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옹전(閔翁傳)-1757년(영조 33)박지원
민옹(閔翁)은 남양(南陽) 사람이다.
무신년(戊申年) 군인으로서 반란의 토벌에 참여, 공을 세워 첨사(僉使)의 벼슬이 내려졌지만 반란이 끝난 후 집에 돌아와 벼슬을 받지 않았다.
민옹은 어려서 깨달음이 빠르고 총명했으며 말주변이 좋았다.
특히 그는 옛사람의 기이한 절개나 위대한 자취를 흠모하여, 강개(慷慨)한 마음으로 흥분하 곤 하였다.
그리하여 매번 그들의 전기(傳記)를 읽을 때마다 일찍이 탄식하고 눈물짓지 않은 적이 없었 다. 나이 일곱 살에, “항탁(項橐)은 스승이 되었다.” 라고 벽에 크게 썼다.
열두 살에는, “감라(甘羅)는 장수가 되었다.” 라고 썼으며, 열세 살에는, “외황(外黃)의 소년은 유세했다.” 라고 썼으며, 열여덟 살에는 덧붙이기를, “거병(去病)은 기련(祈連)에 출정했다.” 고 했고, 스물네 살에는, “항적(項籍)이 강을 건넜다.” 라고 썼다.
나이 사십에 이르러서도 그는 아무런 명성을 얻지 못했으나 또 크게 쓰기를, “맹자는 부동심을 얻었다.” 라고 했다.
이렇게 해마다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니 그의 벽은 온통 먹으로 뒤덮였다.
나이 칠십이 되자 부인이 조롱하며 말하기를, “영감, 금년에는 까마귀를 그리겠구려.” 라고 하니 민옹이 웃으며 말하였다.
“당신은 먹이나 갈아 주구려.” 하고는 더욱 크게 쓰기를, “범증(范增)은 기이한 계책이 뛰어났다.” 라고 했다.
부인이 화가 나서 소리치기를, “계책이 비록 기이하더라도 당신은 어느 때 사용하려 하시오?” 그러나 민옹은 웃으며,
“옛날 여상(呂尙)은 나이 팔십에 매처럼 들날렸지.
지금 내 나이는 여상에 비하면 어린 동생에 불과할 뿐이라오.” 라고 말했다.
계유(癸酉)년과 갑술(甲戌)년 사이에 내 나이 17, 8 세였는데 오랜 병으로 몸은 쇠약했다.
노래․글․그림이나 예스러운 검(劍)․거문고․골동품 등 여러 잡스러운 것들을 좋아하여, 손님들을 모아 놓고 해학과 옛 이야기로 마음을 달래려 애썼다.
하지만 울적한 마음을 탁 트이게 할 수는 없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민옹이라는 기이한 선비가 있습니다.
노래를 잘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잘하지요.
기개가 있고 괴상한 구석도 있으며, 사람을 속이기도 하지만, 마음이 트이게도 합니다.
듣는 사람이 마음이 넓어지니 상쾌해지지 않는 사람이 없지요.” 나는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 그에게 함께 오기를 청하였더니, 드디어 민옹이 왔다.
그때 나는 사람들과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민옹은 인사도 하지 않고 퉁소 부는 사람을 매섭게 노려보더니 뺨을 후려갈기며 큰 소리로 꾸짖었다.
“주인은 즐기고자 하는데 네놈은 어째서 화를 내고 있느냐.” 내가 크게 놀라 그 이유를 묻자 민옹이 말하기를, “저놈 눈을 부릅뜬 꼴이 사납지 않소이까. 화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소.” 내가 크게 웃자 민옹이 다시 말하길, “퉁소를 부는 놈만 화내는 것이 아니오. 피리를 부는 놈은 얼굴을 돌린 채 우는 듯하고, 장고 를 치는 놈은 근심이라도 있는 듯이 이마를 찡그리고 있지 않소이까.
모두 큰 두려움이라도 있는 것처럼 묵묵히 앉아 있으니, 아이와 종놈들까지 꺼려서 웃지를 않는구려. 이래서야 음악이 어찌 즐거울 수가 있겠소?” 나는 일어나 자리를 치우고 민옹을 맞아 자리를 권하였다.
그는 몸집이 왜소했고 흰 눈썹이 눈을 덮고 있었다.
스스로 말하기를, “내 이름은 유신(有信)이요. 금년이 일흔 셋올시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슨 병이 있소? 머리가 아프오?” “아닙니다.”
“배가 아프오?”
“아닙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아픈 데가 없소.” 그리고 문을 열고 들창을 걸었다.
바람이 우수수 불어왔다.
나는 마음이 시원해져서 예전과는 크게 다름을 느끼고 민옹에게 말하였다.
“나는 특히 먹는 것을 싫어하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것이 병이 되었나 봅니다.” 그러자 민옹이 일어나 내게 축하를 하였다.
나는 놀라서 물었다. “영감님, 무엇을 축하한단 말씀입니까?” “당신은 집이 가난한데 다행히 먹는 것을 싫어하니 재산이 늘지 않겠소? 게다가 잠을 자지 않아 밤을 낮과 겸할 수 있으니 두 배를 사는 셈이지요.
재산이 늘고 두 배를 사니 수(壽)와 부(富)가 함께 늘어나는 것이 아니겠소?” 잠시 후 밥상이 들어왔다.
나는 신음하며 얼굴을 찡그리고 수저를 들지 않은 채, 음식을 골라 냄새만 맡았다.
그러자 민옹이 갑자기 크게 화를 내며 일어나 가려고 했다.
내가 놀라서 물었다. “영감님, 어째서 화를 내며 가려 하십니까?” “손님을 청했으면 식사를 함께 해야지, 혼자 먼저 음식을 맛보니 그건 예의가 아니오.” 나는 즉시 사과하고 그를 만류한 후 다시 음식을 갖추도록 재촉했다.
민옹은 사양하지 않고 팔뚝을 걷어붙이고 수저를 바삐 놀렸다.
나는 무의식중에 입에 침이 고이고 비위가 맞아지는 듯해서 예전처럼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밤이 되자 민옹은 눈을 감고 단정히 앉아서 내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려 해도 더욱 입을 굳게 다물 뿐이었다.
나는 몹시 무료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민옹은 홀연 일어나 등불 심지를 긁어서 방안을 밝게 만들었다.
그가 말하기를,
“내가 젊었을 때는 눈으로 한 번 스치면 그대로 외웠는데 지금은 이렇게 늙어 버렸다오.
우리 내기를 하나 합시다.
평생 보지 못한 책을 각자 두세 번 훑어보고 외워서 만약 한 자라도 틀리면 약속대로 벌을 받기로 하는 것이 어떻겠소?” 나는 그가 늙은 것을 업신여겨, “좋소이다.” 하고 말하고 즉시 시렁 위에 꽂힌 《주례(周禮)》를 뽑았다.
민옹은 ‘고공(考工)’을 짚었고, 나는 ‘춘관(春管)’을 택했다.
잠시 후 민옹이 큰 소리로 말하였다.
“나는 이미 외웠소.”
나는 아직 한 번도 훑어보지 못한 터였다.
깜짝 놀라 그에게 잠시 기다려 줄 것을 부탁했으나 그는 자꾸만 재촉해서 나를 피곤하게 했 다.
그럴수록 나는 더 외울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잠이 쏟아져서 그만 잠들어 버렸다.
다음날 날이 밝은 후 민옹에게 물었다.
“어제 기억한 글을 외울 수 있겠소이까?” 민옹이 웃으며 말하기를, “나는 처음부터 아예 외우지 않았소.” 라고 하였다.
어느 날 저녁, 민옹과 함께 이야기를 했다.
그는 자리를 같이 한 사람들에게 농담도 하고 꾸짖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어쩌지 못했 다.
한 사람이 민옹을 궁색하게 만들려고 말을 붙였다.
“영감님, 귀신을 본 적이 있는지요?” “보았지.”
“귀신이 어디에 있습니까?” 민옹은 눈을 부릅뜨고 사람들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때 한 손님이 등불 뒤에 앉아 있었는데, 민옹은 그를 가리키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귀신이 저기 있다.”
그 손님이 화가 나서 따지자 민옹이 말하기를, “무릇 밝은 곳에 있는 것이 사람이고 어두운 곳에 있는 것이 귀신일세.
지금 자네는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을 바라보고 있네. 형체를 숨긴 채 사람을 엿보니, 어찌 귀신이라 아니할 수 있으리?” 자리에 앉은 모든 사람이 웃었다. 그 사람이 다시 물었다.
“영감님은 신선도 보셨겠네요?” “물론이지.”
“그러면 신선은 어디에 있습니까?” “가난한 사람이 곧 신선이지. 잘사는 사람은 언제나 세상을 사랑하고 못하는 사람은 늘 세상을 싫어하니, 세상을 싫어하는 자가 곧 신선이 아니겠는가?” “그럼 영감님은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도 보았겠군요?” “보았지. 오늘 아침에 내가 숲 속에 들어갔더니 두꺼비와 토끼가 서로 아주 오래 살았다고 다투더군.
토끼가 두꺼비에게 말하기를, ‘나는 팽조(彭祖)와 동년배(同年輩)이니 너는 만생(晩生)이야.’ 라고 하자 두꺼비가 머리를 숙이고 울기 시작하더군.
토끼가 놀라서, ‘너는 왜 그리 슬퍼하느냐?’ 하고 묻자 두꺼비가 말하길, ‘나는 동쪽에 있던 이웃집 아이와 동갑이었지. 그 아이는 다섯 살에 벌써 책을 읽을 줄 알았고, 또 그는 목덕 (木德)에 나가 섭제(攝提)에 역사(歷史)를 시작하고 많은 왕(王)을 보내고 제(帝)를 거쳐서 주(周)나라 때 왕의 법통이 끊어지자 달력이 이루어졌고, 진(秦)나라에 이르러 윤달이 들었 다네.
한나라와 당나라를 거쳐 아침에는 송나라 저녁에는 명나라가 되었는데, 온갖 변란을 겪고 나니 기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구나.
죽은 이를 슬퍼하며 가고자 하는 이와 이별하며 오늘에 이른 것이지.
그러나 귀와 눈은 더욱 총명해지고 이빨과 털은 나날이 자라더군.
나이가 많은 자 중에서 누가 그 아이를 당하겠는가.
그런데 팽조는 겨우 팔백 년밖에 살지 못해 겪은 일도 많지 않고 일을 경험한 것도 얼마 되 지 않으니 나는 이를 슬퍼하는 것일세.’ 라고 하더군.
그러자 토끼가 두 번 절하고 달아나면서, ‘당신은 나에게 할아버지 뻘입니다.’라고 말했지.
이로 미루어 본다면 글을 가장 많이 읽은 자가 가장 오래 산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럼 영감님은 가장 맛있는 것도 보셨겠네요?” “물론 보았지. 달이 하현(下弦)을 지나 썰물이 밀려가 갯벌이 드러나면 그것을 갈아 염전(鹽 田)을 만들고 갯벌을 구워서 거친 것은 수정(水晶)을 만들고 고운 것은 소금을 만드니, 백 가 지 맛을 조화시킬 때 소금이 없어서 되는 것이 무엇이 있으리.”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은 모두들, “좋습니다.
그럼 불사약(不死藥)이야 못 보셨겠지요?” 라고 물으니, 민옹이 웃으며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침저녁으로 항상 먹는 것인데 어찌 모르겠나?
큰 골짜기의 소나무 뿌리에 달콤한 이슬이 스며들어 천 년이 지나면 복령(茯笭)이 되지. 삼 (蔘)은 신라 땅에서 나는 것이 제일이라, 그 모양이 단정하고 색깔이 붉으며 사지(四肢)가 갖 추어졌으니 두 갈래로 땋은 머리는 마치 어린아이의 모습 같네.
구기(枸杞)는 천 년을 묵으면 사람을 보고 짖기도 하네.
내가 일찍이 이 세 가지를 먹고 나서 다시 음식을 먹지 못해 백 일이 되어 숨이 가빠서 죽을 뻔한 적이 있었지.
그때 이웃집 노파가 와서 보고 탄식하기를, ‘당신의 병은 굶주려서 생긴 것이구려.
옛날 신농씨(神農氏)는 온갖 풀을 다 맛보고서 비로소 오곡(五穀)을 뿌렸으니, 본디 병에는 약이 효험이 있고 굶주림을 치료하는 데는 음식을 먹는 것이 제일이오.
오곡이 아니라면 어찌 병을 고칠 수 있겠소.’라고 하더군.
그래서 나는 쌀로 밥을 지어먹고 죽는 것을 면했네. 불사약이라면 밥만한 것이 없으니 나는 아침에 한 그릇, 저녁에 한 그릇씩 먹고 지금 칠십에 이르기까지 살아왔네.” 민옹은 늘상 말을 지루하게 늘어놓았지만 종말에는 이치에 들어 맞지 않는 것이 없고, 그 안 에는 풍자가 들어 있으니 그를 가리켜 대체로 변사(辯士)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손님들은 말이 막혀 또다시 힐난할 수 없게 되자 마침내 화를 내며 물었다.
“그럼 영감님은 무서워하는 게 뭐요?” 민옹은 한참 동안 묵묵히 있다가 갑자기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려운 것이야 나 자신보다 더한 것이 있겠는가. 나의 오른쪽 눈은 용이고 왼쪽 눈은 호랑 이라네. 혀 아래에는 도끼를 감추었고 굽은 팔은 활처럼 생기지 않았는가.
마음을 잘 가지면 어린애 같기도 하지만 비뚤어지면 오랑캐처럼 될 수도 있지.
삼가지 않는다면 스스로 물고, 뜯고, 끊어, 망칠 수도 있으니 이 때문에 성인(聖人)도 극기복 례(克己復禮)니 한사존성(閑邪存誠)이니 하였던 것이야.
그들도 일찍이 자기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걸세.” 그 뒤로도 십여 가지 질문을 받았으나 답변이 메아리같이 빨라 결국 그를 궁색하게 만들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 칭찬하기도 하고 기리기도 하며, 옆의 사람을 비웃고 놀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모두 허리를 꺾고 웃었지만, 그는 얼굴빛조차 변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황해도 지방에 황충(蝗蟲)이 생겨서 관(官)에서 백성들을 다그쳐 그것들을 잡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민옹은 묻기를, “황충을 무엇 때문에 잡는단 말인가?” 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이 벌레는 누에보다도 작은데 얼룩무늬에 털이 나 있지요.
하늘을 날면 명(螟)이 되고 붙으면 모(蟊)가 되어 우리의 곡식을 해치는데 가히 씨를 말릴 정 도이지요.
그 때문에 어서 잡아서 땅에 묻으려는 것이죠.” 민옹이 말하기를,
“이 작은 벌레가 무슨 근심이 되겠나. 내가 보기에는 저 종루(鐘樓) 거리에 가득 찬 사람들 이 모두 황충이라네. 하나같이 키는 칠 척인데, 머리는 검고 눈은 반짝거리지.
입은 주먹이 들어갈 만큼 큰데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허리를 구부려 걷는 꼴이 발꿈치가 서 로 닿고 엉덩이가 서로 이어지지.
농사를 해치고 곡식을 짓밟는 데에는 이 무리보다 더한 것이 없다네.
내가 그것들을 잡고자 하였지만 큰 호로박이 없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야.” 라고 하였다.
좌우의 사람들은 크게 두려워하며 정말 이 벌레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하루는 민옹이 왔기에 그를 보며 은어(隱語)로 말하기를, “춘첩자(春帖子) 방제(狵啼).” 라고 하였다. 민옹은 웃으면서, “춘첩자란 문(門)에 붙이는 문(文)인 만큼 내 성(性) 민(閔)을 말함이요, 방(狵) 은 늙은 개를 일컬으니 내 욕을 하는 말이고, 제(啼)는 내 이빨이 빠져서 소리가 분명치 않아 듣기 싫다는 뜻이구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방(狵)이 두려우면 견(犬)을 버림만 같지 못하고, 또 제(啼)를 싫어하 면 그 구(口)를 막으면 될 것이 아니오.
무릇 제(啼)라는 것은 조화(造化)를 말함이요, 방(狵)이라는 것은 대물(大物)을 일컬음이니 제(帝)에다 방(狵)을 덧붙이면 ‘크게 된다’는 뜻이거니와 그 글자는 방(帝尨)이 되지 않소.
결국 당신은 나를 모욕하지 못하고 칭찬한 셈이오.” 하고 웃었다.
이듬해에 민옹은 세상을 떠났다.
“민옹은 비록 마음이 너무 넓고, 기이하고, 오만하고, 방탕했으나 그 성품은 굳고, 곧고, 유쾌하고, 선했다.
《주역(周易)》에 밝았으며 노자(老子)의 글을 좋아했으며 글이라면 대체로 읽지 않은 것이 없었다.” 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두 아들은 모두 무과(武科)에 올랐으나 아직 벼슬에 오르지는 않았다.
금년 가을에 나의 병도 심해졌다.
그러나 민옹을 볼 수는 없다.
그래서 그와 함께 나눈 은어․해학․풍자 등을 모아 이 민옹전(閔翁傳)을 쓴다.
지금은 정축년(丁丑年. 영조 33년(1757년) 가을이다.
민옹의 명복을 빌며 이 시를 쓴다.
“아아, 민옹이여.
괴상하고 기이하며
놀랍고도 놀라우며
기쁘고 노여우며
또한 얄밉구려.
벽 위의 까마귀
끝내 매가 되지 못했네.
민옹은 뜻있는 선비였지만
늙어 죽도록 그 뜻을 펴지 못했네.
지금 이 글을 지으니
아아, 그는 죽지 않고 영원히 기려지리.” -연암외집․방경각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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