 용맹한 자제분이  교활한 저 필부놈에게 욕을 당한  생각을 하면 우리 무사 전체가 낯이 뜨거운 일입니다. 지난얘기는 묻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저 간사 스러운 젊은 놈을 없앨 궁리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보 장군은 병부대신의 말에 힘을 얻어 말하였다.
 "그얘기를 의논하려던 참입니다. 듣자하니 한뫼라는 애는 제아비의 뜻으로 다른곳에 정혼 을 해농ㅎ은 자라고 합니다. 다른곳에 정혼을 한 필부가 저 존귀한 공주님으 농락하다니 이 렇게 질서가 문란할수야 없지 않습니까?"
 이에 병부대신이 신이나서 크게 말하였다.
 "과연 훌륭한 사실을 알아냈습니다그려. 그 사실을 구실로 다시한번 힘겨루기를 시키도록 대왕께 상주함이 어떻겠습니까?"
 대보 장군은 목에 힘을 주어 말하였다.
 "내 생각이 바로 그생각입니다. 내게는 이미 아들이  없으니 병부의 자제분을 천거하도록 합시다. 이다음 어전회의 때 귀공은 한뫼가 다른곳에 정혼한데가 있다는 사실만 아뢰십시오.
 그말이 떨어지면 대왕도 즉시 그와  다시 힘을 겨룰 젊은이를 지목하라  하실 것인즉, 그때 내가 귀공의 자제분을 천거하도록 하겠습니다. 한뫼를 물리치고 귀공의 자제가 부마가 되도 록 할 기회가 아닙니까?"
 은밀히, 그리고 단단히 모의를 하고 그들은 다음날의 어전회의에 임석하였다.
 회의가 끝날무렵 병부대신이 업숙한 복소리로 대왕꼐 아뢰었다.
 "봉묏골 태수의 아들 한뫼는 엄연히 정혼한 규수가  잇다고 하옵니다. 그런자를 대왕전하 의 부마로 삼음이 어찌 왕실을 크게 욕되게 하는일이 아니옵니까?"
 대왕은 놀라며 물었다.
 "그런말은 처음듣소. 사실이 그러하오?"
 대왕은 여러 신하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어느 신하가 말하였다.
 "그런일이 분명히 있는 줄로 압니다."
 이때 다른 신하가 정중히 말하였다.
 "얘기가 오고가기는 했으나 한뫼 당자는 분명히 거절한 줄로 알고 있사옵니다. 그일은 논의를 것이 못되는 줄 압니다."
 그러나 대왕 스스로가 한뫼를 못마땅히 여기고 있는 참이라, 한뫼를 닥닥할 수 있는 명분 있는 구실이 나온이상 그대로 묵살하고 싶은 마음은 조급도 없었다.
 "그런 일의 유무는 둘째로, 말이 오고간 것도 온당하다고 볼수가 없소. 다시  힘을 겨루도록 해서 승패를 가리게 한 뒤에 이긴자로 하여금 공주의 짝을 지어주도록 하겠소. 힘세고 덕있는 이를 누구든 천거하도록하오."
 대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병부대신의 아드님이 용기로 보나 지혜로 보나 인망으로 보나 이나라 젊은이의 으뜸이 되리라고 여겨집니다. 어의로 살피어 주소서."
 임금은 여러 신하들을 두루 바라보며 말하였다.
 "대신들의 의견은 어떠하오?"
 그 중의 한 신하가 대왕계 조용히 여쭈었다.
 "병부대신의 아드님이면 과연 모든 면에서 출중하옵니다."
 병부대신의 아들이 운무 장군에 지지않을 만큼 힘이 세고 동작이 날쌔다는 소리를 그 누구도 반대할 수가 없었다.

모두  입을 모아 병부대신의 아들 큰내  장군과 한뫼도령을 마주 대전케 하는데 의견을 모았다. "싸움하는 상대는 대신들의  뜻이 같으니 그리하도록 하려니 와, 어떤 방법으로 싸움을 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소?" 대왕이 물었다.
 "맨처음 운무장군의 경우와 같이 두 젊은이로 하여금 하늘에서 맞붙어 다투게  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한 신하가 의견을 제시하자, 내부대신이 점잖고 공손히 해명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 국법에는 한번 치룬 싸움은 그 당자에게 되풀이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되어 있사옵 니다. 이번에는 다른 방도로 싸우게 함이 마땅한 줄로 아옵니다."
 누구도 반대의 말을 하지 않았다. 내부대신의 말이 옳기도 했고, 그렇지 않더라도 무슨 새 종목을 내세우는 것이 다시 또 싸움을 하게 하는 행상에 맞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신에게 한가지 방법이 있사옵니다."
 크내 장군의 아버지 병부대신이 말하였다.
 이에 대왕이 물었다. "어서 좋은 방법을 말해 보도록 하시오."
 병부대신은 차분히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여쭈었다.
 "지금 우리 겨레는 산에 있는 힘센 짐승들에게 시달림을 받기도 하지만 속세에 사는 인간 에게도 또한 그에 못지 않는 괴로움을 당하고 있사옵니다. 우리들의 조상에, 그들을  위해서 이런넓고 아름다운 산속을 모리고 그들의 집안에 들어가 닭이라고 이름까지 고쳐서  주기는 커녕 한층 더 우리들을 해치려고만 하옵니다. 그러나 워낙 몸집이 크고 꾀가 있으니, 우리 들이 그들을 마주 응징하거나 보복을 가할 길을  없사옵니다. 그런데다가 그들은 '활'이라는 무서운 무기를 만들어 우리들이 그 근처에  있기만 하면 화살로 쏘아 목숨을  앗아가고는 하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추석날, 인간들은  또 활을 메고 우리들을 사냥하러  출동하기로 되었다고 하옵니다. 
저들이 사냥을 올라올 때 큰내 장군과 환뫼를 내세워 두 젊은이의 힘과 꾀를 겨루어 보게 할겸, 사람들의 행패를 막는 길도 찾아보게 함이 어떨까 마음이 듭니다."
 말을 다듣고 난 대왕은 다시 물었다.
 "그런 방법만 있으면야 희한하지 않겠소? 무슨 방도로 그런 성과를 거두겠소?"
 "사람들이 사냥을 올라오는 길목에 두  젊은이를 미리 가있게 하옵니다.  다람쥐 한 마리 놓치지 않고 샅샅이 뒤지고 활을 쏘고 하며 올라오는 그들의 공격을 ㅇ어떻게 하든지 모녀 해 보라고 하는일이옵니다. 불행히도 둘이 다 죽게 되는 위험과 염려가 있기는 하지만, 만일 에 살아남기만 하게 되면 공주 마마의 짝이 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요, 그 힘과 꾀를 우리 겨레가 전부 배우도록 한다면 우리 겨레 구언의 영웅으로 받들수도 있는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대왕은 말을 듣고 기뻐하며 말하였다.
 "과연 훌륭한 의견이오. 이번의 싸움을 계기로 우리  겨레가 인간들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덜 당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당사자들의 무제뿐아니라 겨레를 위해서라도 죽음을  무릎쓰고 실천토록 해볼만한 일이오. 다른 대신들의 뜻은 어떠하오?"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찬성의 뜻을 표했다.
 어전회의에서 논의되고 정해진 얘기는 곧 널리 온나라 안에 퍼졌다.
 추석날, 인간의 두목과 그 무리가 활을 메고 사능로 올라오게되면, 두젊은이가 산중턱  가 까이에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무슨 수를 쓰든지 그들이 통과한 뒤에 살아서 되돌아 오기로 하는일이 었다.
 포고가 내리자 백성들은 이번에는 깜짝 놀랐다.
 다시 또 싸우게 하는 처사에도 놀랏지마는 구름처럼 몰려올라 오는 사냥군들의 발길을 벗어나 보라는 내용에 더욱 놀랐다.
 이대까지 그 얼마나 많은 꿩들이 인간의 포위를 벗어나 보려하다가 아깝게 죽어갔는지 수 를 헤아릴수 없는 일이다.
 백성들보다도 동구 놀란 것은 역시 공주와  한뫼도령 당사자들이었다. 잔디밭에서 오손도손 장래를 설계하고 있다가, 그들은 니포고의 소식을 듣고는 어이가 없었다.
 무슨 까닭으로 또다시 힘겨루기를 하라는지 도므지 알수가 없었다.
 "되지도 않을 말이어요. 낭군과 저를 기어이 떼어 좋으려고 억지로 꾸며낸 모함이어요."
 공주는 안타까움과 조기를 이기지 못해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모함이 틀림없습니다. 제가 지난 번에  진작 세상을 떠났어냐 옳았을  것을 또 살아나서 이런 욕된 걱정을 기쳐드립니다."
 한뫼도령도 절망과 분노섞인 말을 쏟아 놓았다.
 "가만히 있지 않겠어요. 공자님이 언제 어느 규수와 약혼을 한일이 있으며, 백번 그런일이 있었기로 제 남편되는 데에 무슨부족이 있다는 말이어요? 아바마마께 직접 아뢰겠어요."
 이에, 한뫼도령이 말하였다.
 "아무 말씀도 마십이오. 번연히 근거없는 일을 결정지으신 이상, 웬만한 말씀을 귀담아 들으실 법이나 합니까?

저를 공주님에게서 뗴어놓고야 말겠다는  뜻의 소치입니다. 어명을 순순히 받들어 천운이 있어서 다시 살길이 솟기를 마라느니만 같지 못합니다." 한뫼도령의 한탄을 듣고 공주의 마음은 무너지는듯했다.
 즉시 어마마마를 찾아 문후한 뒤에 이번의 처사의 부당함을 아뢰며 그 포고를 다시 거두 어 들이도록 간곡히 호소하였다. 딸의 간청을 듣고, 왕후는 다시 또 대왕을 만나 뜻을  전하기는 했으나 왕비의 힘으로써 굽어질 대왕의 심사도 아니었고,  일단 널리 선포한 포고를 지금 뒤집어 놓을수도 없는 딱한 일이었다. 추석날이 되자  요전번의 장소에 또다시 임원들 과 많은 군중들이 모여 있었다. 오늘 한낮에 인간세상의 두목과 그 무리들이 용마루 골짜기의 어귀에 이른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알고 있었다.
 그날 해가 지기 까지 사람들은 용마루 골짜기를 샅샅이 뒤져 꿩이고 산짐승이고 닥치는대로 잡아가기로 한 것이다.
 한뫼도령과 큰내 장군은 세 마리의 엄정한 심판원과 함께 일찌감치 용마루 골짜기 꼬대기에 이르렀다. 심판원의 지시에 따라 해가 돋을 무렵쯤해서 두  젊은장끼는 하늘 높이 몸을 날려 골짜기의 중턱 사람들이 치닿는 바로 역로의 절반쯤의 지점에 몸을 내렸다.
 갑자기 아래 쪽에서 왁자지껄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와아하는 함성과 함께 요란스럽게 골짜기 위를 치달아 기어 올라오는 모습이  심판원들의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각각 흩어져서 울타리 형태로 열을 지어 소리치며 올라오고,  우두머리와 높은 벼슬을 하고 있는 인간들은 활에 살을 재이고 그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노루가 뛰어 달아나다가 별안간 날아드는 화살에 맞아 뒹구는 것이 몇번이고 숨어있는 두장끼의 눈에 똑똑히 띄었다. 두 장끼다 몸을 담고 있는  풀숲과 바위 틈세에서 차차 사람 들의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졌다.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과 긴장이 두 젊은이뿐 아니라 심판원들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큰내 장군은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아무래도 불안해서 그 옆에 있는 풀포기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이만하면 사람들의 눈에는  띄지 않을 만븜 안전하고  두터운 풀속이라고 큰내 장군은 생각하였다. 사람의 걸음으로 쉰 발쯤 앞에서 사람의 기척이 들려오고  있었다.
 사람은 풀을 더듬고 나무를 툭툭치며 천천히 걸어 올라온다.
 사람의 옷모양과 얼굴모습이 나무와 풀사이로 뚜렷이 어른거렸다.
 기골이 느티나무처럼 장대하고 감발감은 짚신 발이 바윗장처럼 육중하고 억세다. 저 발길 에 밟히든지 채이든지 또는 휘두르는 작대기에 얻어맞든지 하면 몸이 흙가루처럼  으스러져 버릴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살아남을 길이란 단한 가지밖에 없다고 큰내 장군은  생각했다.
 저 발길이 내몸에 닿지 않느 곳으로 지나가 주는 일이었다.
 제발 저쪽으로 비켜 가소서 하고 큰내 장군은산싱령에게 빌었다.
 발자국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두발중의 하나가 바로 코앞에 놓이더니 또 한 발이 번쩍 들려 올라갔다. 올라간 신발이 아무래도 다른 자리에 내려질 것 같지가 않았다.
 이렇게 눈을 똑바로 뜨고 있는 머리통을 으스러져라 하고 밟을 것이 너무도 분명하였다.
 아얏 소리도 제대로 지르지 못한채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크게 큰내 장군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더는 그대로 있을수 없는 것을 큰내 장군은 그 순간 깨달았다.

이대로  죽을 바에는 설사 또 다른 죽음의 기다린다 해도 달아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푸드득..." 있는 힘을 다모아서 큰내 장군은 날개를 크게 뒤흔들었다.
 그곳을 빠져나온 몸이 화살처럼 가벼운 무게로 허공에 떠오는 것을 느꼈다. 저 무서운 발자국을 빠져 나왓으니 이제는 살았다 하는 생각이 솟아 올랐다. 살았다는 생각을 채 끝맺기 도 전에 큰내 장군은 난데 없이 솟는  화살의 휭하는 소리를 바로 귓전에서 듣는 순간이었 다. 

"앗!"
 별안간 날개가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리  남아있는 한쪽 날개를 움직여  몸을 지탱하려고 해도 자꾸 허공에서 맴남 돌며 앞으로 는 조금도 나가지 못했다.
 큰내 장군은 이를 악물며 앞쪽을 향해 몸을 내밀었으나 몸은 꽂혀잇는 화살과 함께 자꾸 맴돌며 가라앉을 뿐이었다.
 당에 떨어졌을 째는 한쪽 날개를 움직일 기운조차 없어졌고 그보다도 와아 하고 들려오던 사람들의 환호성까지 자꾸 먼곳으로 멀어져 가기만 하였다.
 "아따, 그놈 크기도 해라."
 하는 절믕ㄴ 몰잇군의 목소리를 큰내 장군은 마지막으로 들었다.
 큰내 장군의 죽음을 멀지 않은곳에서 지켜보던 한뫼도령은 오래지 않아 스스로도 저런 신 세가 될 것을 생각하고 한숨을 쉬었다.
 저 몰잇군들의 포위망을 살아서 벗어날 길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할수 없는 일이라고 한뫼도령은 생각했다. 나는 기어이 공주와  인연이 없는 몸이니 몰잇꾼들의 작대기에 맞거나 발에 밟혀죽는 것이 주어진 운명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한뫼도령은 처음부터 떡갈나무 포기 속에 몸을 도사리고 앉은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쪽으로는 자그마치 두 사람의 몰잇군이 서로 얘기를 주고 받으며 기어 올라오고 있었 다. "오늘은 노루와 산돼지는 꽤 튀어나오는데 꿩이 별로 보이지 않으니 웬일일까?"
 큰 소리로 외치며 한 사라미 작대기로 언저리의 풀숲을 툭 쳤다.
 "꿩들도 요새는 약아져서 사람이 어른거리는 줄 알면 진작 멀지감치 달아나  버리고 말거든!" 또한사람이 대꾸를 하며 성큼 바윗돌 위로 기어올랐다.
 쉰걸음쯤 사이를 두고 두 몰잇꾼이 자꾸 한뫼도령이 있는 나무포기 가까이로 다가왔다.
 저아래 멀찌감치 어른거리던 그림자가  이제는 뚜렷이 드러나 보였고,  옮겨 놓는 걸음새 한발, 한발이 파도처럼 억센힘으로 마구 밀려닥쳐왔다.
 가슴이 떨리며 온몸에서 땀이 마구 흐르는 것을 한뫼도령은 몸으로 느낄수 있었다.
 눈 앞에 있는 몰잇군의 한발이 번쩍  머리위로 치솟아 올라가자 한뫼도령은 저도  모르게 날개에 힘을 주었다.

이 발자국에 밟혀서  죽느니, 한 날개라도 날아보다가 요행 죽지  않고 사는길을 찾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리속에 떠올랐다.
 순간 한뫼도령은 마음을 가다듬고 스스로 꾸짖었다.
 몸을 뛰쳐나가다가 그대로 화살에 맞아 땅에 떨어져 버린큰내 장군의 죽음을 바로 조금전에 보지 않았느냐고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몸이 이 나무포기 밖으로 나서기만 하면  수백 명의 눈동자와 수백개의 화살이  폭포처럼 쏟아져 올것이 분명하였다.
 귀신같은 재주를 가졌다 하더라도 일단 들키는 날이면 살아 남지 못할것이 뻔하다.
 몰잇군의 발자국은 지금 내머리위에 있지마는 운수가 좋아 내몸집 위에 내려지지만  않으면 살수가 있을 것이다.
 저들은 일단 지나간 걸음을 다시 되돌아서는 일은 없다.  한발자국이나 면하게 되면 살길 이 있는 것이다. 화살에 꿰뚫려 죽느니, 이 몰잇군의 발밑에 밟혀 죽으리라 하고 한뫼도령은 굳게 결심하였다.  입을 다물고 눈을 감으며 한뫼도령은 운명의 순간을 기다렸다.
 "앗!" 한뫼도령은 절망의 부르짖음 소리를 내었다. 다행스럽게도 머리와 잔등은 밟히지 않았으나 꼬리 끝이 밟혔기 때문이었다. "푸우!"
 아찔하는 순간이 지나가자 한뫼도령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드디어 몰잇군의 뒷모습이 저꼭대기 까마득한 산봉우리 옆을 휘돌때에야 한뫼도령은 몸을 움직였다. 

몰잇군의 발에 밟혔던 꼬리가 뽑혀질 뽄했는지 깃밑둥이 몹시 괴롭게 아팠다.
 높직한 소나무 맨꼭대기 가지에 올라가 둘레를 살펴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저 꼭대기에 심판원들만이 눈에 띄었다. 이쪽을 지켜보는 심판원들 의 눈에 놀라는 빛과 승리는 네 것이라는 선언이 넘쳐있었다.
 한뫼도령은 공주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어서 가슴은 기쁨으로 충만했다.
 사람들은 이미 고개를 넘어간지 오래되었다.
 한뫼도령의 옆으로 온 심판원은 한뫼의 목에 그의 목을 휘감으며 기쁨을 나누었다.
 뽑혀질 뻔한 꼬리털의 모양을 살피며 마지막까지 유지한 그 끈질긴 침착성에  새삼스럽게 탄복하였다.
 "우선 꼬리 깃부터 바로 잡도록 해라."
 그중의 하나가 후루룩 날아 올라가서 연하게 자라나는 약초잎을 뜯어다가 꼬리가  빠지려고 하는 자리에 문대었다. 

상처가 시원해지며 아픈 기운이 가시어졌다.
 "어서 갑시다. 이 꿈 같은 승리를 알려드립시다."
 심판원들과 한뫼도령은 위세좋게 몸을 날리어 대왕과 관중들이 모두 기라리고 있는 그 잔디밭으로 되돌아갔다. 군중들의 환성은 요전 장수초를 뜯어올때보다도 더 우렁찼다.
 아무도 두 용사가 제대로 살아서 돌아올 줄은 기대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뢰옵니다. 두 용사 중에서 큰내 장군은 불행히도 인간들의 잔학한 화살에 맞아 목숨을 잃고 몸뚱이마저 끌려 갔사오며, 한뫼는 침착성과 지혜를 끝까지 발휘하여 인간들로 하여금 감히 손발을 대지 못하게 하고 돌아왔나이다. 오늘의 싸움은 한뫼도령이 승리했음을 선포해 주시기 바랍니다." 심판원중의 하나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이에 대왕도 이번에는 진심으로 감탄과 기쁨을 말하면서 대견해서 크게 말하였다.
 "기특하도다. 심판원의 결과 보고를 받고 이에 한뫼가 승리했음을 널리  선포한다. 기특한 일이로다." "황공하옵니다."
 전례대신이 씌워주는 승리의 관을 받아 쓰며 한뫼도령은 몇번 이고 공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공주는 기쁨과 감격을 누르지 못해서 주위의 눈총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꾸 울기만 했 다. "싸움의 과정은 이것으로 완전히 끝났음을  알리다. 우리의 용감한 한뫼가 어떻게  해서 저 포악하고 무지한 인간들의 포위를 벗어날 수 있었는가를 들어보기로 하자!"
 대왕이 말하자 한뫼도령은 정중히 몸을 일으켰다.
 "우리 겨레들은 누구나 적이 가까이 올 때 놀란 나머지 정신을 잃고 하날 높이 나는 버릇이 있습니다. 
옛날 산짐승들이 못살게 굴어 그들의 공격을 피하려고 날기 시작한 것이 그대로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만 이제는 덮어놓고 날아 올라가는 것이 도리어 위험하게 되었습니다. 
솔개나 보라매뿐 아니라 인간들은 활을 쏘아서 날고 잇는 우리들을 마구 죽이기 때문입니다. 
소신은 이 점을 생각하고 최후까지 마음을 가다듬어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있어 보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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