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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洪吉童傳)

Choi가이버 2022. 11. 14. 21:36

홍길동전(洪吉童傳)-허균 ?

조선국 세종조 시절에 한 재상이  있었으니, 성은 홍이고 이름은 문 이다.
 대대로 내려오는 명문거족(名門巨族, 이름나고 크게 번창한 집안)출신으로 어린 나이에 과거에 올라 벼슬이 이조판서에 이르렀으니 명망이 조야(朝野, 조정과  민간)에  으뜸이었으며, 충(忠)과  효(孝)를  겸비해 그 이름이 온 나라를 뒤흔들었다.
 일찍이 두 아들을 두었으니, 큰아들의 이름은 이형으로 정실부인 유씨 소생이요, 둘째아들의 이름은 길동으로 시비(侍婢, 곁에서 시중을 드는 계집종)춘섬의 소생이었다.
 하루는 홍판서가 난간에 기대어 졸았는데 한 줄기 바람이 길을 인도하여 한 곳에 다다랐다.
 푸른 산은 드높고 푸른 물은 끝없이 넓은데 버드나무 천만가지에 녹음이 가득하고 황금같은 꾀꼬리는 봄기운을 희롱하여 버드나무 사이에 왕래하며 기이한 꽃과 풀들이 만발하되, 청학, 백학이며 비취공작이 봄빛을 자랑하거늘 홍승상이 경치와 만물을 구경하며 점점 들어가니 만 길이나 되는 절벽은 하늘에 닿았고 구비구비 맑고 깨끗한 물은 골짜기마다 폭포가 되어 오색 구름이 어려 있는데 길이 끊겨 갈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 때 문득 청룡이 물결을 헤치고 머리를 들어 고함을 치니 산과 바위가 무너지는 듯하였다.
 그 용이 입을 벌리고 기운을 토하여 홍판서의 입으로 달려들거늘 공이 놀라 깨니 한바탕 꿈이었으나 생각해 보니 영락없는 태몽이었다.
 ‘내가 이제 용꿈을 꾸었으니 반드시 귀한 자식을 낳으리라.’ 즉시 내당(內堂, 안방)으로 들어가니 유씨 부인이 내려와  맞았다.
 공이 기쁜 마음으로 어여쁜 손을 잡아끌며 진정으로 가까이하려고 하자, 부인이  정색하며  말했다.
 “대감은 국가의 재상이라. 체면을 존중하셔야 할 분이 한낮에 정실 부인에게 들어와 기생 대하듯 하시니 재상의 체면이 어디로 갔습니까?” 홍판서가 생각한즉 말은 당연하나 태몽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여 꿈 이야기를 말하지 아니하고 계속 간청하니 부인이 옷을 떨쳐 입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홍판서가 무안하던 중에 부인의 거만한 고집을 무수히 한탄하고 바깥으로 나오는데 마침 계집종 춘섬이가 상을 들여 놓거늘 주위가 고요한 틈을 타 춘섬을 이끌고 협실(夾室, 곁방)로 들어가 진정으로 가까이 하여 사랑했다.
 이때 춘섬의 나이는 열여덟이었다.
 춘섬이 한번 몸을 허락한 후로는 문밖에 나가지도 않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려고도 하지 않았으므로, 공이 기특하게 여겨 곁에 두고 첩으로 삼았다.
 춘섬이 그달부터 태기가 있어 열 달 만에 옥동자를  낳으니, 그 기골이 비범해  과연  영웅호걸의 기상이었다.
 공이 한편으로는 기뻤으나 그 아이를 유씨 부인에게서 낳지 못한 것을  한탄했다.
 길동이 점점 자라 여덟 살이 되니, 그 총명함이 다른 사람을 능가했다.
 하나를 들으면 백을  통하니 공이 더욱 사랑하고 소중히 여겼다.
 그러나 근본이 천생(賤生)인지라, 호부호형(呼父呼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형을 형이라 부름) 을 하면 문득 꾸짖으며 못하게  했으니, 길동이 열 살 넘도록 감히 아버지와  형을  부르지  못했다.
 게다가 종들도 그를 천대하니 원통한 마음이 뼈까지 사무쳐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방황했다.
 9월 보름이 되니, 둥근 달은 밝게 비추고 맑은 바람은 쓸쓸히 불어와 사람의 마음속에 여러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길동이 서당에서 글을 읽다가 책상을 밀치며 탄식했다.
 “대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공맹(孔孟,공자와 맹자의 가르침, 즉 유학의 가르침)을 본받지 못하면, 차라리 병법(兵法)을 외워 대장군의 도장(圖章)을 허리에 비껴 차고 여러 나라를 정벌하여 나라에 큰 공을 세우고 이름을 만 대에 빛내는 것이 장부가 즐길 일이라.
 나는 어찌하여 일신(一身)이 적막한가!
 아버지와 형이 있으나 호부호형을 못하니 심장이 터질 것 같도다.
 어찌  원통하지  않겠는가!” 말을 마치고 나서 뜰에 내려와 검술을 공부하고 있는데, 마침 홍공도 달빛을 구경하다가 길동이 배회하는 것을 보고 즉시 불러 물었다.
 “네 무슨 흥이 있어 깊은 밤에 잠을 자지 않느냐?” 길동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소인도 마침 달빛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대개 하늘이 만물을 내심에 오직 사람이 귀하오나, 소인에게 이르러서는 귀함이 없사오니 어찌 사람이라 하오리까?”
 공이 그 말을 짐작하나 짐짓 책망해 말했다.
 “네 무슨 말인고?”
 길동이 두 번 절하고 아뢰었다. “소인이 평생 서러운 것은,  대감의 정기를 받아 당당한 남자가 되어 부모님이 낳아 길러준 은혜가 깊사온데, 그 부친을 부친이라 못 하고 그 형을 형이라 못하니 어찌 사람이라 하오리까?” 길동의 눈물이 단삼(單衫, 윗도리에 입는 홑옷)을 적시니, 공이 듣기에 비록 측은하나 만일 그 뜻을 위로하면 마음이 방자해질까 걱정되어 오히려 크게 꾸짖었다.
 “재상가 천비(賤婢)의 소생이 비단 너뿐이 아니거든, 네 어찌 방자함이 이와 같으냐?
 앞으로 다시 이런 말을 하면 눈앞에 두지 않으리라.” 길동은 감히 한마디 말도 더 고하지 못하고 땅에 엎드려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공이 물러가라 명하니, 길동이 침소로 돌아와 슬퍼함을 그치지 않았다.
 길동이  본디  재주가 뛰어나고 도량이 넓으나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여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루는 어머니 침소에 가 길동이 울면서 말했다.
 “소자, 어머님과 더불어 전생의 연분이 귀중하여 금세(今世)에 모자지간(母子之間)이 되었으니 은혜가 망극하옵니다.
 그러나 소자의 팔자가 기박(奇薄)하여 천한 몸이 되오니 품은 한이 깊사옵니다.
 장부가 세상에 살면서 남의 천대를 받는 것이 당치 않은 일이라, 소자가 자연히 기운을 억제하지 못하여 어머님 슬하를 떠나려 하옵니다.
 엎드려 바라오니, 어머님은 소자를 염려하지 마시고 귀한 몸을 보중하옵소서.” 그  어미가 듣고 크게 놀라 말했다.
 “재상가 천비의 소생이 너뿐이 아니거든 어찌 마음을 좁게 먹어 이 어미의 애를 태우느냐?” 길동이  대답하기를,
 “옛날 장충(張忠)의 아들 길산은 천생이었으나,  열세 살에 그 어미를 이별하고 운봉산(雲峯山)에 들어가 도를 닦아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남겨 전했습니다.
 소자도 그를 본받아 세상을 벗어나려 하오니 어머님은 안심하시고 후일을 기다리옵소서.
 그간 곡산모의 행색을 보니 상공(相公,재상을 높여 이르던 말)의 총애를 잃을까 하여 우리 모자를 원수같이 아는지라, 큰 화를 입을까 하옵나니 어머님은 소자가 나가는 것을 염려하지 마옵소서.” 하니, 그  어미  또한  슬퍼했다.
 원래 곡산모는 곡산(谷山, 황해도 곡산군에 있는 면)기생으로 상공에게 사랑받는 첩이 되었는데, 이름은 초란이었다.
 매우 교만하고 방자하여 제 마음에 맞지 않으면 공에게 참소(讒訴, 윗사람에게 남을 헐뜯음)하였으니, 이로 인해 집안에 폐단이 셀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 자기는 아들이 없는데 춘섬은 길동을 낳아 상공이 매양 귀하게 여기는 것을 마음속으로 원망하여 길동을 없애려고 일을 꾀했다.
 하루는 초란이 흉계를 생각해내고는 무녀(巫女)를 청해 말했다.
 “내 일신을 평안하게 하는 일은 곧 길동을 없애는 것이다.
 만일 내 소원을 이루어준다면 그 은혜를 후히 갚으리라.” 무녀가 듣고 기뻐하며 대답했다.
 “지금 흥인문(興仁門, 동대문)밖에 관상을 아주 잘 보는 여자가 있는데, 사람의 상을 한번  보면 전후(前後)길흉을 판단 한다고 합니다.
 이 사람을 청하여 소원을 자세히 일어주고 상공에게 추천하여 전후의 일을 본 듯이 고하면, 상공이 틀림없이 크게 미혹되어 그 아이를 없애고자 하실 것이니, 그때를 타 여차여차하면 어찌 묘책이 아니겠습니까?”
 초란이 크게 기뻐하여 먼저 은자(銀子,은돈)오십 냥을 주며 관상녀를 청하여 오라고 하니, 무녀가 하직하고 물러갔다
 이튿날 홍공이 내당에 들어와 부인과 함께 길동의 비범함을 일컫고 다만 천생임을 한탄하며 진정으로 말씀을 나누고 있었는데, 문득 한 여자가 들어와 대청 아래에서 문안을 올렸다.
 공이 괴이하게 여기면서 물었다. “그대는 어떤 여자이며 무슨 일로 왔느냐?” 그 여자가 말했다.
 “소인은 관상 보는 일을 하는데, 마침 상공의 문 앞에 이르렀습니다.” 공이 이 말을 듣고 길동의 장래 일을 알고자 하여 즉시 불러 길동의 상을 보게  하니, 관상녀가 가만히 보다가 놀라며 말하기를, “이 공자(公子, 높은 집안의 아들)의 상을 보니 천고의 영웅이요, 일대의 호걸이옵니다.
 다만 지체(어떤 집안이나 개인이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신분이나 지위)가 부족하오나 다른 염려는 없을까 하나이다.” 하며 다른 말을 하려다가 주저하거늘, 공과 부인이 매우 이상하게 여겨  물었다.
 “무슨 말이든지 바른대로 이르라.” 관상녀가 마지못해 주변 사람들을 내보내고 말했다.
 “공자의 상을 보니 가슴속에 조화가 무궁하고 미간에 산천 정기가 영롱하오니 과연 왕이나 제후의 기상이옵니다.
 장성하면 장차 멸문지화(滅門之禍, 한 집안이 다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재앙)를 당하오리니 상공은 살피시옵소서.”
 공이 듣고 놀라서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있다가 마음을 정하고는 말했다.
 “사람의 팔자는 도망가기 어렵거니와 너는 이런 말을 누설하지  말라.” 이렇게  당부하고 약간의 은자를 주어 관상녀를 보냈다.
 이후로 공이 길동을 산속 정자에 머물게 하고 일거수일투족을 엄숙하게 살폈다.
 길동은 이런 일을 당하자 더욱 설움을 이기지 못하나 어찌할 수 없어 육도삼략(六韜三略, 중국의 오래된 병서(兵書)인 『육도』와 『삼략』)과 천문지리(天文地理)를 공부했다.
 공이 이 일을 알고 크게 근심하여 말했다.
 “이놈이 본디 재주가 있으니, 만일 분수에 넘치는 마음을 품으면 관상녀의 말과 같이 되리니 이를 장차 어찌하리오.” 이때 초란이 무녀, 관상녀와 내통하여 공의 마음을 놀라게 한 후, 길동을 없애려고 많은 돈을 들여 자객을 구했으니,
 그 이름은 특재라. 자초지종을 자세하게 이르고 초란이 공에게 고했다.
 “일전에 왔던 관상녀가 사람의 일을 귀신같이 알아내던데, 길동의 일을 어찌 처치하려 하십니까?
 천첩도 놀라 두려워하고 있사옵니다.
 일찍 저 아이를 없애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공이 이 말을 듣고 눈썹을 찡그리며 말하기를, “이 일을 내 손안에 있으니 너는 번거롭게 굴지 말라” 하고  물리쳤으나, 자연 심사가 어수선하여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해 병이 나고 말았다.
 부인과 좌랑(佐郞, 조선시대 육조(六曹)의 정육품 벼슬)인형이 크게  근심하며 어찌할  줄 모르는데, 초란이 자기 곁으로 모셔다 놓고는 고했다.
 “상공의 병환이 위중하심은 길동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얕은 소견으로는  길동을 죽여 없애면 상공도 쾌차하실 뿐 아니라 가문도 보존할 것이오니, 어찌 이를 생각하지 아니하십니까?” 

부인이  말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나 천륜이 지중하니 차마 그 일을 어찌 행하겠는가?” 초란이 말했다.
 “듣자 하니 특재라는 자객이 사람 죽이는 것을 주머니 속에서 물건 꺼내듯 한다고 하옵니다.
 그에게 많은 돈을 주어 밤에 들어가 길동을 해하게 하면, 상공이 아신다 하더라도 어찌할 수 없사오리니 부인은 다시 생각하소서.” 부인과 좌랑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는 차마 못 할 바이나, 첫째는 나라를 위함이요, 둘째는 상공을 위함이요, 셋째는 가문을 보존하기 위함이라, 너의 계교대로 행하라.” 초란이 크게 기뻐하며 다시 특재를 불러 이 말을 자세히 이르고, 오늘 밤으로 급히 행하라 하니, 특재라 응낙하고 밤이 깊어지기만을 기다렸다.
 한편, 길동은 그 원통한 일을 생각하면 잠시도 머물지 못할 일이지만, 상공의 엄명이 중하므로 어찌할 길이 없어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날 밤 촛불을 밝히고 『주역』을 보며 깊이 생각하다가,  문득 들으니 까마귀가 세 번 울고 가는 것이었다.
 길동이 괴이하게 여겨 혼자  말하기를, “이 짐승은 본디 밤을 꺼리거늘, 지금 울고 가니 심히 불길하도다.” 하고, 잠깐 팔괘를 벌여 점을 쳐보고는 크게 놀라 책상을 물리고 둔갑법(遁甲法  , 마음대로  자기 몸을 감추거나 다른 것으로 변하게 하는 방법)을 행하여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사경(四更, 새벽 한 시에서 세시 사이)쯤 되자 한 사람이 비수를 들고 천천히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길동이 급히 몸을 감추고 진언(眞言, 비밀스러운 어구)을 외우니, 홀연 한바탕 음산한 바람이 일어나며 집은 간데없고 첩첩산중에 풍경이 거룩했다.
 특재가 크게 놀라 길동의 조화가 신기함을 알고 비수를 감추고 피하고자 하나, 갑자기 길이 끊어지고 층암절벽이 앞을 가리니 진퇴유곡(進退維谷,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꼼작할 수 없는 궁지)이었다.
 사방으로 방황하고 있을 때 문득 피리 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차려 살펴보니, 한 소년이 나귀를 타고 오며 피리 불기를 그치고 꾸짖었다.
 “네 무슨 일로 나를 죽이려 하느냐? 죄 없는 사람을 해하면 어찌 하늘의 재앙이 없으리오,” 소년이 진언을 외우니, 홀연 한바탕 검은 구름이 일어나며 큰비가 퍼붓듯이 쏟아지고 모래와 돌이 날렸다.
 특재가 정신을 수습하여 살펴보니길동이었다.
 비록 그 재주를 신기하게 여기나 ‘어찌 나를 대적하리오?’ 하고 달려들며 큰 소리로 말했다.
 “너는 죽어도 나를 원망하지 말라.
 초란이가 무녀, 관상녀와 함께 상공과 의논하고 너를 죽이려 한 것이니, 어찌 나를 원망하리오?” 특재가 칼을 들고 달려드니, 길동이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해 요술(妖術)로 특제의 칼을 빼앗아 들고 크게 꾸짖었다.
 “네 재물을 탐하여 사람 죽이는 것을 좋아하니 너같이 무도한 놈을 죽여 후환을 없애리라.” 길동이 한번 칼을 드니 특재의 머리가 방 가운데로 떨어졌다.
 길동이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그날 밤 바로 관상녀를 잡아 특재가 죽은 방에 들이밀고 꾸짖기를,
 “네 나와 무슨 원수를 졌기에 초란과 더불어 나를 죽이려 했느냐?” 하고 칼로 베니, 어찌 가련하지 않으리오!
 이때 길동이 두 사람을 죽이고 하늘을 살펴보니, 은하수는 서쪽으로 기울고 달빛은 희미하여 시름을 돕는지라. 또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해 초란마저 죽이려고 하다가 상공이 사랑하심을 깨닫고 칼을 던지며, 집을 떠나 살길을 찾자 생각하고는 곧바로 성공 침소에 나아가 하직을 아뢰고자 했다.
 이때 공이 창밖에 인적이 있음을 괴이하게 여겨 창을 열고 보니, 길동이었다.
 공이 길동을 가까이 불러 말했다.
 “밤이 깊었는데 네 어찌 자지 않고 이리 방황하느냐?” 길동이 땅에 엎드려 대답했다.
 “소인이 일찍이 부모님께서 낳아 길러주신 은혜를 만분의 일이나 갚을까 하였더니, 집안에 의롭지 못한 사람이 있어 상공께 참소하고 소인을  죽이려  했사옵니다.
 겨우 목숨은 보전하였으나, 상공을 모실 길이 없기에 오늘 상공께 하직을 고하나이다.” 공이 크게 놀라며 말했다.
 “네 무슨 변괴가 있기에 어린아이가 집을 버리고 어디로 가려 하느냐?” 길동이  대답하기를,
 “날이 밝으면 자연 아시게 될 것입니다.
 소인의 신세는 흘러가는 뜬구름과 같사옵니다.
 상공께서 버린 자식이 어찌 참소할 수 있겠사옵니까?” 하며, 두 줄기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려 말을 잇지 못했다.
 공이 그 모습을 보고 측은하게 여겨 타이르며 말했다.
 “내 너의 품은 한을 짐작하나니, 오늘부터 호부호형을 허락하노라.” 길동이 두 번 절하며 말했다.
 “소자의 지극한 한을 아버님께서 풀어주시니 죽어도 한이 없사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아버님은 만수무강하옵소서.” 길동이 두 번 절하고 하직하니, 공이 붙들지 못하고 다만 무사하기만을 당부했다.
 길동은 또 어머니 침소에 가 이별을 고했다.
 “소자가 지금 슬하를 떠나고자 하옵니다.
 다시 모실 날이 있을 것이오니 어머님은 그사이 귀중한 몸을 보중하소서.” 춘섬이 이 말을 듣고 무슨 변괴가 있었음을 짐작하여, 하직하는 아들을 보고 손을 잡고 통곡하며 말했다.
 “네 어디로 향하고자 하느냐?
 한집에 있어도 처소가 너무 멀어 매양 그리워하더니, 이제 너를 정처 없이 보내고 어찌 살겠느냐?
 너는 쉬이 돌아와 모자 상봉하기를 바라노라.” 길동이 두 번 절한 후 하직하고 문을 나섰다.
 구름 낀 먼 산은 첩첩한데 정처 없이 길을 떠나니, 어찌 가련하지 않으리오!
 한편, 초란은 특재에게서 아무 소식이 없자 매우 의아하여 사정을 알아보니, 길동은 간데없고 특재와 계집의 시신만 방 안에 있다고 했다.
 초란이 혼비백산하여  급히 부인에게 고하니, 부인 또한 크게 놀라 좌랑을 불러 이 일을 이르고 상공께도  고했다.
 공이 대경실색하며  말했다.
 “길동이 밤에 와 슬피 하직을 고하여 이상하게 여겼더니, 이런 일이 있었도다.” 좌랑이 감히 숨기지 못하고 초란이 한 일을 고하니,  공이 더욱 분노하여 초란을 내치는 한편, 가만히 그 시체들을 없애고 노복(奴僕, 사내종)을 불러 이 일을 입 밖에 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길동이 부모를 이별하고 문을 나섰으나, 한 몸 둘 데가 없었다.
 정처없이 가다가 한 곳에 다다랐는데,  경치가 매우 뛰어났다.
 인가(人家)를 찾아 점점 안으로 들어가니 큰 바위 밑에 돌문이 닫혀 있었다.
 가만히 그 문을 열고 들어가니 평평하고 넓은 들판에 수백 호 인가가 즐비하고, 여러 사람이 모여 잔치를 즐기고 있었다.
 그곳은 도적의 소굴이었다.
 도적들이 문득 길동을 보고 그 사람됨이 녹록치 않음을 반기며 물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곳에 찾아왔느냐?
 이곳에는 영웅이 모여 있으나 아직 두목을 정하지 못했으니, 그대 만일 뛰어난 능력이 있어 참여하고자 한다면 저 돌을 들어보라.” 길동이 이 말을 듣고 다행히 여겨 두 번  하며 말했다.
 “나는 경성 홍판서의 천첩 소생 길동이라 하오.  집안의 천대를 받지 않으려고 온 세상을 정처 없이 다니다가 우연히 이곳에 들어왔소.
 모든 호걸이 동료가 되자 이르시니 감사하거니와, 장부가 어찌 저만한 돌 들기를 근심하리오.” 길동이 그 돌을 들어 수십 보를 걸어가다가 던지니, 그 돌의 무게가 천근인지라, 도적들이 일시에 칭찬했다.
 “과연 장사로다.  우리 수천 명 중에 이 돌을 들 자가 없더니, 오늘 하늘이 도우시어 장군을 주셨도다.” 도적들이 길동을 윗자리에 앉힌 다음, 술을 차례로 권하고 백마(白馬)를 잡아 맹세하며 굳게 약속하니, 사람들이 모두 일시에 응낙하고 하루 종일 즐겼다.
 이후로 길동이 여러 사람들과 더불어 무예를 연습하니 몇 달 지나지 않아 군법(軍法)이 갖춰졌다.
 하루는 여러 사람들이 말했다.
 “우리가 벌써부터 합천 해인사를 쳐 재물을 빼앗으려고 했으나, 지략이 부족하여 실행하지 못했소이다. 이제 장군의 의향은 어떠하십니까?” 길동이 웃으며 말했다.
 “네 장차 군대를 움직일 것이니 그대들은 내 지휘대로 하라.” 길동이 푸른 도포에 검은 띠를 두르고는 나귀를 타고 종자(從者,종속되어따라다니는 사람) 몇 사람을 데리고 나가며 말하기를,
 “내 그 절에 가 동정을 살피고 오리라” 하며 가니, 그 모습이 완연한 재상가 자제라.
 길동이 그 절에 들어가 먼저 주지승을 불러 말했다.
 “나는 경성 홍판서댁 자제라.  이 절에 글공부하러 왔거니와,  내일 백미 스무 석을 보낼 것이니 음식을 정갈히 차리면 너희들과 함께 먹으리라.” 그러고는 절 안을 두루 살펴본 후 후일을 기약하고 산문 어귀로 나오니, 여러 중들이 기뻐하였다.
 길동이 돌아와 백미 스무 석을 보내고 사람들을 불러 말했다.
 “내 아무 날에 그 절에 가 이리이리하리니, 그대들은 뒤를 쫓아와 이리이리하라.” 그날을 기다려 종자 수십 명을 데리고 해인사에 이르니 중들이 맞아 들어갔다.
 길동이 노승을 불러 물었다. “내가 보낸 쌀로 음식 하는데 부족하지 않았느냐?” 노승이  말했다.
 “어찌 부족했겠습니까. 매우 황송하고 감격스럽사옵니다.”
길동이 윗자리에 앉아 중들을 모두 청하여 각기 상을 받게 하고 먼저 술을 마시며 차례로 권하니, 모든 중들이 황송해했다.
 길동이 상을 받은 후 먹다가, 문득 모래를 가만히 입에 넣고 깨무니, 그 소리가 매우 컸다.
 중들이 듣고 놀라 사죄하자, 길동이 거짓으로 크게 화를 내며 꾸짖었다.
 “너희들이 어찌 음식을 이다지 부정하게 했느냐? 이는 반드시 나를 업신여기는 것이라.” 길동이 종자에게 분부하여 중들을 모두 한 줄로 결박하여 앉히니, 중들이 겁을 먹고 어찌할 줄 몰랐다.
 이윽고 도적 수백여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모든 재물을 제 것 가져가듯 하니, 중들이 보고 다만 입으로 소리만 지를 따름이었다.
 마침 이때 절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일꾼이 나갔다가 돌아와 이 일을 보고는 즉시 관가에 고하니, 합천 원(員, 수령)이 듣고 관군을 모아 그 도적을 잡으라고 명했다.
 수백 명의 관군이 도적의 뒤를 쫓다가 문득 보니, 송낙(예전에 여승의 주로 쓰던, 송라를 우산 모양으로 엮어 만든 모자)을 쓰고 장삼을 입은 중 하나가 산에 올라 외쳤다.
 “도적이 북쪽 작은 길로 갔으니, 빨리 가 잡으소서.” 관군은 그 절의 중이 가르쳐주는 것으로 여겨 비바람처럼 빠르게 북쪽 작은 길로 도적을 쫓아갔으나, 날이 저문 후까지 잡지 못하고 돌아갔다.
 길동이 도적들을 남쪽 큰길로 보내고 저 홀로 중의 옷을 입고 관군을 속인 후 무사히 소굴로 돌아오니, 모든 도적들이 벌써 빼앗아온 재물을 가지고 와 있었다.
 그들이 일시에 나와 사례를 하니, 길동이 웃으며 말했다.
 “장부가 이만한 재주도 없으면 어찌 여러 사람의 두목이 되겠소?” 이후 길동이 스스로 이름 부르기를 활빈당이라 하여 조선 팔도를 다니며 각 읍 수령에게 의롭지 못한 재물이 있으면 탈취하고, 몹시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자가 있으면 구제하며, 백성은 해치지 아니하고, 나라에 속한 재물은 추호도 범하지 아니하니, 이윽고 도적들도 길동의 뜻에 복종하게 되었다.
 하루는 길동이 사람들을 모아 의논하기를, “지금 함경감사는 탐관오리로, 백성을 착취하고 괴롭혀 모든 백성들이 견디지 못하고 있도다.
 우리들이 이를 그저 두지는 못하리니 그대들은 나의 지휘대로 하라.” 하고, 아무 날 밤에 기약을 정하고 한 사람씩 흘러들어가 남문 밖에 불을 질렀다.
 이에 감사가 크게 놀라 그 불을 끄라고 명하니, 관속(官屬, 지방 관아의 아전과 하인)들과 백성들이 한꺼번에 내달려나와 불을 껐다.
 그동안 길동의 수백 명 도적의 무리는 일제히 성안으로 달려들어 창고를 열고 전곡(錢穀, 돈과 곡식)과 무기를 빼앗아 북문으로 달아나니, 성안이 요란하여 마치 물 끓는 듯했다.
 감사는 뜻밖의 변고에 어찌할 줄 모르다가, 날이 밝은 후에 창고의 무기와 전곡이 없어진 것을 보고는 대경실색하여 그 도적 잡기를 힘썼다.
 그러던 중 홀연 북문에 방( 榜)이 붙었는데, 아무 날 전곡을 도적질한 자는 활빈당 행수(行首, 무리의 우두머리) 홍길동이라. 하니, 감사가 군사를 움직여 그 도적을 잡으려 했다.
 한편 길동은 도적들과 함께 많은 전곡을 도적질했으나, 행여 길에서 잡힐까 염려하여 둔갑법과 축지법 (縮地法, 먼 거리를 가깝게 하는 술법)을 행하여 처소로 돌아오니, 이제 막 날이 새려고 했다.
 하루는 길동이 사람들을 모아 의논하기를, “이제 우리가 합천 해인사에서 재물을 빼앗고 또 함경 감영에서 전곡을 도적질하여 그 소문이 파다하거니와, 나의 이름을 써서 감영에  붙였으니 오래지 않아 잡히기 쉬울 것이라. 그대들은 나의 재주를 보라” 하고, 즉시 초인(草人. 짚으로 만든 사람 인형) 일곱을 만들어 진전을 외우고 혼백을 붙였다.
 그러자 일곱 길동이 동시에 팔을 뽐내며 크게 소리치고 한곳에 모여 야단스럽게 이야기하니, 어느 것이 진짜 길동인지 알지 못할 정도였다.
 팔도에 하나씩 흩어져 각각 사람 수백명씩 거느리고 다니니 그중에 진짜 길동이 어느 곳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여덟 길동이 팔도에 다니며 바람과 비를 불러 일으키는 술법을 행하여 각 읍 창고의 곡식을 하룻밤 사이에 종적 없이 가져가고, 서울로 가는 봉물(封物. 시골에서 서울의 왕이나 벼슬아치에게 바치던 물건) 을 의심할 겨를 없이 모조리 탈취했다.
 팔도 각 읍이 소란하여 밤에는 능히 잠을 자지 못하고, 길에는 행인이 끊어질 정도였으니, 이 때문에 팔도가 요란했다.
 결국 감사가 이 일로 장계(狀啓, 왕명을 받고 지방에 나가 있는 신하가 중요한 일을 왕에게 보고하던 문서)를 올렸으니, 그 내용은 대강 이러했다.
 난데없이  홍길동이란 큰 도적이 나타나, 능히 바람과 구름을 만들고 각 읍의 재물을 빼앗으며, 서울로 봉송하는 물건이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등 장난함이 헤아릴 수 없으니, 그 도적을 잡지 못하면 장차 어느 지경에 이를 줄 알지 못하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聖上, 살아 있는 임금을 높여 이르는 말)은 좌우 포도청에 명하여 잡게 하소서.
 임금께서 보시고 크게 놀라 포도대장을 부르라 명하는 동안에도, 연이어 팔도에서 장계가 올라왔다.
 계속 뜯어보시니 도적의 이름이 다 홍길동이라 하였고, 전곡 잃은 날짜를 보니 한날 한시였다.
 임금께서 크게  놀라 말씀하셨다.
 “이 도적의 용맹과 술법은 옛날 치우라도 당하지 못할 것이로다.
 아무리 신기한 놈인들 어찌 한 몸이 팔도에 있어 한날 한시에 도적질을 하겠느냐?
 이는 예사 도적이 아니로다.
 잡기 어려우리니, 좌우 포도대장이 군사를 움직여 그 도적을 잡으라.” 이때 포도대장 이흡이 아뢰었다.
 “신이 비록 재주는 없사오나 그 도적을 잡아오리니 전하는 근심하지 마소서.
 어찌 좌우 포도대장이 나란히 나가오리까?” 임금이 옳게 여겨 급히 길을 떠나라 재촉하시니, 이흡이 하직하고 많은 관졸을 거느리고 길을 떠났다.
 각각 흩어져 아무 날 문경에서 모이기로 약속하고, 이흡은 포졸 두셋만 데리고 아무도 못 알아보도록 옷을 바꿔 입고 다녔다.
 하루는 날이 저물어 주점을 찾아 쉬고 있는데, 문득 한 소년이 나귀를 타고 들어와 인사를 했다.
 포도대장이 답례하자, 그 소년이 문득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늘 아래 임금의 땅이 아닌 곳이 없고, 그 땅에 사는 백성 가운데 임금의 백성이 아닌 사람이 없다고 하옵니다.  소생이 비록 시골에 살고 있으나 나라를 위해 근심하고 있사옵니다.” 포도대장이 짐짓 놀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소년이 말했다. “지금 홍길동이란 도적이 팔도를 다니며 난리를 일으켜 인심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놈을 잡지 못하니 어찌 분하지 않겠습니까?” 포도대장이 이 말을 듣고 말했다.
 “그대는 기골이 장대하고 말하는 것이 충직하니,  나와 함께 그 도적을 잡는 것이 어떻겠느냐?” “내 벌써부터 잡고자 했으나 그만한 힘이 있는 사람을 얻지 못했는데, 이제 그대를 만났으니 이 어찌 다행한 일이 아니리오.
 그러나 그대 재주를 알지 못하니 조용한 곳으로 가 시험해 봅시다.” 함께 가다가 한 곳에 이르러 소년이 높은 바위 위에 올라 앉으며 말했다.
 “그대는 온 힘을 다해 두 발로 나를 차보시오.” 그러고는 바위 끝으로 나아가 앉으니, 포도대장이 생각하기를, ‘제아무리 힘이 있다 한들 한 번 차면 어찌 떨어지지 않으리오.’ 하고 온 힘을 다해 두발로 힘껏 찼다.
 그러자 소년이 문득 돌아앉으며 말하기를, “그대는 과연 장사로다.
 내 여러 사람을 시험했으나 나를 움직이게 하는 자가 없었는데, 그대에게 차이니 오장(五臟)이 울리는 듯하오.
 그대 나를 따라오면  길동을 잡을 수 있을 것이오.” 하고는 첩첩한 산속으로 들어갔다. 이에  포도대장이  생각하기를.
 ‘나도 힘을 자랑할 만한데. 오늘 저 소년의 힘을 보니 어찌 놀라지 않으리오?
 그러나 이곳까지 왔으니, 설마 저 소년 혼자 어찌 길동을 잡을 수 있을까 근심하겠는가?’ 하고 따라가는데, 소년이 문득 돌아서며 말했다.
 “이곳은 길동의 소굴이라. 내가 먼저 들어가 살펴볼 것이니, 그대는 여기서 기다리시오.” 포도대장은 마음속으로 의심되었으나 빨리 잡아오라 당부하고 앉아있었다.
 이윽고 산골짜기에서 홀연 수십 명의 군졸이 요란하게 소리를 지르며 내려왔다.
 포도대장이 크게 놀라 피하려고 했으나. 점점 가까이 와 포도대장을 결박하더니 꾸짖으며 말했다.
 “네가 포도대장 이흡이냐? 우리는 염라대왕의 명을 받아 너를 잡으러 왔다.” 굵은 쇠줄로 목을 옭아매고 비바람 치듯 몰아가니, 포도대장이 혼이 나가 어찌할 줄 몰랐다.
 한 곳에 다다라 소리를 지르며 꿇어 앉히기에 포도대장이 정신을 진저하고 위를 올려다보니, 광대한 궁궐에 수많은 황건역사(黃巾力士,무력을 맡은 힘센 장수신)가 좌우에 버티고 서 있었다.
 궁궐 위에는 왕이 자리에 앉아 큰 소리로 꾸짖었다.
 “네 변변치 못한 사내 주제에 어찌 홍장군을 잡으려 했느냐?
 이런 까닭에 너를 잡아 지옥에 가둘 것이니라.” 포도대장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소인은 인간 세상의 보잘것없는 사람 이옵니다.
 죄 없이 잡혀왔으니 살려 보내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심히 애걸하니, 궁궐 위에서 웃음소리가 나며 꾸짖었다.
 “이 사람아!  나를 자세히 보라. 내가 활빈당의 두목 홍길동이라.
 그대가 나를 잡으려 하기에 그 힘과 뜻을 알고자 하여, 어제 내가 푸른 옷을 입은 소년으로 변하여 그대를 인도해 이곳에 와서 내 위엄을 보게 한 것이라.” 말을 마치자 좌우에 명하여 묶은 것을 풀어주고 대청에 앉히고는 술을 내어 권하며 말했다.
 “그대는 부질없이 다니지 말고 빨리 돌아가되, 나를 봤다고 하면 반드시 죄를 물을 것이니 부디 이런 말을 입 밖에 내지 말라.”
 길동이 다시 술을 부어 권하며 좌우에 명하여 내보내라고 했다.
 포도대장이 생각하기를. ‘내 이것이 꿈인가 생신가? 어찌하여 이곳에 왔는가?’ 하고 길동의 조화를 신기하게 여기며 일어나 나가려 했으나, 갑자기 사지를 움질일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 여겨 정신을 진정하고 주위를 살펴보니 가죽부대 속에 들어가 있었다.
 간신히 나와보니 가죽부대 셋이 나무에 걸려 있는데, 차례로 풀어보니 처음 떠날 때 데리고 왔던 하인들이었다.
 서로 말하기를. “이 어찌 된 일인가?
 우리가 떠날 때 문경에서 모이자 하였더니, 어찌 이곳에 오게 됐는가?” 하고는 두루 살펴보니 다른 곳이 아니라 장안성(長安城,수도라는 뜻으로 서울을 이르는 말) 북악산 이었다.
 네 사람이 어이없어 장안을 굽어보다가, 이흡이 하인에게 물었다.
 “너희는 어찌 이곳에  왔느냐?”
 세 사람이 아뢰었다. “소인들은 주점에서 자고 있었는데, 홀연 비바람에 싸여 이리로 왔사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알지 못하옵니다.” 포도대장이  말하기를, “이 참으로 허무맹랑한 일이니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
 길동의 재주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니 어찌 사람의 힘으로 잡을 수 있겠느냐?
 우리들이 지금 그냥 들어가면 반드시 죄를 면치 못할 것이니, 몇 달을 기다렸다가 들어가도록  하자.” 하고는  산에서  내려왔다.
 이때 임금께서 팔도에 공문을 보내 길동을 잡아들이라고 하셨으나, 길동이 부리는 변화는 예측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장안 대로를 고관(高官)의 수레를 타고 왕래하기도 하고, 혹 각 읍에 공문을 보낸 후 쌍가마를 타고 왕래하기도  하며, 혹 암행어사의 모습을 하고 각 읍 수령 중에 탐관오리인 자의 목을 벤 후 ‘가짜 어사 홍길동의 계문(啓聞,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던 글)’이란 것은 써놓기도 하니, 임금께서 더욱 진노하여  말씀하셨다 “이놈이 각 도를 다니며 이런 장난을 하되, 아무도 잡지 못하고 있으니 이를 장차 어찌하리요."
 삼정승(三政丞, 의정부에서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과 육판서(六判書, 국가의 정무를 나누어 맡아보던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의 으뜸 벼슬)를 모두 모아 의논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장계가 올라왔는데, 이는 다 팔도의 홍길동이 장난한다는 장계였다.
 임금께서 차례로 보시고는 크게 근심하시며 좌우를 돌아보고 물으셨다.
 “이것은 아마 사람이 아니요 귀신이 폐단을 일으키는 것이니 조정의 신하 중에 누가 그 근본을 알고 있느냐?”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아뢰었다.
 “홍길동은 전임 이조판서 홍아무개의 서자요. 병조좌랑 홍인형의 서출(庶出. 첩이 낳은 자식) 아우 이오니,  지금 그 부자를 잡아 들여 친히 물어보시면 자연 아실 것이옵니다.” 임금께서 더욱 화를 내며 말씀하셨다. “이런 말을 어찌 이제야 하느냐?” 즉시 홍아무개는 의금부(義禁府,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중죄인을 신문하는 관아)에 잡아 가두고, 먼저 홍인형을 잡아 들여 임금께서 직접  문하셨다.
 임금께서 진노하시어 책상을 치면서 말씀하셨다.
 “길동이란 도적이 너의 서출 아우라 들었다.
 그런데 어찌 길동이 장난하지 못하도록 막지 아니하고 그냥 두어 나라에 큰 근심거리가 되게 했느냐?
 네 만일 잡아들이지 아니하면 네 부자의 충효를 돌아보지 않을 것이니, 빨리 잡아 들여 조선에 큰 변고가 없게  하라.”
 인형이 황공하여 모자를 벗고 조아리며 말했다.
 “신에게 천한 아우가 있어 일찍이 사람을 죽이고 도망한 지 수년이 지났으나 그 종적을 알지 못하옵니다.
 신의 늙은 아비는 이 일로 인해 병이 위중해져 거의  돌아가실 지경이옵니다.
 길동이 도리에 어긋난 막된 짓으로 전하께 근심을 끼쳤으니, 신의 죄는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사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하해(河海, 큰 강과  바다)와 같은 은혜를 베푸시어 신의 아비의 죄를 용서 하시고 집에 돌아가 병을 돌볼 수 있게 해주신다면, 신이 죽기를 각오하고 길동을 잡아 신의 부자의 죄를 면하고자 하나이다.”
 임금께서 다 듣고 감동하여 즉시 홍아무개를 용서하시고 인형에게 경상 감사를 내리시며 말씀하셨다.
 “경에게 감사라는 직책이 없으면 길동을 잡지 못할 것이라. 일 년 기한을 정해주니 빨리  잡아들이라.” 인형이 백배사은(百拜謝恩, 거듭 절하며 은혜에 감사함) 한 후 하직하고 그날로 길을 떠나 경상 감영에 도착했다.
 각 읍에 길동을 달래는 방을 붙였는데, 그 방에 말하기를, 사람이 세상에 나서 살아감에 오륜(五倫, 유학에서 사람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이 으뜸이라.
 오륜이  있어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분명한 것이거늘, 이를 알지 못하고 임금과 아버지의명을 거역하여 불충불효(不忠不孝)하게 되면 어찌 세상이 용납하리오. 우리 아우 길동은 이런 일을 알 것이니 스스로 형을 찾아와 사로 잡히라. 우리 아버님이 너로 말미암아 병이 뼛속까지 파고들었으며, 임금께서 크게 근심하시니 네 죄악이 가득 찼는지라. 이런 이유로 나에게 특별히 감사를 내리시어 너를 잡아들이라 하신 것이니, 만일 잡지 못하면 우리 홍씨 가문이 여러 대 동안 쌓아올린 청덕(淸德,청렴하고고결한 덕행)이 하루아침에 없어질 것이니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 바라나니 아우 길동은 이를 생각해 일찍 자수하면 너의 죄도 덜 것이요, 우리 가문도 보존할 것이니, 아! 너는 만 번 생각하여 스스로 나타나거라.
 하였다.
감사는 이 방을 각 읍에 붙이고 공무를 전폐한 채 길동이 나타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는 나귀를 탄 한 소년이 하인 수십 명을 거느리고 관아의 문밖에 와 감사 뵙기를 청했다.
 감사가 들어오라 하니 그 소년이 마루 위에 올라와 절하며 인사를 올리거늘. 감사가 눈을 들어 자세히 보니 항시 기다리던 길동이었다.
 크게 놀라고 기뻐 좌우를 물리치고 그 손을 잡고 목이 메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길동아, 네 한번 집을 나간 후로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지 못하여 아버님께서 병이 깊어지셨거늘, 너는 갈수록 불효를 끼칠 뿐 아니라 나라에 큰 근심이 되니, 네 무슨 마음으로 불충불효를 행하며, 또한 도적이 되어 세상에 비할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냐?
 이런 이유로 전하께서 진노 하시어 나에게 너를 잡아들이라 하셨으니. 이는 피하지 못할 일이라.
 너는 일찍 서울로 나아가 전하의 명을 순순히 받으라.” 말을 마치자 눈물이 비 오듯 흘렀다.
 길동이  머리를  숙이고  말하기를.
 “제가 여기 온 것은 아버님과 형을 위태로움에서 구하고자 함이니 어찌 다른 말이 있겠습니까.
 대저 대감께서 당초에 천한 길동을 위해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도록 하셨던들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겠습니다.
 지난 일은 말해봤자 쓸데 없거니와, 이제 아우를 결박하여 서울로 올려 보내소서.” 하고는 다시 말이 없었다.
 감사가 이 말을 듣고 슬퍼하면서 장계를 지어 길동의 목에 칼을 씌우고 발에 족쇄를 채워 수레에 싣고, 건장한 장교 십여 명을 뽑아 죄인을 호송하게 했다.
 밤낮으로 쉬지 않고 부지런히 가게 하니, 각 읍 백성들이 길동의 재주를 들었는지라. 잡혀온다는 말을 듣고 길을 메울 정도로 나와 구경했다.
 이때 팔도에서 다 길동을 잡아 올리니, 조정과 장안의 백성들은 당황하여 어찌할  줄 모르고 누가 길동인지 알 사람이 없었다.
 임금께서도 놀라 신하들을 모두 모으고 친히 심문하고자 하셨다.
 여덟 길동을 잡아 올리니, 저희끼리 서로 다투며 아뢰기를, “네가 진짜 길동이요, 나는 아니라.” 하며 싸우니 누가 진짜 길동인지 분간할 수 가 없었다.
 임금께서 괴이하게 여겨 즉시 홍아무게를 불러 말씀하셨다.
 “아들  알아보는 데는 아버지만한 사람이 없다 하니, 저 여덟 중에서 경의 아들을 찾아내라.” 홍공이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죄를 청하며 말하기를, “신의 천생 길동은 왼쪽 다리에 붉은 혈점(血點, 살갗에 피가 맺혀 생긴 점)이 있사오니 이를 보면 알 것이옵니다.”
 하고 여덟 길동을 꾸짖어 가로되, “네 지척에 임금님이 계시고 아래에 아비가 있는데도, 이렇게 천고(千古)에 없는 죄를 지었으니 죽기를 아까워하지  말라.”
 홍공이 피를 토하고 엎드려 기절하니, 임금께서 크게 놀라 약원(藥院.내의원, 조선시대에 궁중의 의약을 맡아보던 관아)에게 구하도록 하셨으나 차도가  없었다.
 여덟 길동이 이 광경을 보고 동시에 눈물을 흘리며 주머니에서 환약을 한 개씩 꺼내어 입에 넣어 드리니, 홍공이 반나절 후에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여덟  길동이  임금께  아뢰었다.
 “신의 아비가 나라의 은혜를 많이 입었사오니 신이 어찌 감히 괘씸한 일을 행하오리까?
 신이 본디 천비 소생이라,  그 아비를 아비라 못하옵고 형을 형이라 못 하오니 평생 한이 맺혔기에 집을 버리고 도적의 무리에 참여했으나, 백성은 추호도 범하지 않았으며 각 읍 수령 중에 백성을 착취하고 괴롭히는 자의 재물만을 빼앗았습니다.
 이제 십년이 지나면 떠나갈 곳이 있사오니, 엎드려 빌건대 전하께서는 근심하지 마시고신을 잡으라는 명령을 거두소서.”
 말을 마치고 여덟 길동이 동시에 넘어졌는데,  자세히 보니 다 초인(草人)이었다.
 임금께서 더욱 놀라시며 진짜 길동을 잡으라는 공문을 다시 팔도에 내리셨다.
 길동이 허수아비를 없애고 두루 다니다가 사대문에 글을 써 붙였는데, 그 글에다, "소신 길동은 아무리 하여도 잡지 못할 것이오니, 병조판서 벼슬을 내리시면 잡히겠습니다."
 고 하였다. 임금이 그 글을 보고 신하들을 모아 의논하니, 여러 신하들이 말했다.
 "이제 그 도적을 잡으려 하다가 잡지 못하고 도리어 병조판서를 제수하심은 이웃 나라에도 창피스러운 일입니다."
 임금이 옳다고 여기고 다만 경상 감사에게 길동 잡기를 재촉하니, 경상 감사가 왕명을 받고는 황공하고 죄송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하루는 길동이 공중으로부터 내려와 절하고 말했다.
 "제가 지금은 진짜 길동이오니, 형님께서는 아무 염려 마시고 결박하여 서울로 보내십시오."
 감사가 이 말을 듣고는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이 철없는 아이야. 너도 나와 동기인데 부형의 가르침을 듣지 않고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니, 어찌 애닮다 하지 않으랴.
 네가 이제 진짜 몸이 와서 나를 보고 잡혀가기를 자원하니 도리어 기특한 아이로다."
 하고, 급히 길동의 왼쪽 다리를 보니, 과연 혈점이 있었다.
 즉시 팔다리를 단단히 묶어 죄인 호송용 수레에 태운 뒤, 건장한 장교 수십 명을 뽑아 철통같이 풍우같이 몰아 가도, 길동의 안색은 조금도 변치 않았다.
 여러 날만에 서울에 다다랐으나, 대궐 문에 이르러 길동이 한 번 몸을 움직이자, 쇠사슬이 끊어지고 수레가 깨어져, 마치 매미가 허물 벗듯 공중으로 올라가며, 나는 듯이 운무에 묻혀 가 버렸다.
 장교와 모든 군사가 어이없어 다만 궁중만 바라보며 넋을 잃을 따름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이 사실을 보고 하니, 임금이 듣고, "천고에 이런 일이 어디 있으랴?"
 하며, 크게 근심을 했다. 이에 여러 신하 중 한 사람이 아뢰기를, "길동의 소원이 병조판서를 한 번 지내면 조선을 떠나겠다는 것이라 하오니, 한 번 제 소원을 풀면 제 스스로 은혜에 감사하오리니, 그때를 타 잡는 것이 좋을까 하옵니다."
 고 했다. 임금이 옳다 여겨 즉시 길동에게 병조판서를 제수하고 사대문에 글을 써 붙였다.
 그때 길동이 이 말을 듣고 즉시 고관의 복장인 사모관대에 서띠를 띠고 덩그런 수레에 의젓하게 높이 앉아 큰길로 버젓이 들어오면서 말하기를, "이제 홍판서 사은(謝恩)하러 온다."
 고 했다. 병조의 하급 관리들이 맞이해 궐내에 들어간 뒤, 여러 관원들이 의논하기를, "길동이 오늘 사은하고 나올 것이니 도끼와 칼을 쓰는 군사를 매복시켰다가 나오거든 일시에 쳐죽이도록 하자."
 하고 약속을 하였다.
 길동이 궐내에 들어가 엄숙히 절하고 아뢰기를, "소신이 죄악이 지중하온데, 도리어 은혜를 입사와 평생의 한을 풀고 돌아가면서 전하와 영원히 작별하오니, 부디 만수무강하소서."
 하고, 말을 마치며 몸을 공중에 솟구쳐 구름에 싸여 가니, 그 가는 곳을 알 수가 없었다.
 임금이 보고 도리어 감탄을 하기를, "길동의 신기한 재주는 고금에 드문 일이로다.
 제가 지금 조선을 떠나노라 하였으니, 다시는 페 끼칠 일이 없을 것이요, 비록 수상하기는 하나 일단 대장부다운 통쾌한 마음을 가졌으니 염려 없을 것이로다."
 하고, 팔도에 사면(赦免)의 글을 내려 길동 잡는 일을 그만두었다.
 한편, 길동이 제 곳에 돌아와 부하들에게 명령하기를, "내가 다녀 올 곳이 있으니, 너희들은 아무데도 출입하지 말고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하고, 즉시 몸을 솟구쳐 남경으로 향하여 가다가 한 곳에 다다르니, 거기는 소위 율도국이었다.
 사면을 살펴보니 산천이 깨끗하고 인물이 번성하여 편안하게 살 만한 곳이었다.
 남경에 들어가 구경한 뒤, 또 제도라 하는 섬에 들어가 두루 다니면서 산천도 구경하고 인심도 살피다가 오봉산에 이르니, 정말 제일 강산이었다.
 둘레가 칠백 리요, 기름진 논이 가득하여 살기에 정말 합당하였다.
 마음 속으로 생각하기를 '내 이미 조선을 하직하였으니, 이곳에 와 은거하였다가 큰 일을 꾀하리라.' 하고 가벼운 걸음으로 본 곳에 돌아와 여러 부하에게 말했다.
 "그대는 아무 날 양천강변에 가서 배를 많이 만들어 몇 월 며칠 경성 한강에서 기다리라.
 내 임금께 청해 벼 일천 석을 구해 올 것이니, 약속을 어기지 말라."
 한편, 홍공은 길동의 작란이 없으므로 신병이 쾌차하고, 임금 또한 근심 없이 지내게 되었다.
 당시는 구월 보름께였는데, 임금이 달빛을 받으며 후원을 배회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한 줄기의 맑은 바람이 일어나며 공중에서 피리 소리가 맑게 울려오는 가운데, 한 소년이 내려와 임금 앞에 엎드렸다. 임금은 놀라서 물었다.
 "선동(仙童)이 어찌 인간 세상에 내려왔으며 무엇을 하려 하느뇨?"
 소년은 땅에 엎드려 아뢰기를, "신은 전임 병조판서 홍길동이옵니다."
 임금이 놀라 물었다. "네가 깊은 밤에 어찌 왔느냐?"
 길동이 대답해 가로되, "신이 전하를 받들어 만세를 모실까 했으나, 제가 천한 종의 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문(文)으로는 홍문관이나 예문관 벼슬 길이 막혀 있고, 무(武)로는 선전관 벼슬 길에 막혀 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사방을 멋대로 떠돌아다니면서 관청에 폐를 끼치고 조정에 죄를 지었던 것이온데, 이는 전하로 하여금 아시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만수무강하십시오."
 하고, 공중으로 올라가 나는 듯이 가거늘, 임금이 그 재주를 못내 칭찬하였다.
 그 후로는 길동의 폐단이 없으니, 사방이 태평하였다.
 길동이 조선을 하직하고, 남경 땅 제도라는 섬으로 들어가, 수천 호의 집을 지은 뒤, 농업에 힘쓰고 무기 창고를 지으며 군법을 연습하니, 병사는 잘 훈련되고 양식은 풍족하게 되었다.
 하루는 길동이 화살촉에 바를 약을 구하러 망당산으로 가다가 낙천 땅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부자 백룡이라는 사람이 딸 하나를 두고 있었는데, 재질이 비상하여 애중하게 여기는 터였으나, 어느 날 광풍이 크게 불면서 그 딸이 없어져 버렸다.
 그러자 백룡 부부는 슬퍼하면서 많은 돈을 들여 사방으로 찾았으나 종적이 없었다.
 부부는 슬픔에 젖어 말을 퍼뜨리기를 '누구라도 내 딸을 찾아 주면, 재산의 반을 주고 사위를 삼으리라.'고 하였다.
 길동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측은하였으나 하릴없어 망당산에 가서 약초를 캐며 들어가다가 날이 저물어 주저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 소리가 나며 등불이 밝게 비쳤다.
 그곳을 찾아가니 사람이 아닌 미물이 앉아 지껄이고 있었다.
 원래 이 짐승은 울동이라는 짐승인데, 여러 해를 묵어 변화가 무궁하였다.
 길동이 몸을 감추고 활로 쏘니, 그 중 괴수가 맞았다.
 그러자 모두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기에, 길동은 나무에 의지하여 밤을 지내고 두루 돌아다니면서 약을 캐더니, 갑자기 괴물 몇이서 길동을 보고 물었다.
 "그대는 무슨 일로 이 깊은 곳에 이르렀소?"
 길동이 대답했다. "내가 의술을 아는 고로 이 산에 들어와 약을 캐는 중인데, 그대들을 만났으니 다행이오."
 그것이 대답하기를, "나는 이곳에 산 지 오래더니, 우리 왕이 부인을 새로 정하고 어제 밤에 잔치를 하다가 하늘에서 내린 살[惡氣]을 맞아 위중한지라, 그대가 명의라하니 선약(仙藥)으로 왕의 병을 고치면 중상을 받으리라."
 하였다.
 길동이 생각하되 '이 놈이 어제 밤에 상한 놈이로다.'하고 허락하였다.
 그것이 길동을 인도하여 문에 세우고 돌아가더니, 이윽고 청하기에 길동이 들어가 보니 그림으로 장식한 집이 넓고도 아름다운데, 그 가운데 흉악한 것이 누워 신음하다가 길동을 보자 몸을 움직이면서 말했다.
 "내가 우연히 천살을 맞아 위독했는데, 애들의 말을 듣고 그대를 청하였으니, 이는 하늘이 나를 살린 것이라. 그대는 재주를 아끼지 말라."
 길동이 감사의 뜻을 표하고 말했다.
 "먼저 몸의 내부를 치료할 약을 쓰고, 다음으로 외부를 치료할 약을 쓰는 것이 좋을까 하노라."
그것이 응락하거늘, 길동이 약주머니에서 독약을 내어 급히 온수에 타서 먹이니, 한참만에 한 마디 소리를 지르고 죽는지라, 모든 요괴가 일시에 달려들었다.
 길동은 신통술을 부려 모든 요괴를 후려치는데, 갑자기 두 젊은 여자가 애걸하였다.
 "저희는 요괴가 아니라 세상 사람인데 잡혀 왔사오니, 남은 목숨을 구하여 세상으로 나가게 하소서."
 길동은 백룡의 일을 생각하고 거주지를 물었더니, 하나는 백룡의 딸이요, 하나는 조철의 딸이었다.
 길동의 요괴를 깨끗이 없애 버리고, 두 여자를 구출해 각각 제 부모에게 돌려주니, 그 부모들은 크게 기뻐하면서 그날로 홍생을 맞아 사위를 삼았는데, 첫째 부인은 백소저요, 둘째 부인은 조소저였다.  길동이 하루아침에 두 아내를 얻은 후, 두 집 가족을 거느리고 제도섬으로 가니, 모든 사람이 반기며 치하하였다.
 하루는 천문을 보다가 놀라 눈물을 흘리기에, 주위에서 무슨 까닭으로 슬퍼하느냐고 물으니, 길동이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부모의 안부를 하늘의 별을 보고 짐작하더니, 지금 하늘을 본즉 부친의 병세가 위중 하신지라, 그러나 나의 몸이 먼 곳에 있어 거기에 이르지 못할까 하노라."
 하니 모든 사람들이 슬퍼하였다.
 이튿날 길동은 월봉산에 들어가 하나의 훌륭한 묘터를 구한 후, 일을 시작하여 석물(石物)을 국릉과 같이 하였다.
 그러고는 한 척의 큰배를 준비하여 부하들에게 조선국 서강 강변으로 몰고 가서 기다리라 하였다.
 자신은 즉시 머리를 깎고 중의 모습을 갖춘 뒤, 작은 배 한 척을 타고 조선을 향하였다.
 이 무렵, 홍판서는 홀연히 병을 얻어 위증해지자, 부인과 인형을 불러 말하기를, "내가 죽어도 다른 한이 없으나, 길동의 생사를 알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구나.
 제가 살아 있으면 찾아올 것이니, 적서를 구분하지 말고 제 어미를 잘 대접해라."
 하고, 숨이 끊어지니, 온 집안이 슬픔에 잠겨 장사를 치르고자 하나, 묘터를 구하지 못해 난처하였다.
 하루는 문지기가 알리기를, "어떤 중이 와서 영위(靈位)에 조문(弔問)하려 합니다." 고 했다.
 이상하게 여겨 들어오라 했더니, 그 중이 들어와 목을 놓아 크게 우니,모든 사람이 곡절을 몰라 서로 얼굴만 돌아보았다.
 그 중이 상주에게 한 번 통곡한 뒤 말하기를, "형님께서 어찌 아우를 몰라보십니까?" 고 했다.
 상주가 자세히 보니, 곧 길동이라 붙잡고 통곡하며, "아우냐. 그 사이 어디 갔더냐?
 아버지께서 평소에 유언이 간절하셨는데, 이제 오니 어찌 자식의 도리이겠는가?" 하며, 손을 이끌고 내당에 들어가 모부인을 뵈옵고 춘섬을 상면케 하였다.
 한바탕 통곡한 뒤 묻기를, "네가 어찌 중이 되어 다니느냐?" 했다.
 길동이 대답했다. "소자가 조선을 떠나 머리 깎고 중이 되어 지술(地術)을 배웠지요.
 이제 부친을 위하여 좋은 터를 구했으니, 모친은 염려 마십시오."
 인형이 크게 기뻐하면서 말했다. "너의 재주 기이한지라, 좋은 터를 구했다니 무슨 염려가 있으랴."
 다음날 길동이 운구하여 제 모친을 모시고 서강 강변에 이르니, 지휘해 놓은 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배에 올라 화살같이 빨리 저어 한 곳에 다다르니, 여러 사람이 수십 척의 배를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서로 반기며 호위하여 가니 그 광경이 대단하였다.
 어언간 산 위에 다다르매, 인형이 자세히 본즉 산세가 웅장한지라, 길동의 지식을 못내 탄복하였다.
 일을 마치고 함께 길동의 처소로 돌아오니, 백씨와 조씨가 시어머니와 시숙을 맞아 뵈옵는 한편, 인형과 춘랑은 못내 길동의 지식을 탄복하고, 또한 춘섬은 길동이 장성하였음을 칭찬하였다.
 여러 날이 되자, 인형은 길동과 춘섬을 이별하면서 산소를 극진히 모시라 당부한 후, 산소에 하직하고 출발했다.
 본국에 이르자, 모부인을 뵈옵고 전후 사실을 말씀 드리니, 부인이 신기하게 여겼다.
 한편, 길동이 제사를 극진히 받들어 삼년상을 마치고 나서는, 모든 영웅을 모아 무예를 익히며 농업에 힘을 쓰니, 병사는 잘 조련되고 양식도 풍족했다.
 남쪽에 율도국이라는 나라가 있었으니, 기름진 평야가 수천 리나 되어 실로 살기 좋은 나라라, 길동이 매양 마음 속으로 생각해 오던 바였다. 모든 사람을 불러 말하기를, "내가 이제 율도국을 치고자 하니 그대들은 최선을 다하라." 하고는 그 날 진군을 하였다.
 길동은 스스로 선봉장이 되고, 마숙으로 후군장을 삼아, 잘 훈련된 병사 오만을 거느리고 율도국 철봉산을 다다라 싸움을 걸었다.
 율도국 태수 김현충이 난데없는 군사가 이름을 보고 크게 놀라, 왕에게 보고하는 한편 한 부대의 군사를 거느리고 내달아 싸웠다.
 길동이 이를 맞아 싸워 한 번의 접전에 김현충을 베고 철봉을 얻어 백성을 달래어 위로하였다.
 정철로 철봉을 지키게 하고, 대군을 지휘해 움직여 바로 도성을 치는데, 격서(檄書)를 율도국에 보냈으니, 그 내용은 이러하였다.
 "의병장 홍길동은 글을 율도왕 에게 부치나니, 대저 임금은 한 사람의 임금이 아니요, 천하 사람의 임금이라. 내 하늘의 명을 받아 병사를 일으켜 먼저 철봉을 파하고 물밀 듯 들어오고 있으니, 왕은 싸우고자 하거든 싸우고, 그렇지 않으면 일찍 항복하여 살기를 도모하라."
 왕이 다 보고 나서 소리쳐 말하기를, "우리나라가 철봉을 굳게 믿거늘, 이제 잃었으니 어찌 대항하랴."
 하고는, 모든 신하를 거느리고 항복했다.
 길동이 성중에 들어가 백성을 달래어 안심시키고 왕위에 오른 후, 전의 율도왕으로 의령군을 봉했다.
 마숙과 최철로 각각 좌의정과 우의정을 삼고, 나머지 여러 장수에게도 각각 벼슬을 내리니, 조정에 가득 찬 신하들이 만세를 불러 하례하였다.
 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삼 년에 산에는 도적이 없고, 길에서는 떨어진 물건을 주워 가지지 않으니, 태평세계 라고 할 만하였다.
 왕이 백룡을 불러, "내가 조선 성상께 표문(表文)을 올리려 하니, 경은 수고를 아끼지 말라." 하고 당부를 했다.
 그 후 길동은 표문과 편지를 홍씨 집안으로 부쳤다.
 백룡이 조선에 도착하여 먼저 표문을 올리니, 임금이 표문을 보고 크게 칭찬해, "홍길동은 진실로 기이한 인재로다." 하고는, 홍인형을 위로 사신을 삼아 유서(諭書)를 내렸다.
 인형이 임금의 은혜에 감사한 후 돌아와 모부인에게 임금과 이야기한 바를 말씀드리니, 부인이 또한 가려 하였다.
 인형이 마지못해 부인을 모시고 출발하여 여러 날만에 율도국에 이르렀다.
 왕이 맞이해 향안을 배설하고 유서를 받은 후 모부인과 인형을 환대하였다.
 산소를 찾아본 후 대연을 베풀어 즐겼다. 여러 날이 되자 유씨가 홀연 병을 얻어 죽으매, 선능에 쌍장(雙葬)하였다. 
인형이 왕을 하직하고 본국에 돌아와 임금까지 보고하니, 임금이 모친상 당했음을 위로하였다.
 율도왕이 삼 년 상을 마치니, 대비도 이어 세상을 떠나 선능에 안장하고, 삼 년 상을 마쳤다.
 왕이 삼자 이녀를 낳으니, 장자와 차자는 백씨 소생이고, 삼자와 차녀는 조씨 소생이었다.
 장자 현으로 세자를 봉하고 그 나머지는 다 군으로 봉하였다.
 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삼십 년에 갑자기 병이 들어 별세하니 나이 72세였다.
 왕비도 이어 죽으니 선능에 안장한 후, 세자가 즉위하여 대대로 이으면서 태평스럽게 살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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